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케이블 산업 고찰

내가 아는 분야라도 잘 정리해보자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글이 길더라도 이해하시라.

미국을 포함하여 케이블 산업은 초기에 난시청 해소를 목적으로 공중파 중계를 위한 소규모의 자생적인  중계 유선 방송으로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도 산이 높거나 오지일수록 중계 기지가 멀어서 시청이 어려운 난시청 지역이 존재한다. 하물며 우리보다 50배 정도 넓은 미국에서 재전송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 유선 방송(CATV, Community Antenna TeleVision)이 처음으로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1. 초기 CATV 사업은 수백명의 가입자를 가진 소규모였으며 지역내에서만 존재했었다.

1950년대 초반에 맹아적으로 생겨난 케이블 비지니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지상파 방송 산업이 성장하면 당연히 위축될 단기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였다. 그렇지만 50년대 중반에 중요한 존재 형태로서 MSO(Multiple System Operation)가 출현하기 시작한다. 소유 형태도 기업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때 사업을 개척했던 사람들은 Milton Jerrold Shapp, Henry Griffing 등등이었는데 Jerrold는 중계 안테나를 만들던 제조업자였다. 그는 1959년 9개의 SO와 3만명의 고객을 가진 선두기업을 운영하였다. Griffing는 150개의 극장을 가지고 있던 사업가였는데, CATV를 통해 가입자에게 pay-per-view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케이블 사업에 투자하였다. 50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아이디어가 여전히 유용하고 통신과 방송 기업들이 실현하기를 간절히 꿈꾸는 이상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이 때는 케이블 산업의 태동기로서 아무도 이 산업의 전망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였다.


2. 1960년대 케이블 산업 밖에서 관심과 투자가 일어나 본격적으로 MSO가 출현한다.

1959년의 기록에 따르면 39개의 CATV 그룹이 있었으며 대부분은 2-3개의 SO를 소유하고 있었다. Irving Kahn이라는 사람은 스포츠 경기를 극장이나 개인에게 전송할 사업을 찾다가 CATV 사업을 시작한다. 또 다른 경우 제조업체였던 H&B는 Jerrold로부터 사업을 인수하여 선두업체가 된다(22개의 SO와 6만명의 가입자).

이때의 케이블 산업은 지상파 방송의 화려함에 밀렸지만 방송과는 다르게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았다. 개념적으로 지상파 방송은 Broadcasting[방송]이고 CATV는 Narrowcasting[협송]이며, 이런 개념의 차이는 공중파-안테나와 케이블-모뎀이라는 전송방식의 차이로부터 나온다. 또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었다.  

구체적으로 지상파 방송이 전국을 커버하지 못하므로 CATV 수요가 많았고 일단 시스템을 구축하기만 하면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었다. 또한 매달 가입자들로부터 나오는 현금 흐름은 안정적이었다. 더 나아가 케이블 산업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일단 망을 깔고 나서 5-7년 동안 자유롭게 감가 상각을 하게 되면 수익이 나지 않아서 해당 기간 동안 세금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업의 가치는 가입자의 증가와 함께 높아져만 갔다. 1960년대 후반에 가서야 사람들은 케이블 산업의 성장성과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지상파 방송은 모두가 알다시피 비약적으로 성장하였고(한국에서는 1961년에 TV 방송 시작) 지상파 방송은 CATV를 견제하기 위해 케이블을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1969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케이블 시스템의 32.2%를 CBS, NBC 등등의 방송사들이 소유하거나 관여하고 있었다.
 
3. 케이블 산업의 지속 성장과 방송 시장에 대한 규제가 만들어지다.

FCC(Federal Communication Committee)는 미국의 통신/방송 정책을 총괄하고 규제하는 정책 기관이다. 한국의 방송위원회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미국은 통신 정책까지 포괄하므로 한국의 통신위원회와 방송위원회, 그리고 공정위의 반독점 정책 기능을 총합한 독립 정책 기구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FCC는 두가지 문제에 대해서 검토하고 연구하여 정책방향을 결정하였다. 그 하나는 케이블 산업의 점유율 규제로서, 1964년 1위 기업과 2위 기업이 합병하겠다고 했을 때 FCC는 CATV의 수평적 결합이 잠재적으로 반경쟁적인- 공정한 시장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에 대해서 우려하였다. 합병은 실패하였고 FCC는 상위 4개 기업과 8개 기업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기업 집중에 대한 규제 정책을 수립하였다.

