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진로, 우리는 또 국부유출을 당했나

[진단] 진로매각, 우리는 또 국부유출을 당했나

2005.4.13. 수요일
딴지 편집국

진로 매각의 서막이 올랐다. 3조 2천억 원 수준의 가장 많은 인수금액을 질러버린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진로(眞露)의 진로(進路)에 있어 진행된 그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전망이다..가, 또다시 새로운 논란거리가 생겨나고 있으니 바로 외국'투기'자본에 당해서 국부를 유출시켰다는 지적들이다.

국내 컨소시엄에 팔렸는데 왜 난데없는 국부유출인고 하니, 진로 채권 70%를 외국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사실 금번 진로 매각만이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알짜기업의 해외 매각과 주식시장 개방 등은 실로 한국인들에게 많은 위기감과 아쉬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친숙한 기업들이 매각될 때마다 그리고 얼마 뒤, 거액의 투자이익을 환수해가는 해외 투자사들의 뒷꽁무니를 볼 때마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일어나곤 했다.

대한민국의 재산이 또 한번 해외자본에 당했다며 국부유출 논란이 이는 그 사정을 이제부터 살펴보자.

  진로 스토리

먼저, 잘나가던 진로가 오늘날 왜 이렇게까지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따져보자.

원래 진로는 알다시피 한국 주류 산업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던 초우량기업이었다. 그러나 1988년 장진호 회장 취임 이후 이뤄진 사업다각화가 화근이었다. <진로유통센터>를 시작으로 <연합전선> 인수, <조선신약> 인수, 통조림 업체 <펭귄> 인수, 건설업 진출과 <진로쿠어스 맥주> 설립 등을 추진하며 진로는 20개가 넘는 업체를 거느린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면모만 갖추었을 뿐,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계열사간 지급보증 등으로 경영상황이 악화되며 1997년, 진로는 무너지고 만다.

당시 분위기를 환기해 보면, 재벌이 신규사업 진출에 혈안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는 03 정부의 세계화 국제화 발언으로, 기업의 실속보다는 외형을 좇는 시대 흐름도 강하게 작용했다. 결국 대체적인 시대 흐름이라는 외적 요인, 그리고 계열사가 많고 매출을 중시하던 구태의연한 과거 재벌의 모습을 답습하겠다는 엉뚱한 "진로(進路)"를 선택한 회사 자체의 문제가 작용하며 이런 몰락을 자초한 것이었다.

국부유출 논란은, 이런 상태에서 진로측이 골드만삭스와 접촉할 때부터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진로는 1997년 9월 7일 화의를 신청, 1998년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화의 인가를 받는데, 법원의 심사 와중에 진로측은 당시 외자유치를 추진하겠다며 골드만삭스에 컨설팅을 의뢰했고, 이후 골드만삭스 측은 1998년 3월부터 주요 채권자들로부터 진로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 2003년에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졌다.

여기서 문제가 됐던 것은 외자유치 자문을 위해 1997년 골드만 삭스를 만났을 당시 맺은 비밀유지협약 사항이다. 구조조정 컨설팅을 위해 진로의 기업상태를 조사했던 골드만 삭스는 진로의 동의 없이 회사 내부정보를 다른 목적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비밀유지조항도 자문계약서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회사 내부 정보를 파악한 상황에서 자산관리공사 및 국내 채권금융기관으로부터 진로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진로측은 회사 내부의 정보를 이용해서 골드만삭스가 채권을 싸게 샀기 때문에 비밀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고, 골드만 측은 자문부서와 투자부서가 구분--방화벽이라고 표현하는--되어 있어, 실제로 자문부서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진로는 법정까지 갔다가 패소한다.

국내에서도 유수한 많은 기업들과 회계법인이 있었는데 진로는 왜 굳이 골드만삭스에게 컨설팅을 맡겨버렸을까? 아마도 시대적으로 IMF 상황에서 외국인에게 일단 고개가 숙여지는 상황이었던 데다가, 또 부도 전까지 기업의 투명성 문제로 투자자들을 골탕 먹였던 진로였다. 진로 입장에서는 기업의 투명성을 널리 알려주고 싶은(?) 자격지심에서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골드만삭스에게 간과 쓸개까지 다 보여주었던 거다. 국부유출은 그러니 골드만측이 아니라 진로가 야기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또 당했나?

주식시장을 잠깐 보자. 2004년 12월 결산법인들이 주식시장에서 지급한 배당총액은 10조 1,400억 원이고, 이중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47.7% 수준인 4조 8천억 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보며 다시 한번 국부유출의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따져보자. 이머징 마켓 '한국'의 장기적 성장률을 바라보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뛰어든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에 맞는 투자이익을 환수한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해 보자. 그들이 한국에 투자해서 벌어가는 돈이 과연 우리에게는 국부유출인가? 또 그들이 한국에서 번 돈은 꼭 한국에서 다 써야하나?

외국인에게 좋은 투자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은 그들이 돈을 벌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차의 경우 5월 미국 앨러바마 공장 준공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미국에서도 한국의 현대차에 대해 국부유출 논란이 일 법 하지만, 현대차가 지역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판단한다. 또한 인천의 송도 신도시 개발, 파주 <LG필립스> LCD 단지조성 등 외자유치를 위한 지방자치단체들에게도 미래에 있을 수 있는 국부유출을 논해야 하는 것일까?

