거꾸로 보는 투자이론 - 천재들의 실패

천재들의 실패 - 블랙, 숄즈 그리고 머튼의 모험

투자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투자성과는 어떨까?

이론가로서의 명성에 걸맞는 투자성과를 거둔 경제학자는 케인즈와 리카르도 정도라고 한다. 그 외의 이론가들은 토드 부크홀츠의 표현대로 나이트 클럽의 밴드처럼 흥만 돋웠을 뿐 정작 자신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신문선씨가 골을 넣기 어렵거나 하일성씨가 홈런을 치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일수 있겠다.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너무도 큰 괴리가 있다.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려면 많은 가정을 완화시켜야 하는데 가정을 완화하다 보면 이론적 논리에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이론을 경제적 실질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다지 수월한 문제는 아니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월가에 두가지 새로운 투자패턴이 등장하게 된다.

하나는 헤지펀드의 융성이고 다른 하나는 투자이론의 시스템화였다. 차익거래 시스템을 개발한 메리웨더는 이 둘을 결합한 새로운 투자펀드를 출범시켰다.

94년 메리웨더가 주축이 되어 창립된 이 펀드가 바로 LTCM(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이다. 80년대 차익거래 시스템을 도입, 월가의 촉망받는 스타로 떠오른 메리웨더는 90년대 들어 이처럼 투자이론과 시스템트레이딩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투자방식을 창안,시장 개척자로서 명성을 굳혔다.

마이런 숄즈와 로버트 머튼은 이 LTCM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이들이다. 20세기 최고의 재무 이론가로 꼽히는 숄즈와 머튼은 '옵션평가모형'을 구축, 작고한 블랙과 더불어 노벨상을 받았다. LTCM 창업 이전에도 메리웨더는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MIT 박사, 하버드 교수등과 함께 스프레드를 이용한 투자이론과 시스템을 구축했었다.

LTCM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옵션평가모형은 "상대적 가치 투자 전략"이라고 불린다. 내재가치가 유사한 두개의 시장이나 두 종류의 주식 가격이 일정 시점에서 일정비율 이상 차이가 날 경우 매수했다가 차이가 좁혀지면 매도하는 이 전략은 대규모 차입거래로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유사한 두개의 시장 혹은 주식의 예로는 선물과 현물, 보통주와 우선주, 이탈리아 채권과 독일 채권, 미 국채와 회사채 등이 있을수 있다. LTCM은 이처럼 있을수 있는 투자대상 채권, 주식 또는 시장의 짝에 대해 고도의 통계학적 기법을 적용, 수익률 분포를 계산해낸뒤 사고 팔기가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매수-매도 타이밍을 시스템화했다.또 실제 시장에서 최대 20배 수준의 레버리지를 이용,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의 국채수익률 차이가 평균적으로 5%정도이며 미국 채권수익률이 5%라고 가정하자. 이때 균형시장 하에서라면 우리나라 채권수익률은 10%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은 97년 우리나라 국채수익률이 25%까지 치솟았다면 이때 양국간 국채수익률 차이는 15%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옵션평가모형 하에서 수익률 분포의 끝에 위치하는 극단적 예외상황이다. 옵션평가모형은 시간이 지나면 이 같은 비정상적 수익률 격차가 해소돼 스프레드는 다시 정상 범위로 돌아온다고 가정한다.때문에 이러한 일시적 가격괴리를 이용, 적절한 매수-매도 타이밍을 구사하는 것만으로 수익률을 극대화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LTCM은 94년부터 97년까지 3년간 400%의 수익을 올렸다. 그들에게는 실패란 없는 듯했고 세상은 그들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했다. 97년 숄즈와 머튼은 노벨상을 거머쥐었다. 그들은 마치 시간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부를 차지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1998년 LTCM은 최후를 맞이한다. 끝없는 성장을 구가할 듯 하던 펀드의 파국은 옵션평가모형 대가정의 균열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론은 항상 가정을 전제로 한다. 투자규모가 너무 커지자 그들은 주로 국가간 국채수익률의 차이를 이용한 국채간 스프레드 전략을 사용했다. 국가간 국채 가격이나 이자율의 차이가 일정한 분포에서 이탈할 경우 매수에 나섰다가 다시 일정 분포내로 들어오면 매도하는 전략이었다.

이때 그들의 대가정은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집중 투자했던 러시아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함으로써 LTCM은 14조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되었고 영광의 날들도 막을 내린다. 가장 당연시돼온 가정이 와해되면서 그들의 성과는 물거품이 된 것이다.

LTCM의 몰락은 미국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에게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줬던 많은 금융기관과 그들과 연계된 수많은 파생상품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가치 투자자는 스프레드 전략과 무관한가?

가치 투자자들도 무의식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스프레드를 이용한 투자를 한다. 저 PER주에 투자하는 전략은 해당 주식이가 고PER주가 될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주식의 PER가 기업이나 시장,산업의 평균 PER에 수렴하리란 가정에 근거한 투자이다.

투자란 Carr의 표현을 빌자면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한단계 더 나가 현재와 미래의 대화이다. LTCM은 과거의 패턴으로부터 분포를 알아내고 분포에서 이탈할 때 회귀하는 속도와 적정투자규모를 계산,이를 근거로 투자를 해서 수익을 올렸다. 결국 과거를 이용해 투자를 한 것이다.

블랙과 머튼의 이론적 기반을 통해 흥망성쇠한 LTCM은 Mr.Market에 도전하는 하나의 바벨탑이었는지 모른다.

시장은 그들의 지식을 사랑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지식이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방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메리웨더는 2002년 JWM 파트너스를 설립하고 10억달러의 투자금액으로 복귀했다.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었다.

메리웨더와 숄즈와 머튼의 시도는 가치투자자에게 하나의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지식이 곧 기업이란 점이다. 그들은 지식 하나로 기업을 세웠다는 점이다.

명예기자 이방인

로저 로웬스타인이 쓴 '천재들의 실패'를 기초로 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