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에드워드 소프, 나는 어떻게 시장을 이겼나

나는 어떻게 시장을 이겼나 A Man for all Markets in 2017

- 지은이: 에드워드 소프   Edward O. Thorp

- 옮긴이: 김인정

- 이레미디어 / 2019-04 / 594 / \\25,000

 

 

[딜러를 이겨라] [시장을 이겨라]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소프(Edward O. Thorp)의 자서전입니다. <카지노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처럼 널리 받아들여진 시각을 순순히 수긍하는 대신 직접 확인해야 했다>는 그의 고집에서 시작했고 결국 카지노를 이기는데 성공합니다. 주식시장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장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고 큰 성공을 거둔 후 가족과의 시간을 갖기 위해 투자업계를 떠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최고의 투기꾼으로 알려진 제시 리버모어가 사설 증권사에서 돈을 벌다 죽음의 위협을 받는 장면이 겹쳐집니다. 세계 최고의 채권 트레이더로 알려진 빌 그로스는 소프의 책, [딜러를 이겨라]를 읽고서 카지노에서 돈을 벌었다고 하니, 뛰어난 투자자는 도박도 잘하나 봅니다.

 

책에서 밑줄 친 글을 옮기면서 제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뛰어난 투자자의 삶을 따라가보려고 합니다.

 

 

책은 1934 12월 시카고의 추운 날씨에 아이가 딸린 집에는 세를 줄 수 없다면 문전박대 당했던 소프의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첫 기억으로 시작합니다. 생후 28개월 때였다니, 머리가 좋은 사람의 기억력은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더 앞까지 가능한 모양입니다. 저는 어린시절 밖에서 한참 뛰어 놀다 배가 고파 집으로 뛰어들어와서는 엄마 젓을 물었던 게 가장 먼 기억입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아직도 젖을 먹느냐고 놀려서 많이 부끄러워했었던 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매우 솔직한 전기라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그의 투자법이 카지노를 이기기 위한 도박에서 시작된 것이다 보니, 한 사람의 천재가 카지노를 이기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는 모습이 책 시작부터 2/5까지 카지노 얘기의 계속입니다. 결국 카지노를 이기는데 성공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으나)카지노 측의 미움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긴 다음, 지상에서 가장 큰 카지노인 월스트리트에 진출한다며, 전념할 시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심하게 가난했던 소프는 머리말에서 여건상 주로 독학을 했던 경험이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이끌었다며 그의 투자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소개합니다.

 

1. 카지노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처럼 널리 받아들여진 시각을 순순히 수긍하는 대신 직접 확인해야 했다.

2. 새로운 실험 방법을 개발해 이론을 시험했다. 그 결과 신주인수권 가치평가 공식을 비롯한 순수사유의 결과물을 얻고 그것을 유익하게 활용하는 것을 일상화할 수 있었다.

3. 스스로 가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 할 때는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성공할 때까지 끈질기게 매달렸다.

4. 과학이라는 전문분야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측면을 다룰 때 일관되게 합리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분투했다. 또한 증거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기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법도 배웠다.

 

-> 2004년 제가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재개했을 때,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재야의 스승에게서 주식투자법을 배운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론적으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인데, 무지했던 당시에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 성격 때문인데요. 테니스를 처음 시작할 때도 한 달쯤 배우다 공이 라켓에 맞기 시작하면서 이미 지급한 남은 레슨비를 포기했고 골프 역시 레슨비로 6개월 분을 선불했지만 처음 두 주쯤은 매일 열심히 배웠으나 1주일에 두 번 그리고 한 번 드문드문 나가다, 2개월쯤 지나 필드에 한 번 나간 다음부터는 아예 레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독학을 했다는 말씀이 은근 반가웠는데, 주식투자를 독학으로 배우려면 아무래도 실전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행히 처음부터 싼 주식만을 사는 가치투자를 추구했기에 상대적으로 실수는 적었겠지만 매도/매수 방법/시점, 가치평가 방법 등을 배우지 못한 것이 자신감이란 점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클로드 새넌의 집에서 롤렛 연구를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새넌이 내게 인생에서 이 연구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때 내가 떠올린 것들은 그의 생각과도 상당히 같았을 것이다. 사회적 인정, 박수갈채, 명예는 환영할 만하고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하겠지만 최종적으로 추구할 대상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듯 나는 그때 알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누구와 그 시간을 보내는가 였다. 147

 

 

당시 나는 인생에서 두 가지의 크게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점에 있었다. 전문도박사가 되어 전 세계를 돌며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도 있었다. 블랙잭과 롤렛을 오가며 번 돈의 일부는 위장 삼아 크랩스나 바카라처럼 카지노에 약간의 우위가 있는 다른 게임에 베팅하는 데 쓸 수 있을 것이었다.