다른 하나는 CATV와 방송사의 교차 소유의 문제로서, 1970년 FCC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제하에 TV와 케이블의 교차 소유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게 된다. 이 때 통신 산업과 방송 산업, 그리고 케이블 산업 간 수직적 통합을 제한하는 교차 소유 및 시장 진입 규제는 1996년 Telecommunication Act가 통과될 때까지 40여년 동안 그 줄기가 이어져온다.  위의 두가지 정책은 2007년 현재 한국의 케이블 산업과 통신산업, 그리고 방송 산업에 동일하게 소유 및 점유율 규제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케이블 산업은 기업의 크기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장의 파이와 기업의 크기를 키워나간다. 이런 성장세의 이면에는 케이블 산업이 대도시로 진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도시의 사람들은 돈을 내고 방송을 보는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대도시로 시장을 확대하기가 어려웠다. 

4. 1984년 케이블 커뮤니케이션법이 통과된 후 케이블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두가지 변화가 생긴다. 그 하나는 '종합' 유선 방송법의 제정으로 80년대 케이블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 하나의 변화라면 위성 방송이 출현하면서 산업간 경계의 완화로 표현되는 탈규제와 경쟁 촉진 무드가 보수적인 정치 철학과 함께 거세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케이블은 지역적 기반을 가진 자생적 중계 유선 방송 산업이었다면, 유선 방송법이 통과된 이후 케이블 산업은 전국적인 시장 규모를 가지며 공중파와 차별적이고 독자적인 프로그램 채널을 제공하는 멀티채널 미디어 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많은 수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되면서 1980년 4,225개이던 방송국의 수가 1990년 9,575로 증가하고 1천7백만 가입자(1980년)가 5천5백만으로 3배 이상 폭증하게 된다(가입율은 23%에서 61%로). 이 시기는 대체적으로 한국의 2005년과 비교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1995년 시작된 종합 유선 방송이 10년만에 1000만 가구를 돌파하고 62%의 가입율을 보이고 있다.

탈규제?하면 미국 공화당의 득세(80년대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의 공화당 집권기)를 거론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위성 기술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테크날러지의 발전으로 다매체다채널 시대의 도래를 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출현은 기존 통신과 방송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 진출과 기업 합병으로 수평적/수직적 결합의 기회를 제공한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자본의 수혈과 인수합병의 붐으로 나타나고 케이블 산업의 가치가 새롭게 재조명되게 된다. 미국 케이블 산업에서 기존에 존재해왔던 많은 거대 MSO - TPT, ATC, Warner, Storer 등이 사라지고 그곳에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TCI, Time Warner, Continental, Comcast, Cablevision이 그들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자본 수혈(예, C&M의 지분 30% 맥쿼리 은행에 매각)과 인수합병으로 케이블 기업의 가격은 높아만 가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케이블 기업의 자본력이 강해지는 것이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대신할 미래형 콘텐츠 산업을 주도할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80년 이후 케이블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해왔지만 1996년 Telecommunications Act이 통과되면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약을 예비하게 된다.

5. 규모의 경제와 시장의 성숙

1993년 통신회사 Bell Atlantic은 점유율 1위의 케이블회사 TCI와 합병을 시도했으나 FCC의 미승인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런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90년대 이후 "융합"이라는 화두를 업계와 학계, 그리고 정부에게 던졌다는 효과가 있다. 동일한 프랜차이즈 업종인 시내 전화회사가 케이블 회사를 인수하면 두 지역에서 모두 전화와 케이블 서비스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구상이 현실화되기에는 여런 난관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RBOC US West라는 전화회사가 Continental이라는 케이블 회사를 인수하였으나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1998년 Media One로 개명한 후 분사하게 된다. 90년대 후반 통신회사 AT&T는 1위의 케이블 회사 TCI를 480억불에 인수했으나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2001년 케이블 3위 기업인 Comcast에게 되팔게 된다. 이렇듯 이종 산업간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미국의 전화회사들은 기존의 시장 집입 규제라는 법적 제약을 없앴다는 성과를 거두었다.

