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롤라, 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대기업의 총수가 되는 대책없는 꿈을 가져 본다. 커다란 집무실, 기사가 딸린 커다란 자동차,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이며 상대편 회사 대표와 갖는 두시간 짜리 점심식사, 자신의 말 한마디면 모든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권력… 이처럼 눈에 보이는 외향적인 면들을 동경하며, 많은 사람들은 CEO가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보장되는 행복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는 법이며, 특히나 오늘날의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세계에서는 어쩌면 CEO 자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큼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CEO들은 엄청난 부담감에 사로잡힌다고 하며, 실제로 국내 모 그룹의 총수는 지난 90년대 중반에 “자다가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공포감을 느낀다” 라며 개혁 프로그램을 단행한 적이 있다.

 

모르긴 해도, 작년 말 모토롤라의 새로운 CEO로 부임한 에드 젠더 (Ed Zender)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만일 당신이 모토롤라의 새로운 CEO로 부임했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모토롤라가 어떤 회사인가? 거의 핸드폰이라는 것 자체를 만들어 낸 회사다. 그 정도로 기술력이 앞서 나갔던 회사가, 이제는 세계 핸드폰 시장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낀 상태로, 지난 수년간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어져 왔다.
 
                

‘이리듐’이라는 문제덩어리 위성통신 사업에 수조원을 갖다 바쳤으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중간에 이 사업을 접지 못했고, 결국 고스란히 투자금액 거의 전부를 손해볼 정도로 조직은 둔해질 대로 둔해진 상태이다. 핸드폰 업계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위 업체는 시장 점유율 만회를 위해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모토롤라의 CEO로 부임한 것이다.

 

업무파악도 되기 전인 상태에서 애널리스트들과 기자들은 벌써부터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 그리고 이번 분기의 결과치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 젠더는 IT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모토롤라의 CEO로 온 것이 아니다. 그의 전 직함은 썬마이크로시스템 회장(president) 이었다. 또한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전형적인 뉴욕 브루클린 사람” 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방이 다소 기분나쁘더라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그러나 그 가운데 인간미가 엿보이는 타입의 사람인 것이다.

 

에드 젠더가 CEO에 부임하고 나서 얼마 안 되었던 지난 2월의 어느 날, 그는 프랑스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토롤라 CTO인 파드마스리 워리어(Padmasree Warrior)와 함께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게 된다. 바로 그 비행기 안에서 에드 젠더는 앞으로 모토롤라의 모든 사업 방향을 이끌어 갈 새로운 비전에 대한 영감을 얻고, 이를 한 단어로 제시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심리스 모빌리티 (seamless mobility)” 였다.

Seamless Mobility

 

뛰어난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중 하나는, 복잡한 데이터와 현실을 분석한 뒤, 올바른 해결책을 찾고, 이를 명쾌한 한 마디로 만들어 조직내에 공유시키는 능력이라고 한다. 즉 복잡한 문제를 볼 줄도 알아야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맥을 짚은 다음, 이것을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의 머리속에 박히도록 할 줄도 알아야 한다.

 

IBM의 최근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모든 광고를 통해서 거의 동일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온 디맨드 컴퓨팅 (On Demand Computing)” 이 바로 그것이다. IBM에 루 거스너 이후 새로 부임한 팔미자노 CEO가 주창하는, 심플하기 그지없는 한 마디이다. IBM만큼 제공하는 서비스와 제품이 복잡하고 다양한 회사가 없건만, IBM의 모든 전략은 “온 디맨드 컴퓨팅”으로 귀결된다. 이 역시 복잡한 것 가운데에서 가장 핵심적인 맥을 짚어내는 CEO의 능력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모토롤라의 에드 젠더가 발표한 “심리스 모빌리티”의 개념은 무엇인가? 이는 쉽게 말해 사용자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빌리티 (이동 네트워크)가 그의 생활을 따라다니면서 마치 공기처럼 어디에나 모빌리티가 이용 가능(available)하게 해준다는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디지털로 된 정보와 콘텐츠를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접속, 이용 가능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집에서 디지털 TV로 야구 경기를 보다가 밖에 나갈 일이 있을 경우, 집 밖으로 나온 사용자는 똑 같은 야구 경기를 핸드폰으로 계속 보면서 걸어가다가 자동차에 타고, 자동차는 이를 감지하여 자동차 내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있는 화면에서 야구 경기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등의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다.

