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에도 ‘1석5조’철학

전 살아계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는 기업가를 소개하고 싶네요... ^^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훌륭한 경영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빈민 없는 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

<**1>

“카드는 고리대금업이 아니다. 서민들이 싼 이자로 돈을 빌려 스스로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말 고마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익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들을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해 5월 경기도 용인 삼성 인력개발원에서 열렸던 금융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카드문제’를 직접 거론하면서 한 말이다. 질타에 가까운 훈시에 사회공헌이라는 말이 담긴 것이 흥미롭다.

삼성카드는 곧바로 움직였다. 우선 ‘소녀소년 가장 돕기’캠페인에 나섰다. 1000명의 소년소녀 가장을 선발해 매달 생활비 20만원씩을 주고 회사 직원들을 ‘빅브러더’‘빅시스터’라는 이름의 후원자 역할을 하도록 했다.

<**2>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온 카드문제를 사회공헌으로 풀려는 이 회장의 사정을 찬찬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 회장은 기업을 나무에, 국민을 땅에 곧잘 비유한다. 나무가 튼튼하게 자랄려면 땅이 기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땅을 기름지게 하려면 정부는 물론 기업도 일정부분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사회공헌 철학은 보육사업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 1988년 말에 있었던 일. 이 회장은 당시 소병해 비서실장을 불러 달동네 빈민들이어떻게 생활하는지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비디오로 담아 사장단이 보도록 지시한다.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그 후유증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때였다. 말하자면 ‘한국형 버블’이 사회 전반에 넘쳐 나면서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던 시기였다.

이때 이미 이 회장은 미아리 봉천동 등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들을 직접 다녀왔고, 보육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90년대 중반 삼성의 사회봉사 활동을 총괄했던 한용외 삼성전자 백색가전부문 사장의 회고를 들어보자. “90년대 초로 기억되는데‘달동네를 몇 번이나 가 봤느냐. 달동네를 가 보지도 않고 보육사업을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각 사 사장은 물론 임원들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가보도록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때부터 삼성 사장단은 주말 약속을삼가고 너도 나도 달동네로 달려가게 됐지요.”이 회장이 보육사업을 삼성 사회봉사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것은 그가 강조하는 ‘1석5조’의 효과와 맥을 같이 한다. 빈민촌에 탁아소를 세우면 부모들은 빈곤탈출과 함께 빈민자녀 양산을 예방할 수 있고, 자녀들은 주변의 위험환경에서 벗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정부는 저소득층 생계문제와 고용문제에 부담을 덜 수 있고, 기업은공익사업 참여로 이미지를 새롭게 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구매력 확대로연결된다.

“ 국가가 보육시설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던 시절에 민간기업인 삼성이나서서 보육사업의 중요성을 전파했다”며 “양질의 교사와 시설을 제공받아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게 웃음꽃을 피게 했다.” 당시 서울시 보건복지과에서 근무했던 김애랑 여성부 정책실장의 말이다.

삼성은 이 회장의 보육사업에 대한 관심을 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한다.

<**3>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우선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규제가 완화돼야 하며 다음은 빈민층이 사라져야한다는 것이지요. 빈민층은 사회주의를 잉태할 수 있는 씨앗이라는 겁니다. 자본주의의 한계이자 최대 문제점인 빈민문제를 자본주의의 최대 수혜자인 기업이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철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배종열 삼성물산 사장이 이 회장의 특명을 받은 것은 94년 초의 일. 당시 000였던 배 사장은 모그룹 총수를 찾아가 이 회장의 보육사업 비전을설명한다.

“ 설계도면, 운영방안, 효과 등을 담은 보고서를 들고 그분을 여의도에서 만났습니다. 30분 정도 설명을 드렸더니 그분 왈, 재계차원에서 추진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한마디로 거절당한 것입니다.” 이회장이 보육사업을 재계차원에서 추진하려 했음이 잘 드러난다.

