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모으려면 카드부터 없애야..

카드 빚과 관련된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아들의 카드 빚 때문에 자살한 부부, 세 아이와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엄마 등 글로 옮기기에도 끔찍한 사건들이다. 도대체 카드가 무엇이기에 삶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하게 만들었을까?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카드는 크게 신용카드와 현금카드(직불카드)로 분류한다. 통장에 있는 잔고에서 돈을 인출할 때 쓰는 카드가 바로 현금카드다. 현금카드는 물건을 구매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데 신용카드와 달리 결재하는 즉시 통장잔고에서 해당금액이 빠져나간다. 은행잔고가 없으면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현금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신용카드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현재 내가 돈이 없더라도 돈을 쓸 수 있으나 한 달에 한번씩 결재해야 하는 카드이다. 즉, 현금카드는 통장에 있는 '내' 돈을 쓰는 것이지만 신용카드는 '카드회사'의 돈을 빌려 쓰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용카드로 긁은(?) 금액은 모두 카드회사에 갚아야 할 '빚'인 것이다.

혹자는 그게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먼저 벌고 그 다음에 쓰나,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갚나 순서에 차이만 있을 뿐이지 같은 거 아니냐고 말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내가 처음 신용카드를 만든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대기업 계열사였던 거래처에서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만들었다. 또래들 보다 꽤 늦게 카드를 만든 편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불편함도 없었다. 월급을 받으면 거의 대부분을 적금으로 넣고 남은 금액을 아껴 쓰는 바른 생활(?)의 회사원이었다. 그러나 카드를 쓰고 나서는 씀씀이가 헤퍼지기 시작했다. 20대 여자가 갖고 싶은 물건이 한 두 개이겠는가? 전에는 사고 싶어도 지갑에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내게 카드는 너무나 편리한 도구였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는 건 아깝게 느껴져도 카드로 십 만원을 결재하는 것은 거부감이 없었다. 월급날 다음날이 카드 결제일 이었는데 상당한 금액이 카드금액으로 빠져나갔다.

재테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나같이 얘기 하는 것이 있다. 돈을 모으려면 신용카드를 잘라야 한다는 거다. 늦게 쓰기 시작한 카드지만 한번 쓰는 버릇을 들이니 쉽게 자르지 못했다. 올 초에 비상용 하나만 남겨두고 모든 카드를 없앴다. 처음에는 불편했으나 점차 적응해 나갔다. 지금은 예전처럼 적금을 먼저 하고 남은 금액으로 살림을 꾸려간다. 불필요한 소비가 많이 줄었고 현금으로 구매하다 보니 물건 가격을 깎는데도 유리하다.

누군가는 또 의문이 들것이다. 어차피 지출해야 할 거라면 카드를 사용하는 게 나중에 소득공제도 받고 더 이익이 아니냐고 말이다. 직장인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중의 하나가 바로 '소득공제'이다.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1999년부터 카드사용에 대해서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 환급 받는 금액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으며 공제대상이 되지 않는 것도 의외로 많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상사가 최근 새차를 구입했는데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현금으로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드로 차를 구매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새 차 구매 시 카드로 결제해도 소득공제가 되지 않는단다. 카드회사에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며 원망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소득공제를 위해 카드를 사용한다지만 오히려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자제력이 있다면 모를까, 나처럼 자신이 없다면 카드 사용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다.

당장 수입이 없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카드를 써야만 했던 사람들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명품에 중독되어 카드 빚을 지게 된 사람들은 정말이지 한심하다. 심지어 자신의 빚을 갚아주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여성의 인터뷰가 TV에 나오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소비행태를 탓해야 하는 건지 무책임하게 카드발급을 남발한 카드회사를 탓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카드사용을 권장한 정부의 잘못인지…

신용카드는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 못 쓰면 치명적인 독이다. 이미 카드 빚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지 오래다. 수입규모에 알맞은 한도액을 정하고 카드 돌려막기를 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돈이란 먼저 벌고 그 한도 내에서 쓰는 것이다. 이 간단한 법칙을 늘 되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