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孫子) '투자자를 보호하라'

[역사속에서 배우는 경영전략]

손자병법이 만들어진 춘추전국 시대는 전쟁의 시대였다. 하루도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고 어떤 전쟁은 10년 이상 지속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를 난세라고 부르지만 중국역사 5천년 동안 이 시기보다 발전했던 시대도 없었다.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금세기 과학과 문명이 한 단계 높아졌듯이 당시 계속되던 제후(諸侯)들 간의 전쟁은 문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 춘추전국, 기회와 성공 시대

발전이란 측면에서만 본다면 갈등과 긴장은 평화와 안정보다 조직을 보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때로는 위기 상황에 대한 방어기재로서의 긴장감이 조직의 역량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의 분단 상황과 IMF 위기의 경험, 지역감정과 노사간의 갈등, 어느 누구도 내일을 보장해 주지 않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현실은 경우에 따라서 새로운 창조와 체질개선의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춘추전국시대는 참혹한 전쟁의 실상과는 별도로 어떤 계층에게는 특별한 기회의 시대였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천민의 신분에서 갑자기 출세한 장군도 있었고, 군수물자에 투자해 엄청난 부를 이룬 상인들도 나타났다. 진시황제의 일급참모로 활동했던 이사(李斯)는 초(楚)나라의 별 볼일 없는 가문 출신이었지만 진(秦)나라에 CEO로 영입돼 외국인 출신으론 드물게 재상의 지위까지 올랐다. 요즘 말로 하면 벼락출세를 한 것이다.

진시황제의 친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는 상인 여불위(呂不韋)는 자신의 재력을 이용, 킹메이커 역할을 통해 엄청난 부와 권력을 획득했다. 전쟁과 혼란은 변화에 적응하는 누구에게나 성공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며 기존 귀족층의 기득권을 깨뜨리고 사회 구조의 판을 다시 짜는 변화를 가지고 왔다. 이런 다이내믹한 변혁의 시대에 변화에 적응해 성공한 사람과 조직도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지나간 시대 타령만하며 쓸쓸히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진 개인과 조직도 있었다.

 

변화는 누구에게 열려있었으나 적응한 사람과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적응하지 못한 조직의 명분과 논리는 자조적(自嘲的)인 목소리를 내며 역동적 시대 변화 속에 파 묻혔다. 반면 재빠르게 투자에 성공한 조직은 새로운 세(勢)를 형성하며 시대의 주역으로 나서게 되었다. 제3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르는 21세기 역시 성공한사람과 조직을 보면 나이, 계층, 학벌과 무관하게 다이내믹한 생존의 현장에서 얼마나 시대를 제대로 읽어내고 발 빠르게 대응하여 정확한 투자를 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 전쟁은 최대 투자처

당시 투자 중에서도 가장 모험적인 투자는 전쟁이었다. 위험이 크면 클수록 배당률은 큰 법이다. 대부(大夫)와 사(士) 계층은 크고 작은 전쟁에 참가하며 병력과 군수물자를 투자했다. 이들 투자자들은 전쟁에 대한 명분도 있었지만 승리 후에 분배되는 수익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군주에 대한 충성심과 별도로 전승(戰勝)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데이터를 가지고 전쟁의 참가를 결정했다. 전쟁을 주관하는 군주도 더 이상 애국심과 명분만 가지고 이들의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없었다. 이제 그들에게 투자에 대한 확신과 비전을 보여줘야만 했다.

 

손자는 이런 측면에서 투자자들의 투자자금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 "나라가 군대의 출병 때문에 재정이 가난해 지는 것은 먼 곳까지 군수물자를 실어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國之貧於師者遠輸) 먼 곳으로 수송하다보면 그 전쟁의 비용을 댄 귀족들의 재정이 고갈된다.(遠輸則百姓貧)” 백성(百姓)은 성(姓)을 가진 귀족들이었다. 당시엔 백관(百官)의 귀족들만 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백성’이 '민중’이란 의미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漢)나라 이후부터다.