 

모토롤라의 비전인 Seamless Mobility를 보여주기 위해, 모토롤라 홈페이지에서는 총 여섯개의 예시를 들고 있는데, 이 중 가장 흥미로운 두 가지는 엔터테인먼트 부문과 기업 부문이다.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모토롤라는 MS 1000 가정용 미디어 주크박스와 E680 멀티미디어 핸드셋 간의 멀티미디어 컨텐츠 호환을 예시로 들고 있다. 즉 가정용 주크박스를 통해 대용량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다운로드 받고 관리하며, 이러한 대용량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DTV등 가전 기기에서 플레이 하거나, 휴대용 기기 (E680등)를 통해  이동 중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E680은 MP3 플레이어 (1기가 저장용량) 및 MPEG 4 동영상 재생을 지원하는 멀티미디어 전용 핸드폰이다. (아래 그림 참조)

 

  
    

 

또 한가지 흥미로운 단말기는 비즈니스 유저를 지원하기 위해 등장한 Mobile Office Device (MOD) 이다.
사무실 내에서는 WLAN 환경을 지원, VoIP 통화를 제공하며, 사무실 밖에서는 자동으로 무선 망(GSM)을 지원한다. 이처럼 WLAN 망과 GSM 망을 동시에 지원하는데, 가장 주목되는 점은 이러한 무선망 규격 간의 전환이 자동으로, 그리고 유연하게 (seamless) 지원된다는 점이다.

 

      

                                    

모토롤라 아이포드 폰?

 

지난 7월 마지막 주에 모바일 업계에서 가장 큰 뉴스 중 하나였던 것이 바로 모토롤라와 애플이 아이튠스 음악 서비스 부문에 있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 전략적 제휴는 모토롤라 애널리스트 미팅에서 발표 되었는데,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는 화상 회의 시스템을 통해 애플의 아이포드를 한 손에, 모토롤라 핸드폰을 다른 한 손에 들더니, 양손에 쥐고 있던 두 기기를 한 군데로 모으는 제스쳐를 취하며, 핸드폰과 아이튠스 음악 서비스의 만남은 완벽한 결합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어쩌면 모토롤라와 아이튠스 음악 서비스의 만남은, 모토롤라가 지향하려 하는 “심리스 모빌리티”의 일환일 지도 모른다. 휴대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토롤라의 지향점이라면, 아이튠스 음악 서비스를 핸드폰에서 제공하는 것이 그 시작점일 수 있다.

 

전략적 제휴의 골자는, 애플은 아이튠스 컨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DRM 소프트웨어의 경량 버전을 모토롤라에 제공하며, 모토롤라는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당사의 모든 MP3폰에 아이튠스 DRM을 기본 포맷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토롤라 MP3폰 사용자들은 아이튠스에서 곡당 99센트에 구매한 음원 컨텐츠를 컴퓨터나 CD 외에도 핸드폰에 담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발표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음원 컨텐츠를 핸드폰 상에 담는 경로가 온라인 다운로드 및 유선 케이블 전송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핸드폰 상에서 즐기는 컨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이통사의 경로를 전혀 거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가지 우려는, 애플 아이튠스 (FairPlay DRM)가 기본적으로 업계 표준이라기보다는 독자적 (proprietary) 포맷이라는 점이다.

