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월 10일, 33번째 편지에서 현재 시장 위치를 엄청나게 풀린 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거품이 있다고 했습니다. 두드러지지 않게 하려고 글 중간쯤에 살짝 집어넣었는데요. 거품의 증거로 ‘미래 성장할 사업으로 다수가 인정한 주식들이 비정상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끔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할 때는, 마치 2000년 초 IT버블이 붕괴되기 직전의 분위기를 느끼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거대한 시장 움직임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한 저로서는 딱히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일 수 있는)거품이 잔뜩 끼어서 위험해 보이는 주식을 줄이고 가치에 비해 싼 주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유지한다면 상대적으로 안심이 되겠지만, 절대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제가 늘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달리 할 일은 없습니다.

저는 지난 1월 11일 거래대금이 크게 늘면서 Kospi지수가 3266.23까지 올랐을 때 당분간 시장이 오르기보다는 내릴 확률이 높다고 보았고 현금비중을 늘리려는 마음을 먹었는데요. 그날 이후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뇌면서 시장을 대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주식 100%를 들고서 공포에 떨었던 경험은 저로 하여금 현금비중을 가져가는 것이었는데, 이제 작으나마 실행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 2년 10개월 만에 앞선 고점의 평가액을 회복했으므로 굳이 현금비중을 가져갈 필요성이 있었을까? 또는 현금이 있었다면 싼 가격으로 현금을 주식으로 바꿈으로써 회복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합니다.

대가들은 시장 꼭대기나 바닥을 맞추려는 생각은, 개별 주식의 최고가와 최저가를 맞추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헛된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찰리 멍거는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주가가 반 토막이 나더라도 눈도 깜박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투자자의 굳건한 자질을 강조했지요.

2008년 금융 위기를 몸빵으로 버텨낸 저는 자질이 강한 편일까요? 당시 저는 대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또는 아이투자 개인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로했는데요. 그런 자세를 갖지 않았다면 쉽게 흥분하는 제 성격으로는 버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타고난 자질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런 행동을 통해 모자란 자질을 키웠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이와 정반대로, 어리석은 행동의 표본으로써 두고두고 회자되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과열된 금융시장을 즐기려는, 다음과 같은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되겠지요.

-척 프린스/ 시티그룹 CEO, Financial Times 2007-07-09

제가 매일 들르는 ‘가치투자연구소’ 카페에는 지금 시장위치를 정점이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갈수록 늘어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소위 ‘상투’를 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속설인지라 저의 불안감은 ‘기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가장 현명한 바람직한 방법은 가치에 비해 (많이)싼 주식을 사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지켜보는 것, 바로 가치투자법입니다.

오늘도 그렇지만 앞서 두 번의 편지는 제 의도와 다르게 혼란을 드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부 계좌는 현금비중을 갖고 가고 다수 계좌는 주식 100%를 유지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이를 제대로 정리해서 전달하지 못하는 저의 표현력이 문제인데요. 그래서 제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랄프 웬저의 말씀을 들려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숙향 배상

추신: 지난 1월 11일 저는 당분간 이 지수는 깰 수 없다면서 뛰어난 투자자 한 분과 내기를 걸었습니다. 당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요.

지금 저는 다수 계좌는 주식 100%지만 제가 자주 들여다보는 계좌 몇 개는 현금비중 2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말에 내기에 진 턱을 내면서 내기는 마무리 되었는데, 문득 그 분의 현금비중이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이미 눈치챈 분이 많으실 텐데, 이 내기는 처음부터 제가 이기는 내기였습니다. 지수가 올라서 제가 내기에 졌다는 뜻은 제 보유주식 평가액도 같이 늘어났다는 뜻이 되니까요. 저는 불어난 수익금에서 (아주)작은 금액을 덜어내서 밥을 사면 됐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