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36년 전인 1985년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죠? 아래 표에서 보듯이 주식투자자에게는 최고의 시장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 여름, 직장 상사의 조언 덕분에 아파트를 구입하느라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모두 매도했습니다. 집 값의 반 이상을 은행 대출과 회사 가불 등 빚으로 충당했기 때문에 이후 몇 년 동안은 빚 갚느라 주식투자 휴식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주식시장이 좋지 않았던 1990년 초 투자를 쉴 수 있었던 저는 빚을 다 갚은 1992년 말경부터 투자를 재개했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에서 회계·자금 업무를 보았는데요. 자금 집행을 직접 은행에 가서 처리했기 때문에 외근이 잦았습니다. 저의 이런 근무환경은 투자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업무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증권사 지점을 들르곤 했는데요. 가장 자주 갔던 곳은 친구가 근무하던 증권사였습니다. 당시 증권사 지점 한쪽 벽은 마치 야구장 전광판처럼 큰 시세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이 시세판은 바뀌는 주가에 따라 쉴 새 없이 번쩍거립니다. 그 앞에 놓인 의자를 중심으로 주위는 시장 분위기에 따라 애기 업은 엄마까지 가세해 시장 바닥처럼 북적거릴 때도 있었고, 상주하는 베테랑까지 (낮술 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통에 썰렁할 때도 있었습니다. 객장만 보면 시장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던 시절이었죠.

친구 옆 자리에 앉아서 책상에 놓인 모니터를 보면서 한담(閑談)을 나누다 보면, 갑자기 저쪽에서 영업 직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다.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서 외치기를, “00주식을 00에서 매집한답니다.” 그러면 제 친구도 바빠집니다. 관리하는 고객들에게 전화해서 그 종목 매수를 권하는 것이죠. 틈틈이 일임매매 계좌에 주문을 넣으면서요.

영업을 끝낸 친구는 저를 보면서 그 종목에 대한 마지막 영업을 시도합니다. “저 친구가 가져오는 종목은 확실한데, 조금 사 보지.” 합니다. 저는 이미 친구 책상 위에 있던 ‘투자편람’에서 그 회사에 대해 살펴본 다음이라 거의 같은 답을 하게 되죠. “너무 비싸” 그래도 친구가 권하면, 제가 할 말은 하나만 남았습니다.

몇 차례 이런 상황이 있고 난 다음 그 지점에서는 이 말이 제 별명이 되었더군요. 당시에는 놀림받는 기분이라 한동안 발길을 줄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잃기 싫어하는 자질을 드러낸 이 말은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요즘 ‘카카오뱅크’ 주가가 시장의 화두입니다. 돈이 오가는 시장에서는 주인공만 바뀔 뿐 늘 화제거리가 되는 주식이 있는데요. 지금은 ‘카카오뱅크’인 것이죠. 저와 같은 (철저한)가치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카카오뱅크 주가에 불만을 가진 분이 많아 보입니다. 공모가 3만9000원도 비싸다면서 상장하는 날 무조건 매도하라는 저의 말을 믿고, 상장 첫날 최저가에 매도했던 우리 큰아이도 그중 1인이고요.

저는 이 주식 주가는 비싸다는 말을 붙이기조차 아까울 정도로 터무니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를 정당화하는 주장은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매수한다는 추세론자 말고도 미래 유망산업인 플랫폼 기업으로서의 가치를 본다는 쪽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미래 (유망)산업이 비싸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말이죠.

서론이 길었던 오늘 편지의 결론은 "자신의 관점에서 비싼 주식은 안 사면 된다" 입니다.

시장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이 주식의 주가가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레이엄이 말씀하신 것처럼 변덕스러운 시장인 미스터 마켓이 그 주식을 비싸게 쳐줄 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주식시장에는 (굳이 미심쩍어 하면서 매수하지 않아도 되는) 투자할 주식이 엄청 많이 있으니까요.

가장 위험한 투자는,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매수하고 주가가 내리기 때문에 매도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적극적 가치투자'의 저자, 비탈리 카스넬슨은 인기주란 이유로 비싼 주식을 만난 경우, ‘난 그런 주식은 몰라’라는 태도를 가지라고 하더군요.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숙향 배상

추신: 원고를 하루 전에 전달하기 때문에 주가와 투자지표 등은 대개 하루 전 수치로 표시됩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