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주도 '기러기식 고속성장'

中 전자산업, 韓보단 日잠식비중 높아

[중국이야기] 세계 전자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는 중국

 

"Who? 삼성, What? 모바일 폰, Where? 중국"

전자 산업의 현 주소를 요약한 말이다. 세계에서 삼성전자가 돈을 제일 많이 벌고 있으며, 모바일 폰이 가장 잘 팔리며, 중국 시장이 가장 크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시장 경제에 대응해 가고 있다. 출범 2년째를 맞는 후진타오 정권은 2004년에도 IT 등 ‘신산업’을 장려해 고도성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IT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을 20~30% 대로 유지해 2010년까지 중국 경제 최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또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 기업과의 제휴에도 적극적이다. 기술이 부족한 기업들에게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선진기업들과 합작투자사업을 벌이거나 제휴관계를 맺도록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사나 NEC 등 최고의 다국적기업들과 손을 잡고 기술개발에 뛰어들 수 있었다.

 

 

중국은 또 다국적 기업의 생산 기지 역할에만 안주하지 않고 부지런히 자국 브랜드를 육성했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부족해 세계적인 브랜드의 탄생이 어렵다고 본 중국 정부는 개방과 동시에 ‘先자본투자, 後기술이전’이라는 법적 안전조치를 마련했다. 이는 하이얼(海爾), TCL과 같은 유명 전자제품 생산 업체 성장의 기반이 됐다.

 

중국은 2003년을 ‘디지털 TV의 산업화 원년’으로 삼았다. 창홍(長虹)과 TCL, 샤화(廈華), 하이신(海信), 촹웨이(創維) 등 각 메이커들은 디지털 TV 신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PDP TV 부문에서 SVA(上海廣電)의 경우 지난해 중국내 점유율 3위를 차지하며 1, 2위인 마쓰시타와 LG전자를 위협하고 있다.프로젝션 TV 부문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에 이어 창홍(長虹)이 점유율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디지털 TV의 가격하락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 LG 등 국내 가전업체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수출 경쟁력에선 한국에 뒤쳐져

 

중국의 전자 수출은 특히 지난 2~3년 사이에 급격히 증가해 작년에 1,500억 달러에 육박했고 올해는 2,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총수출 중 전자수출의 비중도 1998년에는 20%에 못 미쳤으나 올 상반기에는 36%를 넘어설 정도로 급상승했다.

 

중국의 전자 수출이 급증했다면 당연히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크게 상승했을 것이다. 세계시장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수입시장의 점유율 변화를 살펴 보면 전자 수출 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컴퓨터, 통신기기, 가전, 반도체의 4대 부문을 보면,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지난 수년간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컴퓨터와 가전 부문은 중국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중국이 이들 품목의 세계적 생산기지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통신기기 부문에서는 한국도 만만치 않으나 중국의 점유율이 한층 높다. 자본 및 기술집약적인 성격이 훨씬 강한 반도체의 경우, 중국의 점유율이 서서히 올라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한국, 일본, 대만과의 격차가 매우 크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점유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점유율은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중국에게 점유율을 잠식당한 것은 주로 일본이었고, 이와 함께 대만의 점유율도 상당히 많이 떨어졌다.

 

중국 전자산업의 점유율 상승 현상은 동아시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기러기식 성장패턴’으로 설명된다. 기러기식 성장이란 해당 지역에서 가장 앞선 국가가 먼저 어떤 산업을 발전시킨 다음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면 좀더 기술수준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옮겨 가게 되고, 그에 따라 다음 발전단계에 있는 국가가 앞선 국가의 산업을 이어받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전자부문은 범위가 워낙 넓고 제품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품목별 또는 공정별로 산업의 성격이 판이한 경우가 많다. 즉 같은 전자산업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분야가 있는가 하면 그야말로 첨단기술을 요하는 분야도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중국의 점유율 급상승은 전자산업 가운데서 노동집약적인 공정이 대거 중국으로 이전된 데 따른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노동집약적인 분야를 많이 줄인 대신 자본 집약적인 분야에서 경쟁력이 강화된 결과 오히려 점유 율이 상승한 데 비해, 일본의 경우는 노동집약적인 분야에 이어 자본집약적인 분야까지 다른 국가들에 넘겨주면서 점유율이 급락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최근 중국 전자산업의 성장은 글로벌 전자기업들의 중국행  경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 비즈니스를 확대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기업들은‘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으로 저부가가치 노동집약적 공정을 대거 이전함으로써 원가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이 개발도상국 가운데서 싸고 우수한 노동력을 가장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에서 살펴본‘기러기식 성장패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경제발전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이제까지 이전 받은 노동집약적인 부문에 머물지 않고 점차 자본 및기술집약적인 부문으로 산업영역이 확장되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기업과 경제가 반드시 큰 위협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러기식’이라는 표현이 말하고 있듯이, 뒤따라오는 기러기에게 저부가 가치 부문을 넘겨주면서 고부가가치 부문으로 더욱 높이 날아 오르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우리 전자기업들은 이런 방향으로 민첩하게 움직여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김세훈 shkim@viptoo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