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레터] 숙향의 투자편지(49) 투자자의 시간

가끔 주식투자로 알게 된 분들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받은 호감이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처음 만날 때면 늘 느끼게 되는 것이, 저에 대해 정말 많이 오해하고 있구나 하는 겁니다. 한결같이 예상하기를, 숙향이란 인물은 차분한 성격에 투자를 좋아하고 그래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에 사용하는 사람이더군요.

제가 파악하는 숙향은 성급한데다 쉽게 화를 낼 정도로 참을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레이엄이 주식시장을 의인화한, 미스터 마켓의 실물이 있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죠. 따라서 저의 진면목은, 제가 닮고 싶고 지향하는 투자자의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멉니다. 가끔 아내에게, ‘나는 주식투자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동의하는 미소를 지어 보일 정도죠.

저에게 있어 주식투자는 은퇴 후 돈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살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하니까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늘 다짐하는 것이지, 진심으로 투자행위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가가 빠지면 불쾌한 기분이 앞서고 그 다음으로 싸게 사면 되니까 좋아해야지, 하면서 (숨어있다 나타나는)이성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으로 봤을 때도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4가지 투자지표를 갖고서 투자할 기업을 선정하는 방법은 저에게 꼭 맞는 투자법입니다. 늘 소외된 주식들이라 보유하고 있는 동안 오르내림이 적은 편이고 길게 보면 시장 수익률 이상을 올린다는 것은 앞서간 구루들이 증언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투자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법을 끝까지 유지한 것으로 유명한, 그래서 진정한 그레이엄의 제자인 월터 슐로스는 일하는 시간이 짧았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주식시장이 열리는 시간과 시장이 파한 다음 정리할 시간 정도만 투자에 썼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45년 동안(1955년~2000년) 연평균 15.6%의 수익률을 올림으로써 S&P500지수를 연 5% 앞섰다고 합니다.

우리는 피터 린치처럼 기업들을 방문하려고 미국 전체를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피터 린치는 스스로를 갉아먹었습니다. 한 해에 거의 300개의 기업을 방문했고, 이 기업에서 저 기업을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1999년 인터뷰에서 슐로스는 위와 같이 말하면서 조기 은퇴한 피터 린치를 비판했습니다. 피터 린치는 46세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가족과 지내기 위해 화려했던 13년의 펀드매니저 생활을 끝내고 46세에 은퇴를 단행했는데요. 스스로를 혹사 시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자신을 느꼈던 것이 분명한 한 가지 이유였을 겁니다.

워런 버핏은 집에서도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출근길을 탭댄스를 추러 가는 것처럼 즐겁다고 할 정도로 주식투자는 버핏에게 있어 삶의 모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공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평소 버핏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사랑 받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 하는 데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의 생애를 다룬 3권의 전기 등을 읽으면서 느꼈던 버핏은, 그가 말하는, 행복한 사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거든요. 아내와는 40대에 별거를 시작했고 두 아들과의 관계는 냉랭하기만 했습니다.

책에서 본 알량한 지식을 갖고서 얘기하다 보니 제가 버핏을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런 속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건에 한해서 만큼은 투자자의 시간 할애/배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워런 버핏이 벤저민 그레이엄이 만든 투자사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 그레이엄은 버핏에게, ‘우리는 어차피 부자가 될 거니까 투자에만 너무 열중하지 마라’고 충고했습니다. 오로지 투자에만 시간을 들이는 버핏을 말리기 위해 그레이엄은 버핏을 댄스 교습소에 억지로 끌고 갔던 일화가 전해질 정도죠.

버핏은 ‘그레이엄은 자신의 재능을 투자에는 1/10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는데요. 투자보다는 고전 번역, 희곡 저술 등 다양한 삶을 즐겼던 그레이엄은 넉넉한 은퇴 밑천을 갖고서 61세에 은퇴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여행입니다. 그리고 드러내어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독서와 더더욱 자랑할 일은 아닌 것이,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이고요.

주식투자는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우리 가족의 생활을 경제적으로 문제없도록 도와주는 화수분이고 따라서 평생 할 일입니다. 지금보다는 더더욱 사랑스럽게 다루어야 할 대상이죠.

큰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 없이 오로지 만족하는 삶을 목표로 한다면 주식투자로 가능합니다. 단, 건전하면서 상식적인 가치투자법으로 투자해야 하겠죠. 더구나 가치투자자는 투자에 많은 시간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업이 있는 시간제 투자자에게 가장 적합한 투자법이고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으니까, 이제 그만 하라고요? 혹시 듣지 못했다고 할 분이 있을까 싶어 노파심에서 그러고 있으니, 모쪼록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편안한 투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있다면,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방법 밖에요.
숙향 배상

참고:
경제전문지에 실린 월터 슐로스의 1999년 강연 원고, [월스트리트에서의 65년]
- 도움 받은 분: 블로그 와이민 님 / 가치투자연구소 kimd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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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댓글 5개)

  1. 김진우
    김진우 | 21.10/07 10:04
    너무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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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진우
    김진우 | 21.10/07 10:04
    ㅠㅠ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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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장군이목
    대장군이목 | 21.10/07 13:19
    제가 추구하는 삶이군요. 세계 1위 부자보다 적당히 벌고 자기가 하고 싶은 삶을 산 그레이엄이 진정한 부자 같습니다.
    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
    저도 숙향님처럼 술을 좋아하는건 비밀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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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향
      숙향 | 21.10/07 14:35
      갈수록 술을 즐기는 투자자가 줄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좀 됐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통에 제가 겁을 낼 정도였던 제가 정말 좋아하는 대가 한 분이 속 병이 생기는 통에 술을 마실 수 없게 된 슬픈 일도 있었는데요. 애주가라는 사실은 결코 비밀로 할 얘기가 아니고 차라리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리키찬
    리키찬 | 21.10/08 14:58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고민없이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고민이 없을 정도로 수익을 꾸준히 내고 싶네요 ^^ 어차피 다 쓰지 못할 돈이라면 의미 없을 것 같구요 ㅎㅎ
    마음 편안하게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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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향
      숙향 | 21.10/08 19:15
      가치투자법을 지키는 주식투자를 하신다면, 리키찬 님의 바람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5. 홍성준
    홍성준 | 21.10/09 12:41
    그간 기웃기웃만 거리다 이틀에 걸쳐 숙향님의 투자편지 마흔아홉통을 정독해 보았습니다.(새보진 않았어요ㅎ 아마 그보다 더 될 거라고 생각되지만. 숙향이란 단어로 검색해서 오래된 글부터 차례로 봤네요.) 저는 워낙 투자금이 작기도 했고 이런저런 핑계거리들로 투자금을 회수해 쓰기도 하고, 항상 기회만 보다 뒤늦게 진입하여 조금씩만 수익보거나 크게 손실보거나 하던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 숙향님의 투자편지에 마음이 안정됨을 느낍니다. 매달 수입의 10%씩이라봐야 부끄럽게도 얼마 되진 않지만 숙향님이 말씀하신 4개의 지표를 토대로 가치주를 찾아 마음편한 투자로 다시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월급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기 딱 좋은 시기에 숙향님을 알게되어 감사함을 느낍니다.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을테지만 앞으로도 한결같은 투자편지 부탁드려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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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향
      숙향 | 21.10/09 15:03
      홍성준 님께서 글 올린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정말 고마운 말씀을 들려주시네요. 해 보세요! 가치투자의 구루들이 증명했고 제 경험으로도 확인했듯이 가치투자법에 의한 주식투자는 어떤 투자수단보다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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