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해자(垓字) 삼만리

4년 전 버핏 관련 서적을 번역할 때 ‘Moat’라는 단어에 맞는 한글 표현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사전적 의미는 ‘외적에 대비해 성 주변에 판 호’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쓰기엔 너무 길었다. 그래서 그냥 해자(垓字)라고 쓴 뒤 주석을 다는 방법을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단어라고 생각해 생긴 고민이었고 의미를 풀어 쓴 것은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해자라는 말을 책 제목으로 떡 하니 달고 나온 책을 보니 이 개념도 그 사이 최소한 가치투자자들 사이에선 무척이나 보편화 되었구나 생각이 들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기업의 차별화된 우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든 버핏 옹도 이런 개념 확산에 무척이나 뿌듯해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본다.

이렇듯 가치투자자에게 경제적 해자는 더 이상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경제적 해자인가에 대해서는 이 개념의 창시자인 버핏의 투자 사례를 들어 파편적으로 이해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그가 선택한 종목이 너무 강렬하고 유명하다 보니 한국 시장에 적용할 때도 구체적인 기준에 따른 분류보다는 한국의 코카콜라 식으로 단편적 접근이 되고만 듯 하다.



신간 ‘경제적 해자’는 이미 ‘모닝스타 성공투자 5원칙’을 통해 가치투자용 참고서 집필에 탁월한 역량을 드러낸 팻 도시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역시나 쉬운 개념 설명과 명쾌한 구분 그리고 모닝스타 특유의 적절한 통계자료가 돋보인다. 책을 좀 빨리 읽는 독자라면 약 한 시간 정도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이면서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기업의 경제적 해자는 무형자산, 전환비용, 네트워크 효과, 원가우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구분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서 혼동하기 쉬운 개념들을 명확히 잡아주는 각론에 점수를 주고 싶다. 예를 들면 무형자산 중 하나인 브랜드라고 해도 단지 인기가 있느냐 덜하냐가 아니라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를 미국의 각 회사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신뢰도를 높이면서도 종목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근작이다 보니 인터넷 등 기존 산업의 가치 파괴로 인한 경제적 해자의 침식 사례를 다양하게 언급한 것도 좀더 정교한 해자의 개념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해자 개념에 입각한 버핏의 대표적인 투자 사례가 좀 오래되고 그 중 몇몇이 가치 파괴의 유탄을 맞은 것을 고려할 때 향후 버핏의 접근을 비판 없이 수용한 투자자들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서의 의미가 있다.

다만 현재 가치투자자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가치평가에 할애한 12장부터 14장까지는 깊이와 내용연결 면에서 사족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적 해자에 얼마를 지불하면 합리적인 것인지를 고민할 정도의 투자자라면 이 부분은 차라리 넘어가고 독립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참고로 이 책과 함께 보면 이해를 높일만한 책으로 이미 가치투자자의 책꽂이에서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는 ‘독점의 기술’이 있으며 경제적 해자 중 하나인 원가우위에 대해 좀더 심도 있는 이해를 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미사엘 안데르센과 플레밍 풀펠트가 공저한 ‘가격 파괴 전략’을 추천한다.

워낙 초유의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다 보니 최근 투자자들의 독서가 기업 분석보다는 미래 예측에 치우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서점의 경제경영 코너에 대공황 시기를 분석한 책들이 넘쳐나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자기 위안의 효과는 있을지언정 실제적인 투자 판단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다시 찾아온 기회에 눈을 가리는 역효과가 우려된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적 해자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하고 그에 맞는 종목들을 찾아보는 것이 미래를 위한 확실한 대비일 것이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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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댓글 1개)

  1. VIN
    VIN | 09.01/15 17:25
    경제적 해자란 단어는 일전에 읽은 '워렌버핏의 실전 주식투자'라는 책에서 보고 참 오랜만에 보는 단어군요^^ 처음 봤을땐 막연히 독점적 지위를 표현한 것이겠거니 하면서 지나쳤는데 이글을 보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가벼운 개념이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좋은 글과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신 최준철대표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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