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아줌마의 투자 다시 배우기 - 주부의 체감 경기

경제가 안 좋다고 한다. 주가는 내려가고 환율은 올라가고 소비심리는 얼어붙고 부동산시장도 썰렁하다.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외치지만 체감경기는 이미 IMF수준이라고들 한다.

사실 가장 크게 경기를 체감하는 곳은 회사다. 월 매출이 떨어지고 2년째 월급은 동결이며 자의 반 타의반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요새 경기가 안 좋다는 걸 금방 느낀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이야 샐러리맨들이라면 대부분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니 넘어가도록 하고 주부의 눈에 비춰진 몇 가지 불경기 현상들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지하철 내 광고가 줄었다. 내가 출퇴근 시에 이용하는 지하철은 사람 많기로 악명 높은 지하철2호선이다. 그만큼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광고효과가 높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2호선에 광고 한번 실으려면 평균 6개월 정도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빈 광고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벤처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지하철 내 광고 대부분이 닷컴회사들로 가득 찼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말이다.

땡처리 벽보가 늘었다. 우리집 주변 주택가는 물론 회사 근처까지 '부도 대처분', '폐업정리', '초특가창고세일' 등 유난히 땡처리 벽보가 많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신문 사이에 끼어 들어오는 전단지에도 비슷한 유형이 많다. 전에도 꽤 많은 의류회사가 도산하면서 이런 업체들이 많았는데 요새는 유명메이커의 옷들도 눈에 띈다. 자고로 땡처리란 호황 때 죽고 불황 때 사는 경기에 민감한(?) 업종인데 말이다.

백화점에 사람이 없다. 회사 바로 앞에 현대백화점이 있는데 워낙 위치가 좋은지라 굳이 세일기간이 아니더라도 손님들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 아이 돌선물을 사러 유아복 매장에 갔었는데 어찌나 사람이 없는지 혼자 쇼핑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철 지난 유아복을 쌓아 파는 기획상품전에만 엄마들이 몇 명 모여있을 뿐 정식매장은 한산했다. 심지어 20%~30%정도의 브랜드세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쿠폰을 남발한다. 값 비싼 패밀리레스토랑의 경우 쿠폰을 잘 이용하면 생각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쿠폰이 생기면 가끔 이용한다. 물론 쿠폰은 회원에게만 제공되므로 각종 패밀리레스토랑에 몽땅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보통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쿠폰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인데 요새는 시도 때도 없이 쿠폰이 날아든다. 얼마 전에도 옆자리 부장님한테 얻은 쿠폰으로 한 패밀리레스토랑에 갔었는데 주위에 식사하러 온 손님들 모두 나와 같은 쿠폰을 가져온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도매시장 주인이 친절해 졌다. 보통 옷쇼핑은 동대문 도매 시장을 이용한다. 두타나 밀리오레 등은 소매전문이므로 비교적 친절한 편이지만 질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이라 불편하지만 도매시장을 이용한다. 도매시장의 장점은 값싸고 질 좋은 옷을 살 수 있다는 것인데 단점은 상인들이 몹시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도매상한테 몇 백장씩 파는 분들이라 소매로 한 두장씩 파는 걸 무척 귀찮아 한다. 그렇다고 안 팔 수도 없으니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말라는 태도로 일관하기 마련이다. 가격을 자꾸 물어본다거나 감히 물건값을 깎으려 한다거나 하면 큰일이다. 구입하기 전에 옷을 입어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자켓 같은 옷은 입어볼 수도 있고 1000원 정도는 깎아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전엔 매장 사이 골목이 비좁아 사람을 비집고 쇼핑을 하곤 했는데 주말에 가도 쇼핑하기 수월한 걸 보면 확실히 손님이 많이 줄어든 거 같다.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설마 하던 이라크전까지 결국 시작되고 말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책 없이 곤두박질치던 주가가 이라크전 시작과 함께 잠깐 오르기도 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 눈에 보이는 악재가 덜 불안한 것이 사람들의 심리인 듯 하다. 의식 있는 반전운동가는 아니지만 오르는 주가를 보고 있노라니 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외부요인으로 인한 폭락은 가치투자자들에게는 매우 좋은 매수타이밍인 것 같다.  경기가 침체될수록 선두권을 달리는 좋은 기업들은 더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위기를 기회 삼아 현명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다만 고통 받고 있는 다른 나라의 현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차가운 이성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마음도 가치투자자의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