이렇게 되자 삼성은 94년 보육사업을 포함한 사회공헌사업을 구체화하기에 이른다. 사회봉사단을 조직하고 연말 사장단 평가자료로 사회봉사활동 내용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주말마다 사장들이 불우이웃 시설을방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재벌 2세로 남 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생활해 온 이 회장이이토록 사회봉사에 관심을 쏟게 된 배경은 뭘까. 궁금증은 경기도 의왕나환자촌인 성나라자로 마을에서 조금씩 풀렸다.

성나자로 마을 나환자들은 매년 1월 8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는 이 회장의 생일(1월 9일)에 맞춰 이곳을 찾는다. 홍여사는 떡국과 떡, 과일, 설탕, 비누 등 생필품을 그득담아 이날 이 마을을 찾는다. 건네주는 봉투는 대략 100여개. 성나자로마을 김화태 신부(54)는 “매년 1월 8일 홍 여사께서 1년치 생활용품과 떡, 그리고 용돈까지 안겨 주고 간다”며 “올 때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네들이 느는것을 몹시 안타까워 한다”고 전했다. 홍 여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선행은 올해로 25년째를 맞고 있다.

홍 여사와 성나라자로 마을의 인연은 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소개로 시작됐다.

박 교무는 “79년께 우이동 원불교 수도원에 근무할 적에 ‘不二會(불교 여신도 모임)’ 회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었는데 홍 여사는 이후 원불교 강남 교당 부지마련에 2억원의 사재를 쾌척해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홍 여사는 자신이 평생 봉사할 수 있는 단체를 희망했으며, 성나자로 마을을 그때 소개해 드렸습니다.”박 교무는 홍 여사와의 이런 인연으로 삼성의 보육사업 1호인 ‘미아샛별어린이집’의 초대 원장을 맡게 된다. 부인이 자신의 생일에 맞춰 소외계층을 찾는 것을 알고 있는 이 회장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사장단에던진다.

지난 97년 1월 9일 신라호텔에서 이 회장의 생일축하 만찬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을 비롯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50여명.

재계에서는 오너 생일을 맞아 계열사별로 선물을 준비하는 게 관행. 삼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수를 기원하는 금붙이 거북이, 학 등이 마련됐다. 그런데 이 회장이 이 자리에서 생일선물 사절을 선언한다. “내 생일에는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주변 사회복지시설에 선물 한 가지씩을 보내서 기쁨을 나누도록 하면 좋겠다.”삼성이 연초 계열사별로 실시하는 ‘회장명의 지원사업’은 이렇게 출발했다.

2000년 어느날, 이 회장은 장애인 구족화가 김진주 씨로부터 뜻깊은 선물 하나를 받게 된다. 삼성SDS는 회장명의 지원사업으로 지난 98년부터강남대 서양학과에 다니던 김씨에게 4년간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감사의 마음을 감출 길 없던 김씨는 졸업작품을 이 회장에게 전하는 것으로고마움을 표시한 것.

이 회장은 지난해부터 사회공헌사업을 또다시 강조하고 있다. 그가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사업은 노인과 여성, 교통사고 줄이기 등 실로 다양하다.

삼성증권은 이 회장의 이런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퇴직자 재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미 미국 은퇴자협회 등 선진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이 회사 황영기 사장은 “노령층을 경제활동 인구로 다시 끌어내기 위한 취업 알선, 재교육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부터 여성가장 창업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설계사와 회사가 신계약 1건에 200원씩을 모아 기금을 정립한다. 최대 1500만원까지 지원되며 벌써 12명이 이 사업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

삼성화재는 교통안전문화연구소를 설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교통사고율 1위라는 오명을 줄이기 위해 나섰다. 삼성 계열사들의 사회봉사사업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삼성은 이 회장의 특별지시로 사회공헌 로드맵을 다시 만들고 있다. 연간 90만시간이었던 삼성 임직원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200만시간대로 늘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