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의 발목을 묶는 사슬

노키아(1): 노키아의 발목을 묶는 사슬

 

몇 주 전, 모토롤라의 최근 상황과 앞으로의 전략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해외 단말사 중에 가장 중요한 회사는 노키아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노키아의 최근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고, 다음 글에서는 노키아의 최근 움직임인 “사업자 친화적 태도”를 살펴 봄으로써, 단말사와 이통사업자 간의 향후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노키아의 근황

 

아직도 노키아는 세계 핸드폰 시장에서 굳건한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노키아는 2위인 모토롤라의 두배 가까운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의 핸드폰 샵에 들어가면 아직까지도 노키아가 상당히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모습을 살펴보면, 잘 알려진 대로 노키아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시장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저가 물량 공세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브랜드 이미지와 수익성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야심차게 진행했던 엔게이지 게임폰 프로젝트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실패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신제품 QD의 출시 역시 그다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노키아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리서치 그룹인 가트너에서는 금년 봄에 펴낸 보고서를 통해 노키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아래 분석의 기본적인 토대는 가트너 그룹 보고서에 따른 것임을 밝혀 둔다.)

 

1. 제품 라인업 경쟁력 저하 (Lack of competitive product portfolio)

 

유럽과 미국의 핸드폰 시장은 이제 핸드폰을 처음 사는 사람들보다 교체 수요자가 더 많은, 소위 “Replacement Market” 이다. 이 시장의 특성은, 소비자들이 자기가 쓰는 제품에 비해 기본적으로 그다지 다르지 않으면서도 기능이 더 발전된 제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03년을 거치면서 가장 히트를 칠 수 있었던 모델은, 녹색 스크린의 투박한 폰을 갖추고 있던 사용자들이 재구매 대상으로 눈여겨볼 만한 단말기, 즉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멋진 디자인과 컬러 스크린을 갖춘 카메라폰” 정도였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러한 설명에 들어맞는 제품, 즉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제품 라인업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 노키아의 제품들은 바 타입 (Bar type)의 천편일률적인 디자인 팩터를 갖춘 저가형 모델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또 한편으로는 7700이나 9500 커뮤니케이터, 엔-게이지 등 너무 시대를 앞서간 듯한 파격적인 단말기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제품들을 개발하기 위해 아마 노키아는 상당한 개발 리소스를 투입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코어 제품(core product)을 개발하기 위한 여력이 상당히 소진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이미지 리더격의 파격적 제품이 등장하더라도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되며, 실제 소비자의 욕구를 가장 잘 반영하는 핵심 제품군을 반드시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을 생각해 보자. 종종 자동차 회사는 많은 비용을 들여 이미지 리더격인 모델을 개발해서 출시한다. 그러나 이는 그 해당 모델을 많이 팔아서 매출을 많이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모델들은 제품 개발비에 비해 매출이 미미, 손해를 볼 때도 있다고 한다.) 브랜드 가치를 높여 라인업상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모델을 더 많이 팔기 위함이다. 이것이 Dodge가 바이퍼를 만들고 Acura가 NSX를 만드는 이유이다.

 

노키아는 앞서간 제품을 만듬으로써 각 제품마다를 근거로 한 신규 시장을 창출해 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규 시장은 크게 창출되지 않았다. 엔-게이지가 게임 전용폰 시장을 크게 창출하지 못했던 것이 좋은 예이다. 오히려 기존 단말의 교체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기본기에 탄탄한 제품을 적기에 내놓지 못했고, 이는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2. 브랜드 파워 약화 (Weakened brand)

 

물론 노키아는 아직도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과 함께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니고 있다.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04년 세계 10대 브랜드 중 노키아는 8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노키아는 하위 저가형 모델에 주력해 왔고 이는 브랜드 이미지 약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노키아는 수년전까지만 해도 가장 쿨(cool)한 이미지를 가진 단말기 회사였다. 그러나 이제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어필하는 쿨한 브랜드는 소니에릭슨과 삼성이다. 심지어 미국과 독일의 전형적 대기업 문화를 가진 모토롤라와 지멘스 마저도 ‘쿨’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즉, 노키아는 세계인의 머리속에 깊이 각인된, 널리 알려진 강력한 브랜드임에는 틀림없으나, 얼마나 ‘쿨’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시 되는 것이다. 앞으로 노키아는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한번 약화된 브랜드가 다시 강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3. 이통 사업자와의 관계 악화 (Conflict with Network Operators)

 

노키아는 거의 40%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가진 회사였다. 그런데 이는 전 세계 시장을 기준으로 한 수치이고, 노키아의 텃밭인 서유럽 시장만 놓고 본다면 더욱 더 큰 시장 지배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노키아는 자사의 거대한 시장 지배력을 믿고, 사업자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반면 이통 사업자 (이하 “사업자”) 들이 싫어할 만한(?) 접근 방식을 펼쳤고, 이러한 사업자와의 반목은 결국 판매 감소와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업자 요구사항의 예를 들면, 해당 사업자를 위해 특화된 (customization) 단말기의 출시가 있다. 예를 들자면 사업자는 자사의 무선 사이트로 곧바로 접속할 수 있는 핫키 (hot key)를 도입한 단말기의 출시를 요청했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러한 사업자의 요청 사항에 대해 유연하지 못한 (inflexible) 자세를 견지했다. 한마디로 시장의 대부분을 손에 쥔 단말사로써 배짱있는 태도를 가졌던 것이다.

