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의 오마하탐방기 - 8. 보쉐하임에서의 칵테일 리셉션

이제 주총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실 주총에 가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준비를 했다면 주식을 사서 가지 않았겠나... 원래는 주주로서 가고 싶었지만 졸업 후에 가기가 힘들 것 같아 학교를 휴학하고 일찍 가기로 했다. 기왕 가려면 주총기간에 가야 하기 때문에 방학 때는 시기가 맞지 않았다. 준비할 것은 별거 없었다. 아니 준비할 수가 없었다. 뭘 알아야 준비를 할 거 아닌가. 오마하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부족했다. 인천공항에서 L.A행 발권을 하며 직원이 최종목적지를 묻길래 오마하에 간다고 하니 “ 어..오마하가 미국에 있어요? ” 라고 하더라. 프랑스의 오마하 해변과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미국여행에 관한 책이나 여행사에서도 오마하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인터넷에서 약간의 정보를 얻었고 버펫책에 나오는 곳 중 가볼만한 곳의 주소를 인터넷으로 미리 뽑아갔는데 이는 너무나 현명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찌 한국식당을 찾을 수 있었겠나.

오마하에 처음 갈 때는 주총 참가보다는 오마하가 어떤 곳인지 워렌 버펫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주총을 어떤 분위기에서 하는지 정도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버펫의 책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건데 책에 의하면 오마하는 작은 시골이고 주주티켓에 대한건 나오지도 않고 주주들은 버펫과 기념 사진도 찍고 스테이크 먹은 후 데어리 퀸으로 걸어가 후식을 먹고 버펫은 야외에서 사인을 해주는 식으로 나온다. 책에 나오는 단편적 이야기들이 정보의 전부였기 때문에 난 꼭 주총장 내부에 들어가지 않아도 버펫을 쉽게 볼 수 있고 주주인척 끼어들어 사인을 받거나 사진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즉 주총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주주가 아니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니 그냥 가서 참관을 부탁해보고 허락하면 좋고 거절 당해도 그뿐이란 생각으로 간 것이다. 근데 이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책으로 인한 간접경험과 실제 체험과의 차이일까... 오마하는 시골이긴 하지만 결코 작지 않았고 주주들은 걸어 다니지도 않았으며 주주라도 티켓이 없으면 못 들어가고 야외에서의 사인은 하지도 않았다. 필자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차이를 줄이고 싶어서다.

2003년 벅셔 주주총회 티켓이다. 주주라도 티켓이 없으면 못 들어가고 다르게 보면 주주가 아니라도 티켓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다.

출발 당일까지 잘 작동하던 카메라가 도착 직후 고장이 났고 이게 계기가 되어 나는 교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는 신기한 일이었는데 구입한지 보름 만에 고장 난 것도 그렇지만 절묘한 시기에 고장이 난 것이다. 도착한 날은 주총 일주일 전으로 만일 더 빨리 고장 나거나 아님 늦게 고장이 났다면 나는 주총에 들어가진 못 했을 것이다. 카메라 때문에 한국식당을 찾았고 거기서 김상만 씨를 만났는데, 한인 파티에 초대해 줬고 거기서 많은 교포들을 만나게 됐다.  교포들을 만난 자리에서 다시 현실의 벽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 중 벅셔 주주는 없었고 주총장에 가본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주주가 아니면서 주총에 참가할 수 있다면 자기네들도 벌써 했을 거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움이 많았다. 학교도 1년이나 휴학하고 왔는데 워렌의 얼굴도 못 보고 갈 순 없었다. 일단 더 많은 교포들을 만나보기로 하고 다음날 한인교회를 찾아갔다.  교회에서 버펫 때문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 주었고 급식봉사에서 뛰어난 미모의 김미아 씨를 만나게 됐다.  이 분을 통해 보쉐하임의 CEO인 수잔을 만나게 됐고 주총 행사에 초대 받게 된 것이다.  

수잔은 세일즈 우먼이었는데 워렌 버펫을 만난 뒤 워렌이 “당신같이 임팩트한 사람이 경영을 해야 돼” 라는 말과 함께 CEO로 발탁된 여성이다. 그 전에 미세스 오를 만나서 벅셔 주주로서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총 순서나 이벤트도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올해는 오마하 로열스의 시범경기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주주티켓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 하긴 그 많은 주주들을 어떻게 다 확인하겠는가... 주주가 되면 주총 전에 주총 참가에 대한 메일을 받는데 그 때 참가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티켓을 신청해야 하며 신청자에 한해 티켓이 발송된다. 그리고 주주가 아니라도 주주와 함께 게스트로 입장이 가능한데 미세스 오는 이번에 참가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티켓을 얻기 전 주총 참가를 위해 현지 주주들에 부탁도 하고 교포들 의견에 따라 버펫에게 편지도 썼다. 유학생의 도움으로 영작을 하여 벅셔 이메일로 보냈지만 확인이 되지않고 있다. 하지만 티켓을 구하게 됐고 나는 편지내용을 수정하여 프린트를 해서 직접 버펫에게 주려고 가지고 다녔다. 영어로 긴 얘기도 되지 않고 시간도 없을 것 같아 편지로 전해 주는 것이 효과적일 듯 싶었다.

평상시의 보쉐하임 보석상-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정문 앞의 거대한 화분이 보이는데 이는 보안을 위한 것으로 예전에 보석 털이범이 자동차로 돌진해서 공격한 적이 있어 방어차원에서 설치한 것이다.

주총 전야제의 보쉐하임-수많은 주주들로 생동감이 느껴진다.

