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과 그의 동반자 스틸파트너스가 KT&G에 보낸 편지 단 한 통으로 '1석5조'(一石五鳥)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회사 측에 공개매수를 암시하는 편지를 보내는 '베어 허그'(Bear hug) 기법으로 공개매수 선언과 같은 효과를 낸 것. 그러나 우리나라 현행 법규에는 이같은 '유사 공개매수'를 규제하는 조항 없어, 실제로는 공개매수를 하지 않고 차익만 챙겨 빠져나가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다.
27일 증권 및 인수·합병(M&A) 업계에 따르면 아이칸 측이 지난 23일 KT&G 곽영균 사장에게 보낸 '주식인수 제안서'를 통해 노린 것은 △KT&G의 위임장 확보작업 교란 △주가 부양 △3자배정 유상증자 등 방어전략에 법적 부담 △사회적 여론 환기 △기선 제압 및 방어자 수준 파악 등 5가지에 이른다.
아이칸 측은 실제로 이 같은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째 아이칸 측은 주당 6만원에 KT&G 주식을 인수하겠다고 밝힘으로써 KT&G가 투자자들로부터 위임장을 확보하는 것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아이칸의 편지 한통으로 KT&G의 주주들, 특히 단기투자자들의 시선은 KT&G가 아니라 공개매수를 암시한 아이칸 쪽으로 쏠리게 됐다.
투자자 입장에서 만약 주당 6만원에 공개매수가 이뤄져 주식을 팔아치운다면 더 이상 KT&G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남의 일'이 돼 버리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KT&G 주식을 보유해 의결권을 가진 주주라도 굳이 KT&G에 위임장을 써줄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아이칸이 이처럼 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장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이유는 위임장 확보 싸움에서 자신들이 밀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위임장 확보전에서 불리하다면 차라리 위임장의 수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
둘째 아이칸의 편지가 공개된 뒤 KT&G의 주가는 무려 12% 넘게 뛰어올랐다. 이날 코스피시장에서 KT&G는 5만7400원으로 장을 마쳐, 편지가 공개되기 전인 23일(5만1200원)보다 12.1%나 상승했다.
통상 공개매수가 선언되면 주가는 공개매수 가격보다 1~2 호가 낮은 수준에서 형성된다. 아이칸 측이 제시한 가격 6만원에는 못 미치지만, 실제로 공개매수 신고서가 접수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셋째 아이칸 측의 편지는 경영권 분쟁을 공식화하는 효과를 가졌다. 이를 통해 아이칸은 KT&G 경영진이 장기전에 대비해 백기사(우호주주)에게 신주나 전환사채(CB)를 발행할 경우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행 상법상 3자배정 유상증자는 재무구조 개선, 신기술 도입 등 경영상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신주나 CB를 발행한 것이 분명할 경우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KT&G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같은 전략을 검토할 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 법원의 결정은 KT&G 측에 유리하게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최평규 S&T중공업 회장이 세양선박의 경영권을 공격하면서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과 상관없이 법적 분쟁 자체는 피고(채무자) 측에 심리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넷째 아이칸은 자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도 성공했다. 아이칸 측이 편지를 보낸 뒤 각 언론사들이 아이칸의 편지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KT&G를 비난하는 아이칸 측의 주장이 일반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결국 아이칸의 의도대로 KT&G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다섯째 "우리에겐 2조원의 자기자본이 준비돼 있다"는 아이칸 측의 주장은 KT&G 경영진들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한 위협이다. 주당 6만원씩 쳐서 단숨에 총 3333만여주(지분율 20.5%)를 사들일 수 있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본력으로 정면 대결하는 전략은 피하는게 좋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또 편지에 답변하기 전까지 KT&G의 움직임을 직간접적으로 관찰하며 KT&G의 의사결정 구조와 속도, 대응 수준 등을 파악하는 효과도 거뒀다.
아이칸 측은 공개매수를 암시하는 편지 한통으로 이 5가지 성과를 모두 거두면서도 국내 법상 제재는 모조리 피해가는 '노련함'을 보였다.
실제로 아이칸 측은 편지에서 '공개매수'(Take over bid, Tender offer)라는 단어는 철저하게 피했다. 단지 '회사 인수'(Acquire the company)라는 단어만 사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감독당국에서도 공개매수 절차에 대한 문제를 삼기가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편지에는 공개매수라는 문구조차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편지 내용만으로는 공개매수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칸 측이 편지에서 "본 제안은 모든 필요한 정부의 인허가와 제3자의 동의를 얻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단서를 붙인 것도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인 책임을 피하면서 주가를 움직이는 유사 공개매수 행위를 제재하기는 어렵다"며 "미국 증권거래법에는 유사 공개매수 행위로 시장을 교란시킬 경우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조항이 8개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회사 측에 공개매수를 암시하는 편지를 보내는 '베어 허그'(Bear hug) 기법으로 공개매수 선언과 같은 효과를 낸 것. 그러나 우리나라 현행 법규에는 이같은 '유사 공개매수'를 규제하는 조항 없어, 실제로는 공개매수를 하지 않고 차익만 챙겨 빠져나가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다.
