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슬' 넘본 M&A시장 큰손

[주주이익으로 본 기업가치] 대한전선

2004년 M&A 시장의 화두는 단연 진로였다. 진로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지도는 단연 최고였고, 시장점유율 역시 수도권에서 95%에 육박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국내 유수 식품대기업들은 너도나도 입찰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한전선의 존재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국내 전선업종의 선두업체지만 진로가 부도났을 때, 이미 진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공격적으로 2,528억원 상당의 정리담보채권과 330억원 상당의 무담보채권을 매입해 국내 M&A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대한전선 계열사까지 합치면 약 3,500억 원 상당의 진로 관련 채권들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비록 하이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예비협상대상자로 밀려나면서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진로 채권 관련 투자수익은 무려 3,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진로 관련 채권은 매각할 것이라고 한다. 향후 또다른 M&A를 준비하기 위한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도대체 대한전선은 어떤 회사이길래 주력업종과는 상관없는 업종에 뛰어들어 독보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마이다스 손'이 될 수 있었을까?

 

◇ '성장유망산업'으로 고개 돌리다

 

대한전선의 본사를 방문해보면 우선 낡은 회색 철제 책상으로 대변되는 보수적인 내부분위기가 눈에 확 띈다. 손님을 접대하는 접객실 책상의 유리는 깨져있어 테이프로 붙여놓았는데 국내 M&A 시장에서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위상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다. 이는 체면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대한전선의 기업철학을 상징해주는 모습이다.

 

대한전선은 24,000억 원의 LS전선에 이어 16,000억 원의 매출로 국내 전선업종의 2위업체다. 지난 1955년 창립했는데 업력이 50년에 달한다. 국내 전선산업은 대표적인 저성장 산업이다. 1960년 대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양적인 성장패러다임이 주류를 이뤘을 때에는 인프라 산업의 성격을 띄는 전선산업은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호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이 어느덧 마무리되면서 전선산업의 성장성은 둔화되기 시작했다. 비록 2000년 대 인터넷 통신망을 까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수요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수요규모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향후 성장동력원을 발굴하기 위해 대한전선이 선택한 카드가 바로 M&A다. “위로 성장할 수 없다면 옆으로 성장하면 된다”는 경영진의 말은 전선업종의 수직계열화보다는 타업종으로의 확장을 통한 인수합병을 상징한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건 아니다. 양적인 성장에 의해 전선산업이 성장했듯이 이제는 질적인 성장에 의해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M&A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전선이 선택한 산업은 바로 레저, 문화 등을 아우르는 종합레저산업이다. 지난 2002년 6월 무주리조트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3월에는 쌍방울을 계열사로 편입했고, 급기야는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 관련 3,500억 원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3월에는 무주리조트 근방에 있는 선운레이크밸리라는 골프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인수확장인 듯 하지만 '종합레저산업'의 커다란 틀 아래서 전략적으로 추진되어 온 M&A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인수하되 '간섭' 않는다

 

 

대한전선의 적극적인 M&A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ROE가 7% 수준에서 유지되면서 자본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수익성 개선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선업종의 한우물을 파온 대한전선의 공격적인 타업종으로의 확장에 대해서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대한전선은 인수한 기업들에 대해 철저히 전문경영인을 위임하면서 경영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무주리조트인데 워터트리 자산관리사와 위탁경영을 체결했다. 무주리조트는 작년 영업수익이 584억 원으로 보광휘닉스(708억), 용평리조트(657억)에 이어 3위다. 지난 2002년에는 16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나 작년에는 5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내년이면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M&A를 위해서 유휴부지의 매각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흥전선공장이 그 한 예다. 이 지역은 시흥역 인근에 위치한 알짜부지로 평가받고 있는데 원래 2003년 1,30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으나 부동산 개발업체가 중도금을 지급하지 않아 당해 매각이 무산됐다. 하지만 작년에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들과 1,600억 원에 매각하기로 확정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는데 이미 시흥전선공장의 기계설비 등은 인근 안양공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지금 매각해도 무리가 없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업지구로서 낙후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금천구 일대가 인근 구로 디지털산업단지의 후방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발플랜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땅값이 많이 올랐다. 이에 따라 대한전선은 주력산업인 전선사업의 CAPA를 줄여서라도 자금을 마련해 향후 M&A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작년 흑자전환된 주주이익의 지속성에 관심

 

 

대한전선의 주주이익 추이는 2003년 264억원의 (-)에서 작년에는 587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평균적으로 주주이익이 500억 원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데 유독 1995년에는 2,790억원의 (-)를 기록한 점이 눈에 띈다. 이 때는 알루미늄 사업으로 진출하기 위해 영주의 알루미늄 공장을 인수했고, 또한 안산의 스텐레스 공장까지 인수하면서 기계장치 관련 설비투자 증가액이 2,900억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주주이익의 흑자전환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적극적인 기계장치나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자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M&A로 성장의 초점이 맞춰진 이상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한전선의 M&A 전략으로 주주정책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길 수 있으나 대한전선은 액면가(2,500원)의 20%는 무조건 배당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현재 상장된 전선업체를 바탕으로 한 업종 PER이 약 7배인 반면 대한전선은 9배 이상 PER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장의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업종 1위인 LS전선의 PER은 6배인 점은 상대적으로 대한전선의 가치가 고평가 될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면서 M&A를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대한전선의 마이다스 손은 또 어떠한 마술을 부릴 수 있을 지 지켜보자.

 

양동선 sebian523@viptoo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