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서 분리된 후, 방만한 투자로 위기에 빠져…

1965년 새한제지공업주식회사로 출발한 한솔제지는 IMF 이후 자회사 부실 및 과다한 차입금 규모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1994년부터 제지분야 설비 증설을 통해 인쇄용지 및 백판지 생산능력을 키워 나갔으며, 1996년부터 한솔엠닷컴(018 PCS로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한솔텔레컴, 한솔CSN, 경보 등을 설립, 인수 하면서 정보통신, 금융, 부동산 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한계수익을 내지 못하는 계열사가 대부분이어서 한솔제지가 그룹의 악화된 재무적 부담을 떠맡을 수 밖에 없었다.

계열사에 대한 추가출자 등의 원인으로 한솔제지의 2000년말 부채비율은 196.5%, 순차입금은 1조 2,883억원에 달해 매출액 9,357억원을 상회할 정도였다. 당시, 차입금에 대한 평균적인 이자율을 8%로 가정한다면 1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해야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겨우 충당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2001년 9월, 주가는 2,520원의 최저점을 지나…

<한솔제지 주가차트>

그룹차원의 어려움 속에서 한솔제지의 주가도 사상 최저가인 2,520원 까지 하락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은 2001년 한 해 동안 관계사에 대한 부실을 대폭 반영하는 등 가장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솔개발과 한솔캐피탈 관련 지분법평가손실 3,421억원, 보유중이던 KTF 및 SKT 유가증권처분손실 274억원, 계열사인 한솔전자 주식을 매각하면서 발생한 투자자산처분손실이 506억원, 한솔기술개발원의 자산가치 절하에 따른 투자자산 감액손실 71억원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2001년의 손익계산서는 최악의 국면을 지나게 되는데, 매출액 8,915억원, 영업이익 431억원에 경상이익은 3,776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2001년의 사상 최저점인 2,520원은 시가총액 1,100억원에 해당하며, 이듬해 영업호조로 1,429억원의 영업이익과 62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한솔제지를 유심히 지켜봐왔던 투자자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한 가격이었을 것이다. 2001년 큰 폭의 적자는 수치상으로는 겁이 날만한 수준이지만, 차후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2004년을 기점으로 마무리

한솔제지의 구조조정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다. Cash Cow 역할을 해왔던 전주 및 상하이의 신문용지 공장을 매각하고, 한솔엠닷컴에 외자를 도입했다. 2000년에는 결손이 누적된 한솔엠닷컴을 한국통신에 매각하여 PCS 사업에서 철수했다. 2001년에는 펜아시아페이퍼 주식을 매각하였다. 이에 따라 한솔제지의 관계사는 2001년 17개 사에서 2002년 12개사로 줄어들었으며, 2005년 현재 9개로 크게 줄어든 상태이다. 특히,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4년 6월 한솔건설에 대한 350억원 증자를 실시하여, 그룹 구조조정을 거의 마무리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솔건설에 대한 출자는 부실 계열사인 한솔파텍, 한솔디앤씨, 한솔캐피탈을 한솔건설로 합병하여 제거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구조조정 마무리로 지분법평가이익 (+)반전 기대

구조조정의 성과 중에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자회사들의 지분법평가이익 반전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물론 의미있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 반전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 오크밸리 리조트를 운영 중인 한솔개발은 현재 개발중인 퓨전골프장 분양대금이 유입되면서 부채가 470억원 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골프장, 리조트 사업의 특성상 금융비용 부담만 없으면, 안정적인 이익을 낼 수가 있지만, 한솔개발은 1,000억원 이상의 부채 때문에 큰 폭의 적자를 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채가 감소하면서 상당 수준의 적자폭 축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솔건설은 적자 계열사 합병의 효과가 2004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흑자전환이 유력하다. 한솔텔레컴은 한솔그룹 내부의 전산용역만 맡고 있는 상태이므로 부실이 발생할 여지는 없다. 그 외에 한솔홈데코나 한솔EME는 애초부터 건실한 자회사들이었다.

차입금 축소와 조달금리 하락으로 금융비용 감소할 전망

1998년 1조 4,283억원에 달하던 순차입금 규모는 2004년 8,011억원으로 축소된 상태이다. 또한, 2004년까지의 조달금리는 7% 수준이었으나, 최근 발행한 회사채 금리가 4.21%에 불과해 조달금리 하락에 따른 이자비용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전망이다. 2006년까지 대부분의 부채가 4% 대의 저금리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은 제지 사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자회사 부실 해소를 위해 투입되어 왔다. 하지만 자회사 정리가 마무리된 이상, 번 돈을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점이 온 것이다. 따라서 한솔제지가 보유한 임야 매각 및 영업현금흐름을 통해 본격적인 차입금 축소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업인 제지업 전망은?

한솔제지는 인쇄용지 및 백판지 내수 점유율이 각각 24%, 41%인 국내 1위 업체이다. 특히, 공급측면에서 당분간 별다른 설비증설이 없는 현실 속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가격결정력 및 원가경쟁력에서 경쟁업체 대비 우위에 있다. 제지업은 큰 폭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는 성숙 산업이지만, 종이류의 내수 판매가 GDP 성장률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전망이다. 또한, 본격적인 경기회복 시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타 업체 대비 큰 폭의 수혜가 가능하다.

전체 매출의 45%를 차지하는 수출 부문은 환율 하락과 주요수출국인 미국의 경기 호조가 다소 꺽임에 따라 전년 대비 둔화가 불가피 하다. 하지만, 한솔제지에게 있어 수출은 내수 부문의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의미가 더 크며, 수익성도 내수가 더 좋기 때문에 악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또한, 환율의 영향도 2억 달러 규모의 외화부채를 고려할 때 전체적으로는 상쇄되는 부분이 크다.

제지업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정 부분 사실이다. 특히 수출 시장은 펄프가격과 제지 수요에 의해 판매가격이 정해지는 무차별 완전경쟁시장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제지 가격은 시장을 90% 이상 지배하고 있는 대형 업체들이 카르텔 수준의 생산량 및 판가 책정으로 묶어두고 있으며, 유통망도 상당 수준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수 경기와는 무관하게 높은 수준의 가격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중남미 지역의 펄프 생산 증가로 펄프 가격의 하향 안정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중국산 제품의 침범 가능성 또한 현재로서는 낮다. 중국 제지 공장들의 제조원가는 생산 공정의 비효율로 인해 국내보다 오히려 높은 상황이며, 수입된다 하더라도 물류비, 유통비용 등을 고려하면 경쟁력이 낮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2002년부터 10%를 상회하고 있는 영업이익률이 증명해주고 있다.

길었던 잠에서 깨어나 Good Company로…

한솔제지는 구조조정의 시간은 길었지만, 결국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꾸준한 실적을 내고 있는 본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외적인 요인 때문에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가치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추가적인 CAPEX가 없기 때문에 당기순이익이 재무구조 개선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한솔제지 장항공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