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이 밝았다. 증권가는 지수 2,000을 목표로 힘찬 새해를 열었다. 기대감은 높다. 워낙 단기간에 큰 폭으로 올라 조정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마저 되레 반기는 상황이다. 하지만 역시 고민은 고민이다. 좋아 보이는 건 너무 비싸고, 싼 건 왠지 덤비기가 부담스럽다. 묘책은 없을까. 이럴 때 월가의 투자고수들에게 훈수 한 마디를 부탁하면 어떨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실전베테랑답게 이들의 투자비법은 여러모로 배워봄직하다.

월가고수 중 선두주자는 단연 피터 린치(Peter Lynch)다. ‘주식투자의 거장’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존재다. 오래전 은퇴했지만 아직도 월가는 그를 그리워한다.

<배런스>지는 2000년 1월10일자에 그를 두고 ‘과거 10년 동안 펀드를 운용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펀드매니저’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그의 발자취는 대단했다. 1977~1990년까지 운용한 ‘마젤란펀드’는 미국 자산운용업계의 대표펀드로 명성이 자자하다. ‘뮤추얼 = 마젤란’이란 등식이 생겼을 만큼 고수익펀드로 유명했다. 그의 운용시절 마젤란펀드의 누적수익률은 무려 2,703%. 연평균으로 따지면 매년 29.2%에 달한다.

유명세엔 간단ㆍ명료한 그만의 투자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 아마추어 투자자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줘 찬사를 얻었다. 실제로 린치가 말하는 ‘완벽한 주식’은 아주 쉽다. 누구든 얼마든 생활 주변에서 ‘10루타 종목’을 찾을 수 있다는 견해다. 그는 “직장이나 쇼핑상가만 잘 살펴봐도 전문가들보다 훨씬 앞서 우량 종목을 골라 가질 수 있다”며 “이해하기 쉬운 회사야말로 가장 완벽한 주식의 특징”이라고 잘라 말한다. 단순ㆍ평범하되 경쟁만 없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려운 사업구조는 제쳐두는 게 속편하다. 통신위성보다 팬티스타킹 회사가 좋다. “쓰레기처리처럼 남들이 혐오하는 사업이지만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다면 10루타 후보로 제격”이라고 덧붙인다. 반면 뛰어난 머리는 주식투자의 방해물이다. 통계학보다 역사나 철학이 더 도움이 된다는 지론을 가졌다. “주식투자에 쓰이는 수학이란 건 초등학교 4학년쯤에서 이미 습득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주식을 고를 때 반드시 챙겨보는 지표가 있다. 일종의 투자기준이다. 우선 매출액 비중. 한 업체의 특정ㆍ대표상품 매출비중은 높을수록 더 매력적이다. 독과점을 염두에 둔 브랜드 파워다. 해당 업체의 연간 성장률을 뜻하는 주가수익비율(PER) 분석은 필수다.

현금보유 상황도 빠지지 않는다. 현금보유가 많을수록 신규사업 등에 유리해서다. 주당 현금보유액이 많을수록 이는 저가 매입의 기회를 의미한다. 특히 정상적인 자본지출이 있고난 후 남아 있는 돈의 액수인 여유현금흐름에 주목하는 게 좋다. 같은 맥락에서 연금제도 역시 체크포인트다.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연금의무를 지녔는지 여부를 확인하란 메시지다. 한국도 이제 기업연금이 시작됐다. 연금부담액이 지나치면 기업으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보텀 라인’(Bottom-Lineㆍ세후순익)이 중요하다. 호ㆍ불황을 막론하고 장기보유 시 비교적 높은 이윤폭을 갖는 게 좋은 주식이다. 