보쉐하임은 미국에서 가장 큰 단일 매장을 가진 보석상으로 힐러리 같은 저명인사나 유명 배우들이 단골로 이용하며 워렌의 친구인 빌 게이츠도 결혼반지를 여기서 맞추었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선 티파니 이상의 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지점을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비용절감의 효과를 가져 왔다. 특유의 포장 방법인 은회색 상자와 리본은 보기만 해도 여자들의 설레임을 자아낸다고 하는데 이는 보쉐하임이 고가의 물건만을 취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격표를 보면 이해가 된다.

5월 2일 오후 6시 드디어 주총 행사가 시작되었다. 보쉐하임은 매리어트 호텔 옆의 리젠시 몰이라는 쇼핑 몰에 위치해 있다. 파티엔 미세스 오가 동행을 했다. 이 분은 파티를 즐긴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많은 분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원래 보쉐하임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주총기간에는 촬영이 가능하다. 내부는 방사형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으로 갈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예전에는 주총기간 전시 때 보석 옆에 가격표와 함께 가격만큼의 주식수도 같이 표시해 놓았다고 했는데 올해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8만불 짜리 반지는 A주식 1주, B주식 30주 같이 말이다. 내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나는 버펫이 언제 올지 촉각을 곤두 새우고 있었다. 그러다 뒷문으로 나가니 리젠시 몰의 메인 홀이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 아닌가..나는 버펫이 사인 회를 하는 줄 알고 미세스 오가 와인을 가지러 간 사이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필자 옆에 어떤 할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워렌과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 같았다. 고화질로 인화된 버펫과 사적으로 찍은 사진들도 보여주었다. 사진에서 버펫은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상당히 귀여워 보였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예전에 A주주들만 올 때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B주식이 나온 뒤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고 했다. 순간 뜨끔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난 사실 주주도 아닌데 말이다.  

줄 서서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그 줄은 뷔페 형식으로 음식을 가져가는 줄이었다. 어차피 저녁을 먹어야 하니 음식과 음료를 가지고 구석 쪽 테이블로 가서 다과를 즐기며 여러 주주들과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부족한 영어는 미세스 오의 도움을 받았다.  여러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펀드 매니저나 변호사들도 있었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백만장자 부부, 모델 같은 외모의 젊은 여인들도 파티를 빛내 주었다. 동양인은 많이 없었지만 주로 중국계 미국인이 많았다. 보석 구경도 끝내고 사람들도 만나고 나니 시간은 8시라 미세스 오는 집으로 가고 나는 혹시 워렌이 올지 몰라서 끝까지 남아있기로 하였다.  걸어 다닐 수도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버펫 만을 기다렸는데 왜 이리 닮은 사람이 많이 보이는지... 과장을 보태서 버펫과 비슷한 사람을 30명은 본 것 같았다. 안에서는 할 것도 없고 너무 피곤해서 밖에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정문에서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정문쪽의 벤치에 앉아서 2시간 정도 기다렸다. 물론 가끔 안의 동정을 살피기도 했다. 주차장은 뒤쪽에도 있는데다 뒷문으로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시까지 기다렸지만 그를 볼 수는 없었다. 칵테일을 손에 들고 나타나 주주들과 이야기도 하고 사인도 해주는 걸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야속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하긴 그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들은 얘기로는 워렌이 보쉐하임에 왔다고 했다. 주차장에서 그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쪽으로 왔다가 금방 떠나서 나는 그가 왔었다는 사실도 당시에 몰랐었다. 아쉽지만 내일 주총을 기대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보쉐하임 내부에서의 수많은 주주들-걸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 주주에 한해 30~40%정도의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데 물론 일부 품목은 제외다. 이 기간 중 매출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보쉐하임의 보석들-이쪽의 중앙 라인이 가장 고가의 제품이 모여있다. 핑크 다이아나 옐로 다이아 등도 있으며 사진에서 왼쪽 앞쪽에 있는 다이아 반지는 17캐럿 짜리로 약 75만 달러 정도이다. 너무 싸다고...흐흐..걱정 마시라.. 이거보다 더 비싼 것도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여느 보석상이 그렇듯 시계에서 물잔까지 다양한 제품이 있는데 크리스탈 물병 하나가 우리 돈으로 약 200만원이 넘어가기도 했다. 처음엔 기념으로 필자도 구입을 해볼까 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그냥 살 수가 없었다. 단지 기념이란 이유로 필요 없는 물잔 같은걸 살순 없지 않는가..그런 물잔도 몇 십만원을 줘야 하니 말이다. 보통 보석은 싼 게 1~2만 달러고 보통이 5~6만 비싸보인다 싶은 건 10만 달러가 넘어갔다.

필자에게도 선물을 구입하란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하며 대신 나중에 결혼 반지를 여기서 맞추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그 약속이 지켜질진 모르겠지만 미래의 나의 신부가 될 여인은 기뻐하기 바란다.

보쉐하임의 CEO인 수잔 재큐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옆의 남자는 서열 3위의 영업 이사로 이름은 모르겠다. 수잔은 굉장한 정열과 역동성을 가진 사람으로 사진엔 표현이 안 되었지만 실물은 예전 영국의 다이애나 비와 조금 유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리젠시 몰 메인 홀에 임시 바를 마련하여 다양한 술과 음료를 서비스하고 있다.

미니 테이블에서 주주들이 음식과 술을 즐기고 있다. 샐러드와 과일 치킨 등 다양한 음식이 제공됐는데 이로 인해 필자는 내일 있을 바비큐 파티에 대해 과도한 기대심을 갖게 되었다.

파티 내내 홀 한쪽에선 음악이 연주되었지만 너무 사람이 많아서 음악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에 맞추어 묵묵히 연주를 했는데 물론 돈은 받겠지만 이날의 파티에서 가장 소외 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