 

컨텐츠 사업이라는 것은 결코 어느 한 회사가 경로를 독점할 수 없는 사업이며, 따라서 지금은 아이튠스가 선발 주자로써 70~80% 가량의 유료 온라인 다운로드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통사들과 주요 음반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업계 표준이 등장, 독자적 표준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첫번째 우려 즉 이통사를 통하지 않는 컨텐츠 사업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현재만 볼 것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이야 유럽/미국 지역에 우리나라만큼 광대역 이동통신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유선 온라인 다운로드 경로를 택하지만, 향후 무선망이 더 잘 갖추어 지면 언제든지 이통사를 통한 컨텐츠 제공을 옵션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모토롤라는 기본적으로 미국 시장이 텃밭인 회사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오픈마켓’이라 불리는 비 이통사 시장이 없고, 우리나라처럼 100% 이통사업자 시장이다. 따라서 이통사를 거치지 않는 컨텐츠 비즈니스를 옹호함으로써, 속된말로 이통사업자들의 “눈 밖에 벗어나면”, 타사와의 단말기 비즈니스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국 시장을 연고로 하는 모토롤라가 모를 리 없다.

 

미국 시장에서도 3G 네트워크(1x EVDO 및 UMTS) 가 대중화되고, 현재 스프린트PCS가 시행하는 것처럼 패킷 요금 정액제가 보편화되면, 모토롤라는 이동통신사에 자사의 “아이포드 폰”을 제시하고 애플은 무선 경로를 통한 컨텐츠 다운로드를 도울 가능성이 있다 (아이튠스 컨텐츠는 이미 AAC 포맷이며 AAC+로 진화하면 더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즉 향후에는 협력 구도가 모토롤라-애플 뿐만이 아닌, 이통사까지 참여하는 3자 구도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예를 들어 모토롤라의 MP3 휴대폰을 가진 버라이즌 가입자가 애플 왑사이트 (이는 버라이즌 메뉴 안에 있는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 형태로 구현 가능하다) 에 가서 음악을 무선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고, 과금은 이통사 요금에 합산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토롤라가 이통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향후의 가능성을 설득하며 미리 ‘물밑 작업’을 진행시킨 다음 애플과의 전략 제휴를 발표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현재의 발표 내용만 보고 모토롤라가 이통사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멀리 하려 한다는 속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다.

 

두번째 우려, 즉 애플 아이튠스가 독자적 표준이라는 점은 좀더 심각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바일 컨텐츠 시장은 앞으로 가장 큰 산업 중의 하나가 될 전망이며, 따라서 이는 어떤 한 개 회사의 파이가 되긴 힘들다. 전세계 주요 단말 제조업체들과 주요 이통사들, 또한 주요 컨텐츠 업체들은 공동으로 참여하여 업계 공통의 강력한 DRM 표준과 서비스 인프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현재 꽤 큰 리드를 가진 상태이고, 향후 업계의 큰 움직임에서 배제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더 크다. 비디오에서 마쓰시다의 VHS 방식이, 오디오에서 소니와 필립스의 CD가, O/S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가 사설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표준이 되었듯,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시장에서 애플의 방식이 “사실상의 표준” (de-facto standard)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앞으로 DRM과 컨텐츠 시장의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애플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최근 경영 현황 및 새로운 라인업

 

연초까지만 해도 각종 우려를 낳던 모토롤라는 최근 호전된 경영 실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21일열렸던 경영설명회(IR)에서, 모토롤라는 금년 2분기에 대당 평균 판매가격이 20달러 가량 상승했으며 이에 힙입어 가장 취약점이었던 경영이익율을 5%정도 끌어올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울러 새로운 폰 라인업도 출시하였는데, 울트라 슬림형의 V3과 EDGE/UMTS 대응 단말을 출시하였고 디자인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아래 그림 참조.) 신규 단말을 중심으로, 금년 한해 모토롤라가 어떻게 약진할지 기대가 주목된다.

 

 

김창원 chang1.kim@samsung.com     김창원님은 현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VOC 그룹에서 근무중이며, 전세계 삼성 핸드폰 유저를 위한 포털사이트인 삼성펀클럽 (www.samsungmobile.com) 및 국내 애니콜 유저를 위한 포털인 애니콜랜드(www.anycall.com)를 위한 모바일 서비스 아이템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의 역량있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컨텐츠/솔루션 벤처들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특히 삼성전자 무선사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는 국내의 모바일 벤처들은 언제든지 문의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