케이블 시장 내적으로 고찰해보면 1994년 이후 미국의 케이블 시스템의 숫자는 정점에 도달(11,000여개)하게 되고 90년대를 거치면서 MSO의 숫자는 감소하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두가지를 시사한다. 케이블 시장의 성숙기에 접어들어 더이상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점과 케이블 산업내에서 기업간 수평적 결합과 합병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상하위 기업간 점유율 격차가 커지고 시장의 집중이 심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2006년 현재 미국 1위의 케이블 기업 Comcast는 2천3백만 케이블 서비스 가입자와 1천1백만의 인터넷 가입자, 2백40만의 전화가입자들 보유, 39개주의 4천5백만 가구를 커버하고 있다. 2위의 기업 Time Warner Cable은 1천3백만 비디오 서비스 가입자와 6백만의 인터넷 가입자를 통틀어 2천 6백만의 가구를 커버하고 있다. 1위 기업과 2위 기업간 격차는 1천5백만 정도의 가입자가 차이가 나지만 90년대를 통틀어 1위와 2위 기업의 격차는 4백만에 그쳤었다.

탈규제 및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산업간 경계가 낮아짐에 따라 케이블 회사는 전화서비스(인터넷 전화)를, 전화회사는 방송서비스(IPTV)를 할 수 있게 되어 "묶음 서비스"로 매출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산업간 융합은 전화회사나 케이블 회사의 입장에서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그만큼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많은 투자가들은 염려하고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6. 우리의 상황은?

케이블 회사들은 이미 전화서비스 사업자로 등록을 마치고 전화서비스를 시작하려고 준비중이고 통신회사들은 IPTV 서비스를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마도 머지않아 시장 진입 규제가 완화될 것이다. 기존의 이종 산업간 진입 장벽 완화라는 새로운 환경은 소비자들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고를 수 있다는 소비자 복지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분명 변화는 위기를 수반하지만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리라 판단된다.

  = 한국의 케이블 산업 특성.

 1) 프랜차이즈 업종이다.
아마도 도시가스업과 가장 유사할 것이다. 망만 깔면 현금이 그대로 쌓이는 땅짚고 헤엄치기 좋은 업종이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으로 완전히 경쟁이 배제되는 완전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불완전 프랜차이즈라는 특성을 가진다. 면허를 가진 지역 프랜차이즈로 매우 매력적인 산업이다.

 2) 케이블 가입율은 80%로 시장 성숙기이다.
아마도 시장 상위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계속되어 5개내외의 지배적 사업자로 재편될 것이 예상된다. 상위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 매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케이블 가격이 낮아서(월 평균 6불) 케이블 산업의 수익구조는 지극히 취약하다.
수익에 비해 케이블 기업의 시장 가치가 높다고 생각되는 이유이다. 여기에서 두가지 의미를 추출할 수 있다. 2006년 기준 일본은 가입자당 월 매출이 42불, 싱가포르 30불, 홍콩 24불, 대만 16불이다. 시장이 양적으로 성숙되었다고 하나 질적으로는 이용료 인상을 통해서 매출의 성장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모 연구기관의 예상에 따르면 2015년에는 가입자당 매출이 15불정도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낮은 케이블 가격은 역설적이게도 IPTV에 대한 적절한 진입 장벽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4) 2010년부터 케이블의 디지탈화가 예정되어 있다. 
케이블의 입장에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긴 하지만 디지털 기술로의 진화는 케이블 가격 정상화라는 부수적 효과를 가져온다(가입자당 월 15불).

 5) 인터넷과 통신 사업으로의 진출은 경쟁 심화라는 부정적 측면이 있지만 분명히 새로운 시장 창출이라는 성장을 가져온다.
2000년에 새로이 시작한 케이블의 인터넷 서비스는 현재 전체 인터넷 가입자의 16.7%를 차지하면서 케이블 산업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합상품(bundling services)은 저렴한 가격에 두종류 및 세종류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소비자에게도 강력한 유인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예로 현재 모 케이블 회사는 디지털케이블TV와 초고속인터넷을 묶은 결합상품에 대해 최대 40%의 초고속인터넷 요금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