 

태조 왕건(王建) 드라마에 나오는 호족들을 백성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군주의 입장에서 보면 투자자들이었다. 이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동참이 있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병력과 군수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은 군주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군주가 전쟁을 결정하고 호족들에게 추인을 받으며, 그 과정에서 귀족들은 필요한 경비와 인력을 댄다. 그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이유는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투자를 통해 영토를 확보하는 등 새로운 부를 창출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로 봐야 한다. 요즘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가 투자자들을 통해 자금을 모으고 그 자금으로 사업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들을 설득해 투자를 이끌어 내지 않고는 전쟁에서 이기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 투자자 자금사정 악화되면 전력 약화

손자는 가능하면 귀족들이 처음 투자한 비용만으로 전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라고 강조한다. "군대를 잘 운용하는 장수는 투자한 귀족들에게 병력을 두 번 징집하도록 하지 않으며(役不再籍) 군량미를 몇 번씩 실어 보내라고 하지 않는다.(糧不三載) 가능한 적지에서 물자를 해결하도록 한다.(取用於國)”

 

나폴레옹은 '군대는 위(胃)를 가지고 싸운다.’라고 말했다. 병사들에게 적절한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게 돼있다. 기업이 자금이 모자라면 기업 활동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전쟁을 하면서 농업을 같이 할 수 있는 군대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후방에서 식량을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방의 병사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전투할 수 있는 자급자족 식량 조달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전쟁에 나선 부대가 식량을 자꾸 본국에서 보내 달라고 하면 군수물자를 댄 호족들이 궁핍해지듯이 투자를 받은 기업이 자금을 투자자에게 자꾸 요구하면 투자자들의 자금 사정은 악화되고 그것은 군대의 전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된다.

 

손자는 투자자인 귀족들의 재정에 대해 예민할 정도로 민감하게 지적하고 있다. "돈을 대는 귀족들의 재정이 고갈되면 그들 지역의 세금과 부역이 가중된다. 군대의 힘이 떨어지고, 군대의 재정이 고갈되면, 국내의 귀족들의 가세도 기울어져서 그들의 재정에 70% 정도가 손실을 입게 된다.”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오늘날 일부 기업들이 투자자들에 재정에 대해 그렇게 민감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투자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손자는 "능력이 있는 장군은 적국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한다(智將務食於敵)”고 강조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을 수송하는 일은 장거리 원정(遠征)에 가장 큰 문제점이다. 수송의 거리와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송에 필요한 인력과 그들이 먹는 또 다른 식량의 낭비가 심하게 된다. 식량을 목적지까지 도달시키기 위해 몇 달 씩 걸리는 기간 때문에 수송을 담당하는 인력의 식량과 소나 말의 먹이의 소비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진(秦)이 흉노(匈奴)를 공격할 때 낭야에서 북하(北河)까지 식량 30석을 수송하면 1석이 도착했다는 사실도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군수물자를 전방으로 수송하는 것은 막대한 경비와 손실을 감수하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손자는 가능한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고 몇 번씩 강조하는 것이다.

손자의 고민은 전쟁이 오래 지속되고 식량을 소모함에 따라 처음 전쟁에 참여한 호족들의 마음이 변해 이탈하는데 있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초기 투자자들의 투자금액을 모두 소진하고 재차 투자를 요구하는 기업에 무한정 투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좋은 비전이 있고 장밋빛 미래가 있더라도 투자한 자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기업은 더 이상 원활한 자금을 수급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든 투자자들의 자금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투자를 보호하려고 할 때 기업은 경쟁력을 갖고 탄탄한 세(勢)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된 자금을 개인의 치부(致富)를 위해 사용(私用)하고, 어떤 경영자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현실에 비춰볼 때 2천 500년 전 손자의 '투자자를 보호하라!’는 생각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하는 바가 크다.

 

박재희 박사 taoy2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