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챠트를 넘어,,, 가치투자까지...

IMF를 기점으로 종합주가지수 300으로 바닥을 찍고 무서운 기세로 대세상승을 지속하며 1000에 이르렀을 즈음, 저는 제가 모시던 직장 상사에게 멋진 유혹을 받았습니다.

"너 그런식으로 월급장이 해서는 절대 부자 못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주식에 투자해라. 못 건져도 더블은 먹을 거야..."

정작 본인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던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직장으로 옮겼습니다만. ) 당시 주식회사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햇병아리 신입사원 시절이었습니다. 당연히 주식투자가 무엇인지, 아니 심지어 은행 이자가 얼마인지 조차 모르는 무식한 상황에서 술자리에서 들은 그 한마디의 멋진 유혹은 저의 모든 경제적 Paradigm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현금흐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날부터 며칠씩 퇴근 후 밤을 새워가며 월급에 근거한 5년 후, 10년 후의 재산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70% 이상을 저축한다고 해도, 회사에서 인정받아 매해마다 20%씩 연봉이 인상된다고 해도, 아니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온다 해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작성한 먼 장래의 나에 대한 경제성적표는 말 그대로 '아니 올시다' 였습니다. - 모든 평범한 월급장이들의 모습이겠죠 ^^;

며칠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저는 그 상사를 다시 찾아가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상사님, 주식 투자 좀 하고 싶은데요..."

이것이 제가 죽도록 고생하고 모은 모든 경제적 자산을 탕진하게 된 주식투자의 시작이었습니다.

매수와 매도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던 저는 무조건적으로 그 분에 의지하였고 결국 그 당시(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 저의 전재산 격인 2000만원 상당을 그분이 추천한 'xx텍'이라는 주식에( 저는 지금도 그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모릅니다. ^^; ) 소위 '묻지마 투자'로 몰빵을 하는 우를 범했던 것입니다. - 물론 계좌개설부터 종목선정, 매수, 금액 등 모든 것들은 그 상사님께 일임하였습니다. T.T.

대세상승의 막바지에 매수한 그 종목은 그래도 1달 가까운 시간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라갔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몇 백만원을 금새 벌고 나니, 돈 버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쉽게 느껴지면서 주식투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더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날마다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던 돈을 바라보는 그 희열이란...

그렇게 제 정신을 못차리게 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어느 날 부터인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50,000원을 넘던 그 놈의 '텍'이 꼬꾸라지기 시작하더니 며칠씩 파란색 화살표를 거꾸로 그리면서 순식간에 반토막이 난 것이었습니다. ( 그당시 저는 하한가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물론 하한가에는 팔기 힘들다는 것도... )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 그 상사님을 찾아갔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억지를 부려야 했습니다. 해결책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올라갈 것이니 걱정말라'는 위안아닌 위안을 듣고는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손절매가 무엇인지라도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되었겠습니까마는 결국 6개월 후 나의 재산은 2000만원에서 정확히 0하나가 빠진 200만원으로 돌변해 있었습니다. 억울하지 조차 않았고,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허탈할 뿐이었습니다...( 지금 그 상사님은 해외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

이런 상황에서 제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단 2가지 였습니다. 첫째,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다시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을 것, 둘째, 내가 잃은 돈을 찾기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주식시장에 처절한 복수(?)를 행하는 것...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불행히도 저는 후자를 택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번돈인데 내가 그돈을 잃고 이 바닥을 떠날 것인가라며 어금니를 곱씹었습니다.

'두고보자, 내가 고수가 되서 내 돈을 먹어간 놈들에게 저주의 응징을 하고 말리라...'

그날로 저는 강북의 한 대형서점을 찾아가 주식에 관련된 책이란 책은 모두 구입했습니다. ( 당시 서적 구입대금이 거의 30만원어치 정도 였으니 당시 나와있던 주식책은 거의 다 샀던 것 같습니다. )

'나는 어쩌구 해서 몇억 벌었다', '기술적 분석, 어쩌구 해라', '챠트의 핵심 어쩌구 비법' 등등, 끊임없는 책과의 씨름이 근 반년간 계속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각종 증권 강연회, 어쩌구 사관학교, 유료 강좌 등 속칭 고수들의 비법(?)들을 전수받기 위해 주말, 일요일 모두 반납하고 주식에만 매달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주식 서적은 원론적인 것들( 예를 들면 투자론, 증권학, 재무관리 등 ) 외에는  챠트를 기반으로 한 기술적 분석과 관련된 책들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세월을 복수의 칼을 갈며 섭렵한 기술적 분석에 대한 엄청난(?) 지식은 머지 않아 산에서 하산할 날만 손 꼽아 기다리는 무림고수 같은 자신감을 키워 주었고, 그와 더불어 기술적 분석의 지표가 보내주는 Betting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캔들이 주는 오묘함, 거래량의 변화가 주는 숨겨진 세력의 의도, 5일/20일 등 이평선이 갖는 심오한 의미, 쌍바닥 순간의 희열, 쌍봉의 매도 준비, 스토캐스틱의 비밀, 그 외에 이격도, 투자심리선, 볼린저밴드, OBV 등등 보조지표의 현란함 등등...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저는 드디어 자칭 기술적 분석의 고수(?)로서 천추의 한을 품고 복수혈전의 기세로 1000만원의 종자돈을 들고 주식시장에 다시 뛰어 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준비한 저의 현란한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거대한 주식시장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저는 명확한 기술적 지표와 차트가 주는 신호에 철저히 의존하여 매우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종목을 선정하였고 나름대로 선정한 철저한 매수, 매도, 손절매 원칙을 준수하며, 때때로 상한가 매매, 재료주 매매 등등 몇가지 추가적인 기교까지 써가며 회사 내에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주식시장에서 저의 기술을 마구 뽐내었습니다.