27일 증권 및 인수·합병(M&A) 업계에 따르면 아이칸 측이 지난 23일 KT&G 곽영균 사장에게 보낸 '주식인수 제안서'를 통해 노린 것은 △KT&G의 위임장 확보작업 교란 △주가 부양 △3자배정 유상증자 등 방어전략에 법적 부담 △사회적 여론 환기 △기선 제압 및 방어자 수준 파악 등 5가지에 이른다.
아이칸 측은 실제로 이 같은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째 아이칸 측은 주당 6만원에 KT&G 주식을 인수하겠다고 밝힘으로써 KT&G가 투자자들로부터 위임장을 확보하는 것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아이칸의 편지 한통으로 KT&G의 주주들, 특히 단기투자자들의 시선은 KT&G가 아니라 공개매수를 암시한 아이칸 쪽으로 쏠리게 됐다.
투자자 입장에서 만약 주당 6만원에 공개매수가 이뤄져 주식을 팔아치운다면 더 이상 KT&G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남의 일'이 돼 버리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KT&G 주식을 보유해 의결권을 가진 주주라도 굳이 KT&G에 위임장을 써줄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아이칸이 이처럼 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장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이유는 위임장 확보 싸움에서 자신들이 밀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위임장 확보전에서 불리하다면 차라리 위임장의 수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
둘째 아이칸의 편지가 공개된 뒤 KT&G의 주가는 무려 12% 넘게 뛰어올랐다. 이날 코스피시장에서 KT&G는 5만7400원으로 장을 마쳐, 편지가 공개되기 전인 23일(5만1200원)보다 12.1%나 상승했다.
통상 공개매수가 선언되면 주가는 공개매수 가격보다 1~2 호가 낮은 수준에서 형성된다. 아이칸 측이 제시한 가격 6만원에는 못 미치지만, 실제로 공개매수 신고서가 접수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셋째 아이칸 측의 편지는 경영권 분쟁을 공식화하는 효과를 가졌다. 이를 통해 아이칸은 KT&G 경영진이 장기전에 대비해 백기사(우호주주)에게 신주나 전환사채(CB)를 발행할 경우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행 상법상 3자배정 유상증자는 재무구조 개선, 신기술 도입 등 경영상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신주나 CB를 발행한 것이 분명할 경우 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KT&G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같은 전략을 검토할 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 법원의 결정은 KT&G 측에 유리하게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최평규 S&T중공업 회장이 세양선박의 경영권을 공격하면서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과 상관없이 법적 분쟁 자체는 피고(채무자) 측에 심리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넷째 아이칸은 자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도 성공했다. 아이칸 측이 편지를 보낸 뒤 각 언론사들이 아이칸의 편지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KT&G를 비난하는 아이칸 측의 주장이 일반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결국 아이칸의 의도대로 KT&G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다섯째 "우리에겐 2조원의 자기자본이 준비돼 있다"는 아이칸 측의 주장은 KT&G 경영진들을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한 위협이다. 주당 6만원씩 쳐서 단숨에 총 3333만여주(지분율 20.5%)를 사들일 수 있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본력으로 정면 대결하는 전략은 피하는게 좋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또 편지에 답변하기 전까지 KT&G의 움직임을 직간접적으로 관찰하며 KT&G의 의사결정 구조와 속도, 대응 수준 등을 파악하는 효과도 거뒀다.
아이칸 측은 공개매수를 암시하는 편지 한통으로 이 5가지 성과를 모두 거두면서도 국내 법상 제재는 모조리 피해가는 '노련함'을 보였다.
실제로 아이칸 측은 편지에서 '공개매수'(Take over bid, Tender offer)라는 단어는 철저하게 피했다. 단지 '회사 인수'(Acquire the company)라는 단어만 사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감독당국에서도 공개매수 절차에 대한 문제를 삼기가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편지에는 공개매수라는 문구조차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편지 내용만으로는 공개매수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칸 측이 편지에서 "본 제안은 모든 필요한 정부의 인허가와 제3자의 동의를 얻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단서를 붙인 것도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인 책임을 피하면서 주가를 움직이는 유사 공개매수 행위를 제재하기는 어렵다"며 "미국 증권거래법에는 유사 공개매수 행위로 시장을 교란시킬 경우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조항이 8개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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