부채요인은 기업건강의 바로미터다. 피터린치는 “부채(25%↓)와 자본(75%↑)비율이 이상적”이라며 “기복이 심한 종목이나 과도기 업체의 부채는 특히 주의해서 분석할 것”을 권했다. ‘은행부채 < 고정부채’가 바람직하다. 또 무조건 고배당주가 좋은 건 아니다. 이익의 사용처로 배당보다 신규투자가 더 훌륭한 선택일 수 있어서다. 배당주를 산다면 20~30년간 배당을 꾸준히 늘려온 업체가 확실하다. 장부가치도 잘 분석해야 한다. 장부상 자산은 얼마든 과다 평가될 여지가 충분하다. 부채는 확실해도 자산은 정하기 나름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장부가치의 과소평가 확률이다. 브랜드 가치가 대표적이다. 과거 매입해 뒀던 석유 등 원자재를 현재 가격이 아닌 당시 가격으로 장부상 기재할 수 있다. 영업권과 특허권도 마찬가지다. 재고자산이 주는 건 긍정적인 신호다. 성장이 반드시 확대를 뜻하지도 않는다. 저성장이라도 비용절감ㆍ가격인상으로 수익증가가 가능해서다.

장세예측 능력은 필요 없다. ‘다음번’이 결코 ‘지난번’과 같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굳이 원한다면 ‘칵테일파티’ 이론을 대보면 된다. 칵테일파티 때 주식이 메인 이슈면 장세는 천장이라는 식이다. 그나마 10루타 종목은 약세장 때 발굴ㆍ매입하는 게 좋다. 그는 “올바른 종목을 고르면 장은 저절로 풀린다”며 “마음에 드는 주식을 고른 후 그 주식을 사는 건 결코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고 전한다.

‘한탕주의’는 역시 ‘No’다. 그는 선물ㆍ옵션거래를 전혀 하지 않았다. 선물ㆍ옵션과 관련해 “전문투자자가 아닌 이상 파생상품으로 성공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빠른 부자를 원해 덤비지만 사실은 빠른 파산의 지름길”이라고 평가했다. 선물ㆍ옵션은 방심한 자들로부터 세심한 자들에게 흘러가는 거대한 소득재분배와 같다고 봤다. 과도한 수익률도 비현실적이다. 연 25~30%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건 꿈이며, 개인투자자라면 10%만 해도 대단한 성적이라는 입장이다. 그에게 포트폴리오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개별 종목의 우량함 여부가 더 중요하다. “그 종목을 훤히 알고,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굉장한 유망종목일 때는 가능한 많이 갖고 있는 게 좋다”는 게 속내다. 분산 자체를 위해 잘 모르는 종목에 넣어둬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투자금액이 적다면 3~10개가 적당하다. 또 현금보유보다 종목교체로 기회를 찾는 게 효과적이라고 덧붙인다.

잘못된 가설ㆍ미신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다분히 신화적이며 잘못된 개념들을 마음속에서 영원히 씻어버릴 것”을 강조했다. 얼추 12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떨어질 만큼 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떨어질 리 없다는 게 대표적인 오해다. 인내심을 빙자한 자기 위로로 주가란 바닥없이 떨어지는 게 비일비재해서다. 오를 만큼 올랐다는 것도 마찬가지. 그는 “가치변화가 없는 한 오르는 데 한계를 짓지 말라”고 조언한다. 바닥매입 욕심이나 ‘언젠가는 오르겠지’식의 믿음도 제쳐두는 게 좋다. 얼마까지 회복되면 팔겠다는 투의 매도전략도 효과 제로다. 린치는 “한번 짓밟힌 주식은 결코 팔기로 맘먹은 수준까지 회복되지 못하니 즉시 팔 것”을 권한다. ‘그걸 샀다면 떼돈을 벌었을 텐데’라는 후회 역시 위험하다. 이런 강박관념이 손실로 왕왕 연결돼서다.

