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

들어가며…

단기적으로는 절대 변하기가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국 장기적으로 변하고야 마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닌가 싶다. 오늘의 1등이 내일의 1등이라는 보장이 없으며, 갑작스런 상승이나 성장을 보였다고 할 지라도 그에 걸 맞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살아남지 못하고 만다.

바다에 거센 파도가 없다면, 굳이 선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방향과 속도만 잘 프로그래밍된 엔진만으로도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끊임없는 파도를 이겨내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배처럼 시시각각 다가오는 도전들을 이겨낼 때만이 현상 유지가 가능할 뿐더러, 발전도 꾀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경영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주변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영풍제지’의 과거와 현재 및 향후 바람직한 방향을 나름대로 제시해보려 한다.

제지업계의 독점기업

‘(주)영풍제지’는 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이를 만들어 공급하는 기업이다. 수많은 종이 중에서도 화학섬유의 실패, 제지의 지관, PVC필름의 지관으로 사용되는 ‘지관원지’와 골판지 제조에 쓰이는 ‘라이너원지’를 주로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 특히 ‘지관원지’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30%가 넘는데 영세한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거의 독점적인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시장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경쟁도 치열한 ‘라이너원지’ 시장에서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 ‘지관원지’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대규모 기업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제지업계에서 꾸준한 성장을 일궈온’ ㈜영풍제지’의 탁월한 선택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단위 : %)

<㈜영풍제지 시장 점유율 추이>

최적화 작업

그러나 최근 ㈜영풍제지의 사업보고서를 검토해보면 동사가 주력사업부문으로 매진해온 ‘지관원지’의 매출액비중과 생산실적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우선 ‘지관원지’와 ‘라이너원지’의 생산실적 추이를 살펴보자

(단위 : 톤)

< 지관용원지, 라이나원지의 생산실적 >(2002년도는 32기 사업년도)

‘지관원지’의 경우 31기(2000. 6. ~ 2001. 6)를 기점으로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라이너원지’는 최근까지 꾸준히 생산이 늘고 있다. 이번에는 매출액 비중의 추이를 살펴보자.

(단위 : %)

<지관용원지, 라이너원지의 매출액 비중>

‘지관원지’와 ‘라이너원지’의 매출액비중이 교차하고 있다. 동사가 95년 10월 이후 추가적인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존의 설비를 조금씩 ‘라이너원지’ 생산에 돌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91년 이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영풍제지의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해온 ‘지관원지’에 대한 생산비중을 줄여나가는 반면, ‘라이너원지’의 생산비중은 늘려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지관원지’의 전방산업인 ‘화섬업계’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화섬업계’는 80년대 말 이후 경쟁적으로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오다가 IMF를 기점으로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유가 급등으로 인한 원자재가 상승으로 현재 총체적인 난관에 빠져있다. 75년 상장 이후 한번도 적자를 내본 적이 없었던 ‘㈜코오롱’이 화섬산업에서 자동차/IT 소재/바이오쪽으로 사업다각화를 꾀했고(현재는 적자상태), 전반적으로 잇따른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전 10개월간 가동중단 되었던 ‘㈜금강화섬’이 매각되기도 했다.

전방산업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독점적인 지위에 있다고 할지라도 기존의 매출구조를 고수해서는 발전은 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즉 변화된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최적화 시켜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만만찮은 현실

그러나 이러한 ㈜영풍제지의 체질개선의 앞날은 멀고도 험하다. 주지했듯이 ‘라이너원지’ 시장은 ‘지관원지’와는 비교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규모가 크고, 그에 따라 대규모 제지업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또한 ‘라이너원지’ 시장을 주도하는 대부분의 제지업체들이 계열사로 전방산업 업체인 골판지(상자)제조업체를 두고 있어 확정적인 매출처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는 실정이다. 즉 기존의 시장점유 질서를 깨뜨리기가 쉽지 않은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사실 ㈜영풍제지가 ‘라이너원지’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02년도에 ‘라이너원지’ 업계 6위의 ‘㈜동일제지’와 그 계열사로 ‘골판지상자제조업계’ 선두권 기업인 ‘㈜태림포장공업’이 공동으로 ‘㈜영풍제지’를 인수하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당시 ‘㈜영풍제지’의 최대주주로부터 지분 전부를 인수하기로 계약까지 체결된 상황에서 최대주주측의 일방적인 계약파기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당시의 인수가 성사되었더라면, ‘㈜영풍제지’로서는 ‘라이너원지’의 안정적인 매출처를 확보함으로써 최근 ‘지관원지’ 업계에 불어닥친 난관을 헤쳐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존에 대한 애착

비록 호기를 놓치기는 했지만, ‘㈜영풍제지’가 시대의 흐름에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오늘의 불황을 예견이라도 했듯이 꾸준히 부채비율을 줄여온 끝에 무차입경영을 실현한 것만으로도 동사의 생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업계 평균을 상회하는 ROE를 비롯하여 낮은 매출액 대비 원가비중은 '(주)영풍제지’의 불황을 이겨내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 어떠했는지 여실히 알려준다.

(단위 : %)

이 뿐만이 아니다. ‘(주)영풍제지’는 수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는데, ‘02년 이후 전체판매량 중 약 5%정도를 수출해왔다. 최근 들어 무역상사를 배제한 직수출 비중을 늘려 마진율을 높이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현재 달러화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가격상승으로 수출은 중단된 상황이다.

옥의 티

이렇게 고무적인 수치를 기록할 정도로 노력을 경주한 ‘㈜영풍제지’ 에게 또 한가지 옥의 티가 있었으니, 이는 곧 상당한 지분법평가손실을 안겨주고 있는 자회사들이다.

또다시 역사는 ‘02년도에서 시작된다. ‘02년도 하반기에 투자한 ‘㈜아이셋’과 ‘㈜골드앤퍼스트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가 그들이다.(‘영풍USA’도 자회사이나 미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회사) ‘㈜아이셋’은 디지털 방송 관련 업체이며, ‘㈜골드앤퍼스트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는 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업구조조정 관련 업체이다. 즉 ‘제지업’ 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업체들이다. 최근 흑자로 전환한 것은 다소 희망적이나, 당시 ‘골판지제조업체’의 지분인수를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맺음말

기업의 행방도 결국은 사람이 그 행동 주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보면, 그 행방의 굴곡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문제는 굴곡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굴곡으로부터 얼마나 교훈을 얻었는지의 여부가 아닌가 싶다.

‘㈜영풍제지’는 비록 지난날 경영상 실수로 판단되는 행방의 굴곡이 여럿 있었지만, 제지업체라고 보기에는 놀랄 정도로 안정적인 재무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어, 향후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만 않는다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이다.

그동안 드러난 아쉬웠던 점들이 어떻게 개선되어 나가는지를 계속 점검해 본다면, 투자의 재미를 상당히 느껴볼 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