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향의 투자 편지(82)- 행운(2)

행운(2)

46번째 편지(행운)에서 저는 1951년 1월 워싱턴에 있는 GEICO 본사를 찾아간 워런 버핏의 일화를 소개했었습니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론 강의를 듣고 있던 버핏이 그레이엄이 GEICO의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보험업과 그레이엄이 회장으로 재직 중인 회사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찾아갔던 얘기죠.

버핏은 휴일에도 회사에 출근한 데이비드슨 부사장을 만났고 그로부터 보험업에 대해 상세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핏은 오랜 기다림 끝에 그레이엄의 부름을 받아 1954년부터 2년 동안 그레이엄의 투자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기회를 가졌고요.

1956년, 벤저민 그레이엄이 은퇴하는 통에, 오마하로 돌아온 버핏은 지인들의 자금을 모아서 투자조합을 만들어 직접 운용을 시작합니다. 1961년 31세가 된 버핏은 투자조합이 10개까지 늘어났고 개인재산도 1백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 무렵 버핏은 필립 피셔의 첫 책,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를 읽고서 그레이엄의 이론처럼 단순하지만 강력한 피셔의 투자법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1951년에 ‘가이코’를 방문했듯이 무작정 필립 피셔를 찾아갔다고 하는데요. 피셔와의 첫 만남에 대해서는 2004년 ‘포춘’지에 버핏의 기고문으로 실렸는데, 킬패트릭이 쓴 [워렌 버핏 평전]에서 인용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약속도 하지 않고 갑작스레 그를 방문했다. 물론 필립 피셔는 내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친절할 수 없었다. 타고난 선생인 그는 열정에 불타는 학생을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펴셔의 사상을 내 투자 철학에 통합시킨지 4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결과적으로 말해 내가 피셔를 만나지 못했다면 버크셔 주주들은 지금과 같은 수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워런 버핏에게는 무모한 방문자인 21살 대학생에게 토요일 오후 모두를 할애해서 보험업 강의를 한 데이비드슨과의 만남이 있었고 31세로 이미 성공한 투자자였지만 일면식도 없었던 버핏의 갑작스런 방문을 친절하게 맞아준 필립 피셔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행운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다른 게 느껴집니다. 두 스승의 눈에는 버핏이 뿜어내는 열정,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찾아온-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젊은이의 갈망이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들려주었을 테고요.

버핏은 자신의 투자는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85%, 필립 피셔로부터 15%를 받아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버핏의 단짝 찰리 멍거는 버핏이 그레이엄을 만나지 않았다면 더 빨리 돈을 불렸을 거라고 했지만 멍거 특유의 과장된 화법이 더해진 것일 테고 그레이엄이 버핏에게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보입니다. 어떤 일이든 과정을 거치고 피드백을 통해 발전한다는 점에서 미숙했던 시절의 버핏이 그레이엄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큰 행운일 겁니다.

행운은 준비가 된 사람의 것이라고 하던가요. 준비된 사람은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리고 실력은 배움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직접 경험과 책을 통해 배우는 두 가지 과정 모두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데, 벌써 또 그 얘기냐! 하는 원망이 들리는 듯해서 이만~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가장 운이 좋은 사람, 다시 말해서 행운아는 주식투자자라고 생각합니다. 주식은 장기적으로 가장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주는 투자수단임이 증명되었고 수많은 구루들이 제시한 다양한 투자법 중에서 자신의 성향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서 실행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투자는 굴곡이 있으므로 항상 어려운 상황을 마주치게 됩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하락장은 이제 경험이 많든 적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힘들어 하는 위치까지 온 모양입니다. “투자자가 행운아라고? 투자원금만 회수할 수 있으면 당장 그만두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경험이 적은 투자자들에게 제가 하는 말이 있는데,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시장과 싼 주식은 우상향 하니까 버티면 보상을 받는다." 지금이 딱 그런 시기로 보입니다. 더 하락할 수도 있겠고 하락이 멈추더라도 금방 오를 것으로 기대할 수도 없지만 지금은 매수할 현금이 있으면 매수하고 없으면 포트폴리오를 유지한 채 기다리면 됩니다. 기다리는 동안 책을 통해 구루들을 만나면서요.

잘 버텨낸다면, 지금의 경험은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은 투자 선배로서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투자자라면, 눈 감고 귀 막고, 그냥 선배의 말을 믿고 기다리면 됩니다.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숙향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