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아줌마 투자배우기] 돈이 아까워서라구?

돈이 아까워서라구?

얼마전 퇴근한 남편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고를 쳤다며(?) 미안해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낮에 영어 잡지 구독을 권하는 텔레마케터의 전화를 받았단다. 회의 중이라 정신없던 남편은 엉겁결에 1년 구독을 약속하고 신용카드번호까지 불러줬다는 것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나의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랬다는 남편한테 차마 화를 내지는 못했다. 꾹 참고 내일 당장 그 쪽에 전화 걸어 취소하라고 했다. 또한 다음부터 그런 전화가 오면 “미국에서 살다 왔습니다.” 한마디 하고 바로 끊으라고 교육도 단단히 시켰다.

다음날 남편에게 물어보니 그 쪽 내부사정으로 일주일 정도 뒤에 결제철회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약속한 날짜가 지난 뒤에도 그 회사에서 연락이 없었다. 그제서야 남편 카드내역 조회를 해보니 이미 첫 번째 할부금이 결제된 뒤였고 총 결제금액도 4년치 구독료에 해당하는 백여만원이 찍혀 있었다. 당장 담당 텔레마케터한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지만 담당자는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남편이 4년 구독을 한다고 했으며 회사 규정상 거래취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할부거래의 경우 해당 카드사에 7일 이내에 요청하면 거래가 철회되는데 그들의 거짓말 때문에 그 날짜도 이미 넘긴 상태였다.

그때부터 영어 잡지회사와 해당 카드사에 ‘거래철회요청서’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정기구독 사은품으로 받은 허접한 책 몇 권도 택배로 되돌려 보냈다. 또 소비자보호원에 피해사례를 접수한 뒤 영어잡지의 아시아 판권을 가지고 있는 홍콩지사에 항의 이메일까지 발송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담당 텔레마케터의 매니저에게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거래 철회를 요청했다. 결국 이 미 결제된 첫 번째 할부금을 제외한 남은 금액에 대해 결제가 취소되었다.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일주일 넘게 사건 해결(?)에 열을 올린 이유는 물론 돈이 아깝기도 했으나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교문 앞 가판대에서 영어잡지 홍보를 하는 사람한테 붙잡혀 정기구독을 강요 당한 적이 있다. 얼떨결에 구독신청을 하고 잡지를 받았는데 내 수준에는 너무 어려워 취소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취소가 안되었고 2년을 꼬박 받아봐야 했다. 십 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회사들이 활개를 치며 순진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화가 났다. 각종 감언이설로 어떻게든 계약만 성사시키고 나면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고 기본적인 상거래 원칙도 지키지 못하는 그들은 사기집단에 불과하다. 귀찮고 힘들고 짜증남에도 불구하고 굳이 거래 철회를 한 이유는 그런 회사들을 뿌리 뽑는데 나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불법적인 판매 방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다. 소비자보호원은 우리의 생각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다. 정부가 규제해 줄 수 없다면 우리가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현명한 선택을 해서 그런 집단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옆자리 부장님은 남편이 구독하려 했던 그 잡지를 1년째 받아보시는데 포장도 뜯지 않고 그냥 쌓아두고 계신다. 구독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렸지만 “귀찮아서” 하기 싫으시단다. 그런 태도가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

굳이 불법업체가 아니더라도 비상식적으로 경영하는 기업 또한 수두룩하다. 분식회계를 일삼으며 당연히 주주들의 몫으로 돌려야 할 이익을 불법정치자금으로 빼돌린 회사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곳은 좋은 투자처가 되지 못한다. 기업에 대해 열심히 분석하고 연구해서 주주를 위하는 정직한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한 기업이 살아남고 부도덕한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경제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정치인들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선거는 정치인을 뽑는 중요한 투자행위이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자. 귀찮아도 피해사실을 고발하고 널리 알려서 불법업체를 뿌리뽑아야 한다. 귀찮아도 열심히 기업을 분석해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야 한다. 귀찮아도 선거에 참여해서 좋은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를 우롱한 사기업체가 망할 것이며 주주를 무시한 기업이 정신을 차릴 것이며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는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