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이노와이어리스는 설립 5년째의 벤처회사다. 창업자금 5000만원으로 시작은 초라했으나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 유ㆍ무선망 통합 시험장비시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정진섭 부사장은 창업 멤버 5명 중 연구개발(R&D)을 도맡아 기술 드라이브로 이노와이어리스를 일군 주인공이다.

엔지니어 외길을 걷던 정진섭 부사장이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창업에 동참한 배경에는 20년지기 죽마고우 정종태 대표가 있었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동창으로 대학시절 내내 붙어다닌데다 졸업 후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생활을 함께 했다. 조지아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소로 복귀하려는 정 부사장을 정 대표가 붙잡았다.

정종태 대표는 전자통신연구소 재직 시 CDMA 상용화 전 미국 퀄컴사로 건너가 원천기술 전반을 보고 익힌 '신사유람단' 5명 중의 한 명. CDMA 기술의 상용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에 기술 뿐 아니라 사업 전반에 실제로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꿰고 있었다. 친구따라 발을 들인 정 부사장의 `모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연구소와 학교를 오가며 공부에만 파묻혀 지냈던 정 부사장이지만 5명이 전직원인 신생 벤처에서 연구에만 몰두 할 수는 없었다. 자재 구입을 위해 청계천 일대를 뒤지고 드릴로 구멍을 뚫는 것부터 줄질을 하는 것까지 모두 정 부사장이 해야할 몫이었다.

기술연구와 영업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잠못 이루기를 수십번. `우정만 믿고 감당못할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닌가.'하는 갈등,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다시 기술 개발에 하루 해가 저물었다.

사업 초기에는 북미시장을 뚫기 위해 CDMA 2000 교환기를 제조했던 루슨트테크놀로지사를 찾아 뉴저지로 날아가 데모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곧바로 라스베이거스 CTIA(Cellular Telecommunication Industry Association) 전시회를 찾아 고객으로 가장해 코마코와이어리스테크놀러지(CWT)사 부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자금이 넉넉치 않아 끼니를 거르고 새우잠을 자며 경비를 아꼈다.

이노와이어리스가 시장에 뛰어든 시기는 국내 통신시장 전반에 일대 혁신의 바람이 불던 전환기였다. 96년 CDMA 서비스 상용화 이후 퀄컴은 무선망 최적화 툴을 사실상 무상으로 공급해 왔으나 `CDMA 2000 1x' 서비스로 진화하면서 무상 공급을 중단했다.

게다가 음성 위주의 통신시장에 무선인터넷을 비롯한 데이타통신이 더해지면서 데이타통신 지표를 측정하는 프로그램과 장비의 수요가 발생했다. 당시 선두업체였던 W사 역시 데이타통신 서비스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장에 진입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하고 기존의 공급망이 없다는 한계 때문에 우선 적은 비용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용자를 통신환경 측정 운용요원이 아닌 개발요원에 한정하기로 했다.

경쟁사가 단가는 낮고 물량은 많은 운용요원 시장을 공략하자 같은 방법으로는 물량 공세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이곳 저곳 통신현장에서 차를 몰며 통화 품질을 테스트하는 운용자 툴에 비해 개발용 툴은 물량은 적지만 시장 확대에 따른 단가인하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주 사용자가 통신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기술을 인정받아 제품에

이노와이어리스는 자금이 여의치 않아 하드웨어가 포함된 멀티형 제품은 취급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만 공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소프트웨어 제품에 대해 제 값을 쳐주지 않는 실정이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복합된 멀티형 전파관경 측정 시스템을 판매해야 수익을 높일 수 있었다. 실제로 경쟁사의 수익은 상당부분 하드웨어에서 창출됐다.

행운의 여신은 뜻밖에도 일본시장에서 손을 흔들었다. 한국보다 1년 늦게 CDMA 1x EVDO 서비스를 개시한 일본은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이동통신 최적화 기술이 한국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의 코웨이사와 협력관계를 맺고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으나 문제는 PN스캐너였다.

한국에서는 최적화시 단말기를 이용한 전파환경측정시스템 만을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없었으나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는 정밀 계측기인 PN스캐너를 갖춰야만 수주를 딸 수 있었다. PN스캐너 기술은 확보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수주를 포기하면 협력사인 코웨이도, 회사도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사급 인력 2명과 함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10개월 말미를 얻어 PN스캐너 개발에 밤낮없이 매달렸다. 10개월 내에 개발이 완료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개발에 실패해 납기일정을 지키지 못하면 공멸이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PN스캐너 개발은 결국 10개월을 꽉 채워서야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이노와이어리스는 하드웨어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당시 국내 경쟁사인 W사는 인텔의 860 프로세서와 리얼타임 OS를 결합한 하드웨어를 멀티형 제품에 사용하고 있었다. 테스팅 툴을 위한 하드웨어의 으뜸 조건은 빠른 처리속도와 저전력. 정 부사장은 독일 점프텍사의 산업용PC를 떠올렸다. 로켓과 우주선에 주로 쓰이는 산업용 PC는 크기가 작아 기동성이 있으면서 전력효율이 높다.

별개의 하드웨어기기가 아니라 PC를 사용하게 되면 소프트웨어 전용 프로그램과 하드웨어간 호환도 가능해 이중 개발 부담이 사라진다. 산업용 PC에서 착안해 이동통신 최적화 장비로 공급하기까지는 불과 2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소프프웨어 전용 프로그램과 하드웨어용 프로그램 간의 호환은 경쟁사와 차별화 되는 강점으로 작용했고 현재 미국 CWT사 등이 그대로 모방해 산업용 PC를 사용하고 있다.

정 부사장은 일본이 통신시장 초기 TDMA를 선택한 것이 한국에게는 축복이라고 말한다.

"세계 통신시장이 TDMA를 기반으로 형성됐더라면 최적화 장비 1위라는 타이틀은 우리 것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력이 뛰어나도 상황에 맞지 않으면 사장되는 법, 결국 시장만이 살아있는 셈이지요."

CDMA 2000 1x, 1x EVDO, WCDMA 등 길지 않은 창업기를 기술 진화의 중심에서 보내며 터득한 정 부사장의 철학이다.

◇정진섭 부사장 약력

1963년 충남 예산 출생

1982년 천안고등학교 졸업

1988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 석사

1995~2000년 조지아공대 Graduate Research Assistant, 박사학위 취득

2000~200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2001~현재 이노와이어리스 부사장 김희정기자 dontsigh@money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