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사 주식을 사지 않는 이유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직원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SPP(Stock Purchase Plan)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직원들에 한해 회사 주식을 조금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물론 스톡옵션과 같은 프로그램도 있으나 대부분 임원진들을 위한 혜택이며 일반 평직원들에게는 특별 보너스 형식으로 몇 백주 나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SPP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SPP는 몇 가지 장점들이 있다. 회사가 외국기업이라 나스닥에 등록되어 있으므로 주식매입을 하려면 컨설팅 회사를 끼고 꽤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는데 이를 회사에서 무상으로 지원해 준다. 직원들이 매달 월급의 일정부분을 출자액으로 결정한 뒤 알려주면, 회사 담당부서에서는 자동으로 월급에서 그 금액을 빼내어 주식을 매입한다. 또한 석달에 한번 주식을 매입하는데 매입당시 가격의 약 85%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나머지 차액과 컨설팅회사 수수료는 회사에서 부담한다.

나는 이 SPP에 참여하지 않는다. 동료들은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왜 하지 않느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회사에서 혜택을 준다는데도 받지 않는다며 구박한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그 뒤로도 언제든지 신청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주식을 내가 원하는 때에 사고 팔 수가 없다. 물론 원칙적으로 매도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만약 퇴사할 경우에는 그 즉시 주식을 팔아야 한다. 본인이 계획한 퇴사라면 가격이 높을 때 미리 매도해놓겠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감원으로 인한 강제퇴사가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고 주식을 처분해야 했던 직원들이 많았다. 매수 또한 석 달에 한번씩 일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매입하는 달 말일의 주가가 높든 낮든 반드시 사야만 한다. 주가가 낮을 때 매수한다 하더라도 그 날 환율이 높으면 그만큼 비싼 가격에 사야 한다. 주식투자라는 것이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변수조차 내가 조정하지 못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큰 것 같다. 게다가 시세차익으로 수익이 발생했다면 미국에 세금도 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가치투자자의 눈으로 봤을 때 우리 회사는 썩 괜찮은 투자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대학투자저널의 내용 중 '이런 기업은 피하라'에 무려 3가지나 해당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좋은 회사에 근무한다고 자부하지만 돈을 잘 벌지 못하기에 나쁜 기업으로 분류된다.

우리회사는 냄비형 기업이다. 99년도 세계적으로 IT붐이 일어날 때 대표적인 수혜주였으나 2000년도부터 서서히 주가가 빠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 SPP 프로그램이 한국에 도입되었는데 그 당시 많은 직원들이 지금 시세가 바닥이라며 너도나도 SPP를 신청했었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수 십 배가 더 떨어졌고 지금은 겨우 퇴출을 면한 상태가 유지 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덤핑형 기업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통신장비는 외산 장비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최근 국내기업의 기술 발전으로 훨씬 경쟁이 치열해졌다. 품질이 어느 정도 비슷해 지고 나니 결국 가격싸움으로 이어졌고 서로 출혈만 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으로 물먹는 하마형 기업이다. 언젠가 전체직원회의에서 사장님이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길 "우리회사는 이익의 20%를 R&D비용으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R&D비용을 제일 많이 쓴다는 삼성전자보다 훨씬 더 많다. 우리회사는 첨단기업이다"라고 하셨다. 수치가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술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이 개발비로 나가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통신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가야 할 비용인 것이다. 최근 1~2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사업체 매각 등을 통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만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 회사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내부자 - 바로 그 회사의 직원들이다. 주식투자 초보자라면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부터 분석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사주나 스톡옵션 등을 통해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기회이지만 그 전에 본인의 회사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아는 사람 중에 대출까지 받아 산 우리사주를 떠안고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 하이닉스 직원이 있는데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이런 투자는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