1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났을 무렵, 전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분명히 돈을 잃지는 않는데( 이것은 아마도 저의 손절매 원칙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당시 저의 원칙은  -2%시 무조건 매도 였으니까요... ) 그렇다고 따지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하더군요... 아무리 원칙을 지키면서 매매를 해도 돈을 벌지 못하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 저는 이것을 경험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돈을 벌것이라는 믿음하에 저의 원칙을 고수하며 더더욱 기술적 분석에 근거한 매매를 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리한 매매를 거의 1년 이상 해 나가며 저의 수익률은 -20% ~ + 20%대를 지속적으로 오가고 있었습니다. 많이 잃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많이 벌지도 못하는, 하지만 모든 시간과 정열은 주식투자에만 쏟아야 하는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던 중, 완벽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한 어떤 종목의 신호가 포착되었습니다. 차트와 보조지표, 그 모든 신호가 주는 그 종목은 정말 환상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이상 좋은 챠트는 없다는 생각에 오죽하면 그것을 매수한 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책에서 잃은 바에 의하면 그런 모양의 주식은 1년에 많아야 5번이 나오지 않는다고까지 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로또를 잡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제가 보유하던 주식을 전부 팽개치고 그 주식에 모든 돈을 털어 넣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론 부터 말하면, 그 주식은 제가 매수한 후 일주일 후 부도가 나 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세력들의 농간에 당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세력은 멋진 차트를 만들어 저 같은 개미를 유혹했고 그것을 보고 달려든 개미들에게 나머지 물량을 모두 처분하고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막판 작전 이었죠...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제 주식들은 그렇다 치고, 텅 비어버린 저의 계좌도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도대체 주식이 뭐길래,,,

얼마간 저는 주식시장을 떠나 있었습니다. 주식을 위해 매일같이 읽어야 했던 경제신문도, 기술 향상을 위해 매일 공부해야 했던 증권 서적도 모두 뒤로한채, 그렇게 주식시장을 떠나 있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제가 약 4년 동안 걸어온 저의 주식 인생(?) 입니다. 너무 허탈하고 억울하기까지 했죠... 이 바닥에서 개미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최종 결론'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미련은 남았지만, 그렇게 한동안은 일에만 열중하며 지냈고 덕분에 주식실패로부터 받은 충격의 많은 부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 처럼 2-3천만원이 아닌 몇억 혹은 그 이상을 날리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당시로서는 저도 큰 충격이었죠 ^^; )

그러던 어느날, 주위의 동료로 부터 믿기 힘든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동료는 당시 저와 같이 국내 1차 산업의 유통체계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풀무원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친구는 풀무원에 대한 거의 모든 사항을 꿰뚫고 있었고 심지어 그 회사의 대주주 명부까지 외우고 있었습니다. 매출구조, 사업목적, 시장점유율 등은 당연한 것이었고 여하튼 풀무원과 관련된 것은 이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그에게 물어보기를 '집안이 풀무원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할 정도였습니다. 한참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그는 풀무원에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고, 그 회사에 대한 근 6개월 이상의 조사 후 상당한 규모의 돈을 풀무원에 투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풀무원의 주주로서 관련된 기사나 뉴스 등은 빠짐없이 기록해 놓는다고 하였습니다.

기술적 분석의 맹신교도 였던 전력 때문에 기본적 분석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던 저는 그의 수익률이 무척 궁금해 졌습니다.

주식시장의 모든 주가는 수급이 결정한다는 시장원리를 믿고 있었던 까닭이었습니다. 혹은 지금이 어는 땐데 그런 고전적 방법인 기본적 분석으로 수익을 낼 순진한 생각을 할까라는 무시(?)와 함께 말입니다.

그런 나의 걱정은 결국 엄청난 그의 수익률 앞에 할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풀무원이란 주식 하나로 100%가 넘는 수익을 내고 있었고, 그런 사실은 나를 끊임없는 혼돈의 나락으로 인도하게 했습니다. 도대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수익이었고 그가 주식 투자를 하는 동안은 나도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묘한 열등감 마저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는 그에게 주식과 관련된 조언을 요청했고 그가 나에게 해준 한마디는 지금까지 4년 남짓 벌여왔던 저의 주식 행각에 완전한 변화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가가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30만원대에서 움직이고 풀무원이 5만원대에서 움직이며, 하이닉스가 200원대에서 움직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순간적인 주가는 수급이 결정하지만 그 기업의 전반적인 주가의 정도는 결국 그 기업의 Fundamental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중략 )... 요즘, 기본적 분석과 관련해서 괜찮은 책이 하나 있는데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란 책을 읽어 보시죠... ( 하략 )"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이 대화가 있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 철저한 가치투자자가 되어 있다. 물론, 풀무원의 그 친구처럼 100%의 수익을 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발굴한 몇개의 초우량 회사를 저평가 된 시점에서 매수하여 4개 종목의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나는 매우 보람있고 편안한 주식투자를 하며, 오늘로서 정확히 24%의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나에게 그 수익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나는 지금 내가 투자한 회사의 차를 타고, 내가 투자한 회사의 음식과 술을 먹으며, 내가 투자한 회사의 페인트 칠된 집에서 살며 그 회사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는 것을...

나는 당분간, 아니 어쩌면 내가 죽을때까지 그들 회사와 같이 하고자 한다. 나는 그 회사의 주인이고 그 회사의 가치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 몇몇 다른 회사가 또 나와 그 길을 함께 할지도 모르지만...

졸렬한 글이나마, 나에게 환희를 선사해 준 아이투자 분들, 그들과 함께하는 아이투자의 모든 회원분들 그리고 우직하게 올바른 투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땅의 모든 가치투자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