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섬유전쟁 선포'의 의미는?

[알고투자합시다]

[알고투자합시다] – 섬유 쿼터제 폐지와 세이프 가드

  

저가 중국산 유입으로 피해국가 속출

 

거의 100%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올해 1월 1일 국제섬유 쿼터제도가 폐지되면서 저가 중국산 섬유제품이 아무런 규제없이 각국에 유입되어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중국과 포지션이 겹치지만, 경쟁력에서 밀리는 중남미 국가 업체들은 도산위기에 몰려 있다고 호소하는 한편, 고급의류가 주력인 EU조차 올 한해동안 최소 6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의 경우 1분기 중국 섬유제품 수입은 전년동기보다 258%나 급증했으며, 1~2월 대중국 무역적자는 291억$로 51%나 증가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 내에서는 중국 섬유류의 수입을 다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갔으며, 결국 약속을 깨고 말았다. 쿼터제가 전면 폐지된 지 5개월 만에 ‘인조사 니트셔츠’ 등 4개 품목에 대해서 연간 수입물량 한도를 공표했다. 사실상의 쿼터제 부활인 것이다. 이들 제품들은 27일 선적분부터 쿼터의 적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에 중국도 강경 맞대응

 

이에 중국은 미국의 무역압력에 맞서 섬유전쟁을 선포했다. 중국정부는 “무역적자 확대의 책임을 다른 국가에 떠넘기기 전에 스스?조치를 취하라”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엄연한 국가간의 약속을 미국이 깨버렸으니 자극을 받을만도 하다. 애초에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지 그랬냐는 입장이며, WTO 규정상 이러한 제제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쿼터제 폐지에 따라 자국 섬유류가 미국 시장을 완전히 점령할 태세를 보이자 그동안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해왔다. 섬유제품에 대해 수출관세 인상계획을 발표하여 자국 섬유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보였으니 말이다.

 

사실, 수출관세를 소폭 인상한다 하더라도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다. 젓가락질을 하는 민족의 특성상 손재주가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저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이 넘쳐난다는 점 때문에 중국은 섬유류 생산에 있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나도 양심은 있다’는 제스쳐를 취할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성의를 보였으면, 미국이 약속을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사태가 어디까지 치닫을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양국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었을 것이며, 미국 정부 역시 자국 산업 보호와 중국 견제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섬유쿼터제란?

 

섬유쿼터제는 섬유 및 의류제품에 대한 일종의 보호무역조치이다.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으로써 인건비가 가격 경쟁력을 결정짓기 때문에 쿼터제가 없다면,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저임금 국가의 제품이 시장을 100% 장악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 수출국이었던 한국, 대만, 홍콩 등은 시장을 완전히 잃게 되고, 수입국인 미국 및 EU의 입장에서도 자국 동종업계의 타격, 무역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경쟁력을 잃은 국가가 도태되는 것이 자유무역주의의 원칙이기는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나 광범위 하기 때문에 일종의 완충기간을 갖자는 것이 쿼터제의 취지였다. 쿼터제로 인해 생산기지를 저임금 국가로 옮길만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고, 가격경쟁력 약화에도 불구하고 수출 물량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미국의 바이어가 값이 싼 중국산만 수입하고 싶어도, 쿼터제 하에서는 거래업체별로 미국 수출량 제한이 있기 때문에 중국산으로 충당되지 않는 부분은 한국, 대만, 홍콩 등지에서 비싸게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한국은 2004년 기준으로 세계 5위의 섬유수출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섬유산업은 완전히 쇠퇴했다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2004년 전체 수출의 10%가 섬유류였다고 하니 그동안 쿼터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쿼터제는 2005년 부로 WTO 가입국가에 한해서 완전 철폐가 예정되어 있었고, 드디어 시행이 되었다. 이제 바이어들은 가장 싸게 만드는 나라에서 원하는 만큼을 사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쟁력 있는 국가와 업체에만 오더가 집중되는 현상(Less Country, Less Vendor)이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 섬유류 수출도 전년동기 대비 7%가 급감하는 등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기업은 새로운 성장기회를 맞아…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인해 중국산 제품의 위세가 다소 주춤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할당량은 종전 쿼터제의 할당량에 비해 완화된 상태이고, 장기적으로 중국산의 시장장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무역마찰 수혜주’라는 식의 접근은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

 

기업은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어떤 여건 속에서도 기민하게 움직인다면 살아남을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섬유,의류 업체에 대해서 비관으로 일관할 필요는 없다.

 

쿼터제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상장 기업은 영원무역, 한세실업, 신성통상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미국의 유명 브랜드에 납품 하는 OEM의류 생산업체인데, 쿼터제 폐지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일찌감치 생산기지를 동남아와 중남미로 옮긴 상태이다. 세이프 가드 발동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중국 생산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지만, 이번 무역 마찰이 해결되면 중국 생산 기지 건설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중국에 대응할 만한 생산국으로는 특히 베트남이 주목받고 있는데, 임금이 중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으로 손재주가 좋다는 메리트가 있다. 다만, 중국보다는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향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 기업의 예상대로 베트남 등의 국가가 중국에 비해 경쟁할만한 생산기지로 자리잡을 경우, 오더가 집중되는 Less Vendor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반면, 생산성, 물류비용 등에서 작은 차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바이어로부터 완전히 소외당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 역시 안고 있다.

 

이들 OEM업체 외에 관련 기업으로 꼽을 수 있는 곳은 대표적인 쿼?품목인 합성섬유, 면제품 등 생산업체이다. 이들 기업은 중국의 수출량이 폭증함에 따라 존립 기반 자체를 잃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일단은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국과 차별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업체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꾸준한 성장이 가능하다.

 

또한, 아예 이번 기회에 업종을 전환하는 재정의형 기업도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수의 국내 섬유업체들이 업력이 오래된 탓에 부동산 등 보유 자산가치가 우량한 편이다.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섬유업에서 철수한 후, 유망 기업에 투자하는 지주회사나 유통 및 임대업체 등으로의 변신이 가능하다. 물론 쉽게 되는 일은 아니지만, 한국의 버크셔 헤더웨이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박성빈 psb1980@viptoo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