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칩, 손 필요없는 세상 만든다

꽃에 이 칩을 달아두면 수명과 성질, 언제 어떤 꽃이 피는 지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심장이식 환자에게 이것을 넣으면 환자 맥박이 제대로 뛰는 지 원격으로 알 수 있다. 강아지가 짖으면 칩이 먼저 알아차리고 '배고파'라는 말로 번역해 들려준다.

 

공상 만화 속에서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지능칩(RFID전자태그)이 바이오를 만나게 되면 현실이 된다.

 

실제로 일본의 한 초밥집 접시에는 지능칩인 'RFID'가 숨겨져 있다.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RFID 리더기를 접시더미 위에 대면 전체 가격을 합산해준다. 따로 계산할 필요가 없다.

 

지능칩이 실용화되면 쇼핑 습관 등 일상 생활이 크게 변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RFID 리더를 설치하면 이 지능칩이 부족한 식품을 알아내 인터넷을 통해 자동 주문한다. 수퍼마켓의 계산대 앞에서 굳이 지갑을 열고 현금이나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다.

 

RFID는 1ｍ 이내 무선으로 다량의 정보를 동시에 읽을 수 있어 사람의 손이 필요 없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맥카런(McCarran) 공항은 올해 RFID 시스템을 첫 도입했는 데 수하물 분실률이 낮아지고, 화물처리 인건비가 크게 줄어들었다. 국내 아시아나 항공도 김포~제주 구간에 이 시스템을 연말쯤 시범 설치할 예정이다.          

 

 

 

◇물류비용 절감 환영 vs 프라이버시 침해

 

유통업계가 이를 놓칠 리 없다. 물류비용 절감이 절실한 유통업계는 일찍부터 지능칩에 관심이 높다.

 

월마트는 RFID 시스템을 갖춘 창고를 설치하고, 전 세계 제품 공급 업체들에 내년까지 RFID칩 장착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국내 유통업계에도 마찬가지다. 이마트를 보유한 신세계 계열은 서울 구로 디지털 산업단지 안에 '미래형 매장'을 지난 7월에 설치했다.

 

RFID는 식품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불식시킬 수 있다. 농수산물·공산품의 원산지나 재료·유통기간 정보를 1~2초 안에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수퍼마켓에서 카트에 달린 리더기에 도매 포장육(肉)을 대면 가공지역부터 사육지·족보 등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러나 이같은 지능칩의 활용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베네통·월마트 등 유통업계 리더들이 RFID를 도입할 경우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소비자 구매정보를 업체들이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현재 개당 1달러 이상으로 비싼 편이다. 하지만 2006년쯤 개당 5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상품화, 대중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능칩 산업육성에 높은 관심

 

지능칩의 활용은 국내 바이오 산업 육성 차원에서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능칩인 RFID는 복합칩(컴퓨터 중앙처리장치나 메모리 등을 하나의 칩으로 통합한 것, SoC)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송도에 RFID 전용 물류단지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 장관은 또 "RFID는 정보통신 뿐만 아니라 바이오 산업과 결합해 인간의 삶을 공상과학 수준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칩"이라고 설명했다.

 

지능칩은 차세대 디지털 바이오 산업으로 그 육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메모리 시장이 어느 정도 포화상태에 도달해 차세대 산업을 육성할 필요성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여  년 전 메모리에 투자해 지금까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일본을 따라가 보자고 했던 반도체 메모리 시장은 이제 300억 달러 규모가 됐다. 수출에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메모리 만으로는 더 이상 국민 소득을 향상시키기엔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메모리 하나 만으로는 국민 소득 2만 달러나 3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없기 때문이다. 메모리가 필요한 IT산업이 포화상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같은 차원에서 바이오 산업의 육성은 점차 기업이나 국가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현재 바이오 산업의 전세계 시장 규모는 540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그 성장속도는 20% 이상이다.

 

다행히 바이오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며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아 국내에서 관심이 많은 분야다. 정부도 바이오산업을 국가의 핵심 전략산업으로 정하고 2010년까지 G7 수준으로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정영화 기자 hollyje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