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매치 12th!! 태평양 vs LG생활건강

여심을 훔쳐라 : 태평양 vs LG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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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자는 생활 속에서 투자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부분 상품에 대한 소비를 결정하는 여자가 남자보다 가치투자에 유리하다. 이번에 소개할 더비매치 상대도 여성이 매일 접하는 화장품, 생활용품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기업이다.

1. 서로의 핵심역량은 다르다.

화장품시장은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초, 색조화장품뿐 아니라 신체 각 부위별로 제품이 세분화되고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 증가로 미백, 주름개선 등의 기능성 화장품이 늘어나고 있다. 생활용품도 과거에는 최소한의 위생을 위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위생에 미용을 더한 여러 가지 기능성 제품이 등장했다. 예전에 비누는 그냥 얼굴과 손만을 씻는데 이용됐지만 최근 나오는 비누는 지성인지 건성인지에 따라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도 추가됐다. 샴푸는 머릿결 보호를, 치약은 미백을 위한 기능을 추가시켰다.

이렇게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기능이 중요시되면서 소비자들은 우수한 제품을 가진 외국 브랜드를 선호한다. 화장품시장에서 샤넬, 클리니크, 시세이도 등이 생활용품시장에서는 P&G와 유니레버란 강력한 외국 기업이 국내 시장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기업이 버틴 시장에서 토종 기업으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두 기업이 바로 태평양과 LG생활건강이다. 태평양은 1959년부터 화장품을 생산한 기업이고, LG생활건강은 LG화학에서 화장품 및 생활용품부문만 분리되어 나온 기업이다.

두 기업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시장에서 국내기업 중 1, 2위를 다투고 있고 경쟁도 심하다. 태평양과 LG생활건강의 1분기 매출은 각각 2919억과 2858억이다. 매출을 비교할 때 단 60억원 차이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기업의 핵심역량은 다르다. 태평양은 화장품매출이 2405억으로 매출의 82%를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LG생활건강은 화장품매출이 922억으로 매출의 32%에 불과하다. 대신 생활용품부문에 있어서는 LG생활건강이 매출의 68% (1936억), 태평양이 매출의 12%(341억)을 기록했다. 결국 태평양은 화장품,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에 핵심역량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1분기 실적. 엇갈린 희비

1분기 실적을 보면 태평양과 LG생활건강의 희비가 엇갈렸다. 같은 경쟁시장에 있으니 한 기업이 웃으면 다른 기업이 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누가 웃었을까? 바로 태평양이다. 태평양은 매출과 영업이익, 경상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각각 2.3%, 11.9%, 16.6% 증가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매출은 0.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 경상이익은 각각 25.7%, 23.1%씩 감소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두 기업의 매출을 보면 태평양은 화장품부문 매출은 늘고 생활용품 매출은 줄었지만, LG생활건강은 반대로 생활용품의 매출이 늘고 화장품부문의 매출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1위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업의 실적이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원인은 무엇일까?

3. 생활용품 '덤마케팅' 경쟁

할인점에 쇼핑하러 가면 샴푸하나를 사면 리필용 샴푸를 공짜로 주는 '덤마케팅'을 확인할수 있다. 이는 내수경기침체로 인해 제살깎아먹기 식으로 생활용품 업체들이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아주 신나는 일이지만 투자자의 눈으로 본다면 가격경쟁으로 인해 업체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예상했던 결과가 LG생활건강의 1분기 성적표에 바로 나타났다. LG생활건강의 생활용품부문의 작년 1분기 영업이익률은 11.1%였지만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은 9.6%로 낮아졌다. 더욱이 생활용품은 화장품과 달리 브랜드의 가치보다 가격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기 때문에 경기악화와 저가경쟁로 인한 피해가 컸다. 이것이 LG생활건강의 실적이 나빠졌지만 태평양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첫 번째 이유다.

또한 할인점과 제품공급자간의 관계는 최근 할인점이 '갑'의 입장에 올라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품공급자의 마진율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생활용품의 유통망이 슈퍼마켓 중심에서 할인점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생활용품의 마진폭 하락을 공급자입장에서는 눈뜨고 당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는 이제 덤마케팅에 익숙해져 물건을 살 때 다른 물건을 끼어주지 않으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을 받는다. 이로 인해 생활용품업체들의 덤마케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당분간 수익성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4. 태평양, 화장품 시장지배력 확대

화장품시장에는 작년 이후로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업계 3위를 기록하던 코리아나가 1분기 급격한 매출감소를 보이며 적자를 기록했고 LG생활건강의 화장품부문은 영업이익률이 12%에서 6%로 급격히 떨어지며 이익이 급감했다. 반면 태평양은 경쟁자가 하나 둘씩 시장에서 쓰러져감에 따라 시장점유율을 더욱 높이며 1위 기업으로서의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이렇게 화장품시장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것은 화장품 유통경로의 변화 때문이다. 화장품 유통경로는 크게 화장품 전문점, 백화점, 판촉점을 거쳐 방문판매원이 파는 구방판, 중간 판매조직을 통해 판매원을 거치는 신방판(직판), 할인점과 인터넷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2002년 말 기준으로 화장품 유통경로별 비중은 전문점이 31%, 구방판이 20%, 백화점 15%, 신방판 17% 등의 순이다. 2002년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는 바로 전문점과 신방판의 축소다. 전문점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유통의 70%정도를 담당했지만 소비의 양극화가 이뤄짐에 따라 상담을 원하는 고객은 백화점과 구방판으로 몰리고, 알뜰한 소비를 위한 고객은 할인점과 인터넷으로 몰리면서 점차 그 힘을 잃었다. 또한 신방판은 방문판매원 관리비 증가,경쟁적인 수수료율 인상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고 수익성은 악화되는 2중고를 겪게 되며 조직이 축소됐다.

LG생활건강은 전문점매출이 약 50%를 차지했으나 전문점이 줄어듦으로써 화장품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신방판으로 성장하던 코리아나는 신방판의 축소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구방판 39%, 백화점 10%, 전문점 30%, 신방판 11%로 안정된 유통채널을 확보하고 유통경로별로 차별화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춘 태평양은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5. 화장품기업으로 변신선언한 LG생활건강

1분기까지 모습을 보면 태평양의 KO승이다. LG생활건강은 넉다운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고 더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LG생활건강은 지난 5월 "화장품사업부문에서 백화점과 방문판매 브랜드를 잘 육성하고, 매출의 50% 수준까지 끌어올려 화장품기업으로 변화하겠다"고 밝혔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부문은 실제 지난해 전문점 매출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백화점에서는 55%정도 성장했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제품경쟁력은 태평양과 비교할 때 밀리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를 잘 육성시킨다면 크게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1분기 치명타를 안겨준 유통망관리의 문제점을 잘 극복한다면 화장품부문도 LG생활건강의 새로운 캐쉬카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분명 태평양이 앞서고 있지만 앞으로 펼쳐질 화장품시장 내 두 기업의 전쟁은 투자자에게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이다.

정석모 stonet@itoo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