 

노키아의 이러한 ‘뻣뻣한 자세’ 때문에 사업자들은 노키아와 협력하는 데 부담을 가지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다른 대안 회사들을 찾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단말 제조회사들이 유럽과 미주 시장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사업자-노키아간 갈등이라는 ‘간접 효과’도 자리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노키아는 자사의 굳건한 지위를 이용하여, 신규 수익 창출이 가능한 다양한 부가가치 사업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클럽 노키아를 통한 컨텐츠 서비스 사업이나, 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엔게이지 컨텐츠 패키지 판매 사업 등은, 이통사업자와 손을 잡고 추진하는 형태의 사업이 아니라 노키아 독자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었다.

 

사실 노키아 뿐 아니라 단말 제조사들은 장기적인 신규 수익원 창출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드웨어만 파는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하드웨어와 함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각종 솔루션과 컨텐츠를 얹어서 파는 방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거의 전 산업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다. 노키아가 한 해 판매하는 단말기만 해도 2억대 가까이 된다. 그렇다면 2억명의 신규 고객에게 1,000원씩만 받을 수 있어도 매출 2,000억원의 새로운 사업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업자들은 이러한 노키아의 태도를 좋아할 리 없었고, 그 결과 현재 노키아는 사업자들과 배치되는 게 아니라 사업자들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각종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번 글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4. 격화되는 경쟁 (Breadth of Competition)

 

가트너는 노키아가 경쟁사들로부터 각 세그먼트별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 하이 엔드: 삼성, 소니에릭슨
- 미들 엔드: 모토롤라
- 로우 엔드: 지멘스, Sagem 등

흥미로운 사실은, 전통적으로 로우 엔드에 강점을 가졌던 지멘스는 SL65, CX70등의 출시를 통해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할 채비를 갖추고 있고, 삼성, 소니에릭슨 등의 회사는 하이엔드의 강점을 바탕으로 로우 엔드에서도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노키아가 취했던 전략이 바로 경쟁사 고사(枯死) 작전이다. 노키아는 사실 기본적으로 영업 이익이 높은 회사이다. 이는 판매 대수가 많다보니 고정비의 분산 (spread-out) 효과가 더 커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다 보니 노키아는 자사 제품의 가격을 확 낮춤으로써, 자사처럼 일시적인 이익 감소를 버텨낼 수 있는 버퍼 (buffer)를 갖추지 못한 업체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려는 전략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몇몇 회사들은 ‘04년 2Q에 실제로 수익성 감소를 보이기도 했다. 노키아의 가격 인하로 인해 가격을 동반 인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수익 감소를 보인 회사는 역시 노키아였고, 노키아의 가격 인하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회사는 아직 없다. 5대 단말 회사중 2개 회사는 오히려 ‘04년 2Q에 전분기 대비 시장점유율 상승을 기록했다. 때문에 이러한 극단적인 처방은 오히려 노키아에게 장기적으로는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빅 3 법칙

 

잭디시 세스, 라젠드라 시소디어가 쓴 “빅 3법칙”에 따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2위 기업은 1위 기업을 현명하게 모방하며, 3위 기업은 반란군이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1위 기업은? 1위 기업은 자기 자신을 라이벌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즉 혁신의 패러다임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사의 기존 패러다임과 경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텔 펜티엄 3가 시장을 석권한 뒤 나타난 경쟁자는 누구였는가? 그것은 혜성처럼 나타난 펜티엄 4라는 제품이었다. 질레트가 마하 3라는 세날 면도기를 발매하여 짭잘한 재미를 보았는데, 이제 마하 4라는 네날 면도기를 내 놓고 자사의 제품을 죽이려 하고 있다.

 

노키아 역시 1위 기업으로써 계속적인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이처럼 새로운 혁신을 계속해서 내  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때의 혁신이라는 것은 시장과 동떨어진 혁신이 아닌, 다수의 소비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범위 내에서의 혁신일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노키아가 와신상담의 분위기로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금년 4Q 정도면 새로운 제품군들이 본격적으로 출시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김창원 chang1.kim@samsung.com     김창원님은 현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VOC 그룹에서 근무중이며, 전세계 삼성 핸드폰 유저를 위한 포털사이트인 삼성펀클럽 (www.samsungmobile.com) 및 국내 애니콜 유저를 위한 포털인 애니콜랜드(www.anycall.com)를 위한 모바일 서비스 아이템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의 역량있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컨텐츠/솔루션 벤처들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특히 삼성전자 무선사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는 국내의 모바일 벤처들은 언제든지 문의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