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칼럼]가치투자자에게 삼성전자란?

가치투자자에게 삼성전자란?




한때 미국에서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란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다. 배우 이름을 대어 가장 짧은 단계를 거쳐 케빈 베이컨과 연결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다. 놀라운 사실은 어떤 배우이건 6단계 이내에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배우인 케빈 베이컨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서로 얽혀있는 작은 공간임을 실감케 한다.

우리나라 비즈니스계에서 캐빈 베이컨은 아마도 삼성전자일 것이다. 어떤 기업이라 하더라도 6단계 이내에서 삼성전자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탐방을 다니다 보면 이 사실을 절감한다. 가치사슬을 올라가다 보면 결국 삼성전자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회사와 개인들 중 최대 판매자이자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전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어 보이는 커피믹스 마저 삼성전자 직원들이 안 마셔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제조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주식투자자에게도 삼성전자는 피해갈 수 없는 케빈 베이컨이다. 압도적인 시가총액 1위에, 거의 모든 펀드들의 편입종목 1순위이며,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삼성전자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심지어 삼성전자가 투자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코스닥시장 전체가 흔들린다. 증권사들은 막대한 거래대금과 투자자의 관심을 고려했을 때 삼성전자가 없어진다는 상상을 하기조차 싫을 것이다.

가치투자자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트폴리오에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삼성전자는 늘 고민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고민은 하지만 다른 투자자들처럼 자신 있게 삼성전자를 사는 결정을 내리진 못하다는 점이다. 혹자는 애증의 관계라 부른다. 가치투자자들이 대한민국 최고기업에 소극적인 이유는 네 가지 정도다.

첫째, 삼성전자는 시장 자체다. 삼성전자 한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데다가 이에 따라 움직이는 전자 계열사까지 고려하면 실제 비중은 그 이상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를 택하는 순간 시장과 괴리되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반대로 시장수익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게 된다. 따라서 시장수익률보다는 금리를 넘어서는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가치투자자에게 삼성전자는 의무가 아닌 옵션일 뿐이다.

둘째, 사업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가 투기와 다르기 위해선 철저한 분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복잡성과 육중함 앞에서 ‘철저한’이란 말을 붙이는 건 겸손의 태도가 아니다. 이는 공부의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범위 개념에 좀더 가깝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사장만 17명에 이른다. 결국 개별기업의 속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바텀업 방식은 무리이고 거시적인 분석이 주가 되는 탑다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데 이건 가치투자자의 성향이 맞지 않는 측면이 크다.




셋째, 각 사업부문들의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삼성전자는 거의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D램 시장의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었지만 DDR3 1Gb의 현물가격은 작년 3월 3.07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달 25일 1.05달러까지 요동을 쳤다. 점차 변동성은 줄어들겠지만 수요가 소비자의 변덕이 잦고 기술변화가 빠른 IT에 달려있고 반도체 자체가 원자재상품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이 변동성이 사라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핸드폰 사업만 해도 아이폰이 나왔을 때 이제 삼성전자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갤럭시S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최고의 자리가 위태로워진 노키아의 모습은 1위에 오르더라도 언제나 방심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치투자자를 위축시킨다.

넷째, 앞의 문제들을 다 해결했다 하더라도 가치투자자들은 본능적으로 더 싼 대안투자처(proxy)를 찾는다. 삼성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가치투자자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열어보면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로 보유 중인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전자와 관련한 여러 아이디어 중 몇 가지를 정해 거기에 맞는 납품업체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복잡성과 예측가능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거나 아예 디스카운트된 가격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안전마진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치투자자들에게 삼성전자가 포트폴리오에 없으면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그건 게임의 룰을 달리 보는 가치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다. 버핏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는 “주식투자란 살아남는 자를 맞추는 게임이 아니라 가격이 잘못 매겨진 주식을 찾는 게임이다”라 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분명 격렬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다. 다만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정확히 매겨진 주가를 가지고 있으므로 버크셔 헤서웨이의 포트폴리오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가치투자자는 삼성전자를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대한민국을 위해, 한국 증시를 위해, 많은 중소기업들을 위해, 거기서 일하는 친구들을 위해 삼성전자가 정말로 잘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삼성전자를 사랑하시는 분들도 가치투자자들의 성격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여주길 부탁 드린다.

VIP투자자문 대표이사 김민국 ceo@vipass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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