혹자는 위의 경우와는 달리 진로의 골드만삭스와의 관계는 투기라고 못박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것처럼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컨설팅을 맡으면서 기업의 본질가치를 파악했으며 이는 주채권자로부터 채권을 넘겨받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즉, 정밀한 실사관계와 분석을 통해 세운 전략이 맞아떨어진 투자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진로의 매각과 관련 내부정보 이용 혐의라는 골드만삭스의 시원치 않은 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을 비판하기 전에 진로의 당사자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앞서의 이야기처럼 진로의 부도는 장진호 전 회장의 사업다각화 실패가 1차적인 원인이었고, 외자유치 한답시며 골드만삭스를 끌어들인 것도 진로였으며, 내부정보 이용의 책임을 골드만삭스측에 끝내 받아내지 못한 것도 진로였기 때문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진로 매각 과정에서 골드만삭스의 가격부풀리기를 비난하기도 한다. 내막을 보자. 역시 방화벽을 철갑처럼 둘렀다는 골드만측의 자문부서와 투자부서가 매각 가격을 서로 다르게 말했다는 거다. 여기서는 양 팀이 정보를 서로 공유했는지 안했는지가 중요치 않다. 진로매각을 추진한 투자부서는 단지 해외언론과 인터뷰를 했을 뿐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품의 희망매도가격을 말한 거고 공교롭게도 그 가격 언저리에서 협상이 이루어졌다.

현재 보물단지로 변해버린 진로 채권을 갖고 있는 <대한전선>. 대한민국 '토종'기업인 이 채권자는 동료채권자이자 주채권자인 골드만삭스를 어떻게 평가할까가 무척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답은 뻔하다. 흥정 한 번 참 잘한다는 거지.
 

  이제 푸념은 그치자

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은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라 불리는 영미식 자본주의 시스템, 신자유주의 체제에 강제 편입됐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약탈적 자본의 폐해들, 예컨대 거대 다국적 기업의 독과점 체제, 투기에 가까운 지역기업 조각내기 등등에 깊은 우려와 거센 반발이 있어 온 건, 자명한 현실 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은 이미 싫든 좋든 그 체제에 예속되어 있으며, 또 이를 거부할 상황이 못된다는 점이다. 이미 시스템 속에 있다는 것.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로 매각에 전력을 기울인 하이트의 경우를 보자. 하이트가 떼돈을 써 낸 이유 중에 진로라는 한국국적 기업을 해외 자본에게 매각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애국적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가. 하이트가 골드만삭스의 영리한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면서까지 진로를 사고 싶었던 가장 큰 동인은 무엇보다 자기 욕심이다. 향후 주류시장의 사업적 헤게모니를 쥐고 싶다는 비지니스 욕망에 움직인 거다. 기업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게도.

또 하나.

진로라는 기업은 언론의 호들갑처럼 국민기업인가. 진로소주를 논함에 있어, 농심 <신라면>이나 <새우깡> 그리고 빙그레의 <바나나우유>처럼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내는 기업에 상응하는 프리미엄 부여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진로는 '소비자들이 열심히 사 준' 소주로 벌어들인 수입을 방만하게 운용하다 망한, 그냥 일반 사기업이었다. 진로라는 브랜드가 전국민적 지명도를 가진 소주였고 그게 사랑을 받았을 뿐, 진로기업이 곧 국민기업은 결코 아니다. 국민주 방식으로 운영된 것도 아니고, 이윤을 국민을 위해 공공복지에 쓴 것도 아닌데 국민기업은 웬 국민기업인가. 그냥 장사 잘 하던 사기업이다. 해외자본과 대비에서의 극적 효과를 노리고 언론들이 쓴 오바용어일뿐이란 말이다.

"진로의 비극은 일제의 침탈을 맞은 조선을 떠올리게 한다. 무능한 왕조, 교활한 외침에 충직한 백성만 죽어났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 한겨레 2005-04-06"

이건 진로의 비극이 조선 말기 상황과 같은 게 아니라, 경제를 바라보는 틀과 인식이 여전히 조선 말기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신자유주의든 아니든, 국부라는 피상적 개념으로 한 국가 내 경제활동을 평가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우릴 진정으로 조선 말기의 비극으로 되몰아 넣는 건, 신자유주의 자체가 아니라 향후 당연히 펼쳐질 글로벌 경제체제하에서 이런 방어적이고 피해자적인 인식, 바로 그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좋은 지 나쁜 지, 혹은 유리한 지 불리한 지는 세계관과 처한 경제적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선진 강대국의 논리인만큼 우리에게 유리한 것보다 불리한 것이 많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따져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대안을 제시할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 작업은 당연히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고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은, 이미 예속되어 있는 이 시스템 하에서 최선의 퍼포먼스를 낼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저 피해자가 되어 언제까지고 질질 짜고 푸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머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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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딴지일보에서 진로 관련 기사가 나와서 퍼왔습니다.  입장면에서는 제 생각과는 다른 면도 많습니다만, 그래도 진로 매각에 대해 꽤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군요.

  기사 마지막의 푸념이나 할 때가 아니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외국인들이 몇년 전에 행한 투자들 수익 챙겨갈 때 푸념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기업 수익 살펴보는게 훨씬 발전적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