아마추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게 바로 ‘매매타이밍’이다. 린치는 이를 어떻게 소화했을까. “주가가 떨어지는 종목을 최저가로 잡으려는 건 마치 수직강하하는 칼을 잡는 것과 같다. 그 칼이 땅에 닿아 꽂혀 잠시 흔들리다 고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급하게 떨어지는 주식을 잡다간 필연적으로 칼날 쪽을 쥐게 된다. 고통스러운 경악만을 가져다줄 뿐이다.” 주식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주식을 사는 데 최적기란 없다. 좋은 가격에 괜찮은 물건을 찾았다면 그때가 매수적기다. 쇼핑할 때와 똑같다. 대폭락 때도 기회다. ‘팔자’ 분위기 속에서 ‘사자’를 실행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단 성급하게 파는 건 금물이다. “이익실현에 열중해 더 갈 수 있는 걸 미리 팔아선 안된다”며 “이런 종목을 잡았다면 그 혜택은 최대한 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물론 연구는 필수다. “연구 없는 투자는 카드를 안 읽고 포커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베개를 살 때 상표를 읽어보는 열성이면 충분하다. 특정제품의 강점을 보고 그 주식을 매수하려면 당기순이익과 회사 관련 이슈 정도는 챙기는 게 효과적이다. 같은 값이면 대형회사보다 중소기업이 낫다. 큰 회사는 움직임이 무거워서다. 또 저PER주(주가수익비율)가 수두룩한데 굳이 고PER주를 살 필요는 없다. PER는 최초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햇수다. 물론 업종마다 PER는 다르다. 때문에 산업평균 PER와 비교하는 게 좋다. 그는 “보고서를 읽을 때 화려한 앞 페이지보다 뒤쪽의 대차대조표를 보라”며 “매출액, 현금흐름, 부채, 배당금, 재고자산, 세후순익 등의 수치는 꼭 챙겨라”고 가르친다.

피터 린치의 ‘완벽한 주식’ 13가지 조건
1. 따분하게 (또는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 복잡한 이름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반면, 우스운 이름은 무시돼 충분히 싸게 살 수 있다.
2. 따분한 사업을 한다. → 병뚜껑을 만든다면 호재가 시장에 알려질 때까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3. 뭔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성질의 사업을 한다. → 따분하면서 혐오스러우면 최고다. 구질구질한 사업아이템을 분석하려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4. 일종의 분리독립된 자회사다. → 기업의 특정 부서가 독립해 나간 업체는 놀랍도록 수익이 좋다. 평판 악화를 우려한 모기업이 도와줘서다.
5. 기관들이 안 갖고 있으면 애널리스트도 취급하지 않는다. → 기관이 무관심한 회사는 잠재적 성공주다. 버림받은 종목이 크게 뛰는 법이다.
6. 소문이 무성하다. → 유동성 폐기물과 관련 있거나 마피아가 개입돼 있다는 소문이 돌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7. 뭔가 침울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 실적과 성장세가 아무리 좋아도 죽음과 관련된 아이템은 월가 전문가들의 외면 대상이다.
8. 성장이 전혀 없는 업종이다. → 고성장 업종은 경쟁이 거세다. 대신 성장이 없는 산업은 라이벌의 공격이 없다.
9.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틈새에 위치해 있다. → 보석보다 채석사업이 독점적이다. 인기가 없어 경쟁도 없다. 독점권은 곧 가격경쟁권의 확보다.
10. 사람들이 꾸준히 사는 물건이어야 한다. → 완구보다 면도날이 낫다. 변덕스러운 구매 취향에 의존하는 업체에 승부를 걸지 마라.
11.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업체여야 한다. → 가격경쟁에서 혜택을 향유하는 업체에 투자하라. 컴퓨터회사보다 하드웨어회사가 유리하다.
12. 내부자들이 자사주를 산다. → 자사주매입은 성공 힌트다. 매입주체가 부하직원일수록 좋다. 경영진이 지분을 갖고 있으면 더 좋다.
13. 회사에서 자사주를 되사들이고 있다. → 자사주 매입정책은 주주공헌활동이다. 유동주식 감소는 주식가치 상승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