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를 위한 영화 - 허드서커 대리인

영화는 전반적으로 붉은색기운이 빠져 차갑고 어둡다. 건물은 인간적이지 않고, 사람들은 정신없이 움직이며 거대한 톱니바퀴와 거미줄처럼 얽힌 관(管)들은 30년대의 독일식 표현주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팀버튼의 마술적 분위기를 빌려 코엔형제가 그들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혼합해내어 만들어낸 영화가 바로 허드서커 대리인이다. 영화의 내용은 너무나 간단하며 마치 어릴적 혹은 언젠가 한번은 들어 본 듯한 동화 같아서 포근하기까지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회풍자 또한 그다지 특이할 것은 없는 평범한 것들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시골에서 갓 대학을 마치고 상경한 노빌(팀 로빈슨 역)은 거대한 자본의 집합체인 뉴욕에서 어리둥절할 뿐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 여러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선 경력자만을 모집한다. 낙담한 노빌에게 마술처럼 달라붙은 광고전단지와 그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허드서커 인더스트리의 구인광고. 이제 먼시출신의 풋내기 청년 노빌에게 뉴욕에서의 새 삶이 시작된다.

한편 허드서커 사의 이사회도중 놀라운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허드서커사의 창립자이자 사장인 허드서커씨는 코믹한 미소를 띠며 44층 높이의 이사회실에서 창 밖으로 뛰어내린다. 회사 지분의 87%를 가지고 있는 사장이 죽은 직후 탐욕스런 이사들은 멍청한 사장을 선임하여 회사 주가를 떨어뜨려 지분을 매집하려는 소위 작전(?)을 계획한다.

아직은 순진하기만한 우리의 주인공 노빌. 노빌에게는 아이들을 위한 훌라후프의 아이디어를 구두밑창 속에 지니고 다닌다. 누가 봐도 웃음이 나오는 이 아이디어를 어렵게 설명하는 노빌은 사장의 적임자로 여겨지게 되고 하루아침에 사장이 된다. 회사의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훌라후프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지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성공이 이루어진다.

한꺼번에 부와 명예를 쥐게된 노빌은 결국 이사진의 음해에 의해 쫓겨날 운명에 처하게 되고 그도 44층에서 투신하지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를 구해주고 전 회장의 유언에 따라 회사의 주인이 된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어찌되었건 해피엔딩이라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전회장의 유언장에 의해 자신이 회사의 주인임을 안 주인공이 기뻐서 뛰어가는 모습은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하다. 내가 허드서커 사의 주주였다면 당장 주식을 되팔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동화같은 이야기를 꿈꾼다. 아이디어 하나로 엄청난 성공을 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좋은 소재이다. 옛날 얘기인듯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21세기의 우리사회에도 똑같이 있다. 아직도 여전히 주가조작을 일삼은 대주주일당들에 대한 뉴스는 심심치않게 보게 되고, 99년의 벤처열풍 때는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뜨린 젊은 사장 이야기는 늘 신문지면을 장식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수학의 법칙과는 달라서 예외 한가지로 모든게 깨어지지는 않는다. 최초의 성공에 눈이 멀어 나태해지고 거만해지는 노빌의 모습은 회사의 새주인이 되어 유언장을 들고 기뻐하는 노빌의 모습과 겹쳐진다. 대주주의 중요성을 알고 자신의 지분을 새 사장에게 줄려는 전 사장의 의도는 대단히 훌륭하지만, 어이없는 인물에게 지분이 넘어가게 되어 회사는 오히려 어려워질게 뻔하다. 물론 해피엔딩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허드서커 대리인이 주는 교훈은 ‘창조적이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가 아니라 ‘노빌과 같은 인물을 경계하라’이다. 훌라후프의 성공은 영화에 나오듯이 광고부서의 치밀한 상품기획과, 회계부의 원가계산, 허드서커의 튼튼한 유통망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아이디어는 1%이고 현실화 하기 위한 노력은 99%이다. 치밀하게 짜맞추어진 일인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부풀리기 좋아한다. 영화 전체를 주름잡는 것은 찰리 채플린 식의 코미디이다. 실제로 여기서의 코미디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찌보면 상당히 유치하면서도 또, 심금을 찌를만큼 강한 풍자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래도 주인공인 노빌이 공중에서 허드서커 회장이 얘기하였던 것처럼 두 번째 기회를 잘 이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박민우 / aminuz@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