또 다른 선택지는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 결정하도록 한 것, <나를 움직인 신호>는 내 성격이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성격은 운명이다>. 나는 멈춘 시간을 풀고 롤렛 테이블로 향하던 그때의 우리를 지켜본다. 223

 

 

많은 유명인들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는데, 배우인 폴 뉴먼과의 일화는 예전에 제가 알았던 내용과 다릅니다. 이 책에서는 연 600만 달러를 버는 폴 뉴먼이 소프에게 절세 방법을 물었고 소프는 자신이 아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인 뉴먼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세청의 보복을 살 것 같아서 소프의 절세방법을 실행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소프가 직접 쓴 이 책의 내용이 맞겠지만 아래 옮긴 글이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배우인 폴 뉴먼이 소프에게 블랙잭을 하면 얼마나 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프는 자기 기술이면 1년에 30만 달러를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뉴먼은, 그런데 왜 카지노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소프는 피식 웃으면서, 최소의 위험부담만 가지고도 뉴욕증권거래소와 선물 시장이라는 카지노에서 1년에 600만 달러를 버는데, 굳이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을 안아가면서 30만 달러를 벌려고 애를 쓸 필요가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 에드워드 소프 Edward O. Thorp - [딜러를 이겨라 Beat the Dealer]

- 모니시 파브라이, [단도 투자]에서 인용

 

 

나는 뉴멕시코주에 있는 동안(1963?) 책의 인세수입과 도박으로 번 상금을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운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 무지했다. 결과는 형편없었다. 잘하고 싶었다. 투자는 새로운 유형의 불확실성을 제시했지만 확률이론의 도움을 받는다면 괜찮은 선택이 가능해 보였다.

네바다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큰 일종의 카지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운이 좌우하는 게임을 이긴 나의 기법들을 활용해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박장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고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금융시장에 관해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박게임으로 얻은 지식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전등으로 앞에 놓인 길을 비추며 혼자서 금융시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43

 

도박은 단순한 형태의 투자다. 도박과 투자의 상당한 유사성은 내게 일부 도박게임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투자에서도 시장평균을 넘어서는 성과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둘 다 수학과 통계, 컴퓨터를 이용해 분석이 가능하다. 둘 다 위험과 수익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취하는 자금관리가 필요하다. 개별적으로는 유리한 베팅이라고 하더라도 과도한 베팅은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전하게 게임을 하며 지나치게 적게 베팅하는 것 역시 돈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투자에 성공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기질도 도박과 유사하다. 위대한 투자자는 대개 도박과 투자에 모두 능숙하다. 245

 

미래성장성이 높다는 말을 듣고 포드에 납품하는 한 회사 100주를 주당 40달러에 매수했고 2년 동안 주가가 20달러로 반 토막 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언제 팔아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매수가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 지고 있으면서 본전을 회복할 때까지 게임을 계속하겠다고 우기는 도박꾼들과 정확히 같았다. 4년이 걸렸지만 원금 4,000달러를 회복하고 빠져 나왔다.

 

4년 동안 겨우 본전을 하고서 빠져 나온 이 주식거래에 대해 비비안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듣게 됩니다. 책에는 소프의 아내 비비안의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굉장히 현명한 부인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유대인인 비비안은 장래가 불투명해 보이는 비유대인인 소프를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부모를 설득해서 소프와 결혼하는데, 201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먼저 잘 알지 못하는 주식을 샀죠. 다트를 던져서 종목을 선택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어요. 또한 원금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어요.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가격, 즉 자신의 매수가격에만 주목했어요. 247

 

 

연속적인 주가 상승이든 하락이든 투자자들이 모멘텀이라고 일컫는 것이 지속될 타당한 이유를 적절히 입증할 수 없다면 그것이 지속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나는 주가 그래프의 유형을 이용해 미래 변화를 예측하는 차트 분석을 자세히 검토했다. 노먼이 내게 소개해준 기법이었다. 그의 데이터와 예측치를 수개월 동안 검토했지만 의미 있는 관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현명한 비비안은 애초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시간낭비가 될 거에요. 노먼도 몇 년 동안 해봤을 텐데 당신도 알다시피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신발은 닳았고 옷차림은 허름하죠. 그 사람 아내의 오래된 낡은 옷을 보면 오히려 예전에는 형편이 더 나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250

 

 

앞서 유명 영화배우 폴 뉴먼과의 일화도 있었지만 워런 버핏과의 만남도, 그것도 초창기 투자자 시절 버핏과의 꽤 짙은 일화를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벤저민 그레이엄과의 인연까지도^^

 

[시장을 이겨라]에서 소개한 신주인수권 헤지 기법을 이용해 나는 최소 25천 달러짜리 계좌를 여러 개 맡았다. 고객 가운데는 (소프가 교수로 재직 중인)UC어바인 대학원장 랄프 제라드도 있었다.

제라드는 그의 친척 벤저민 그레이엄처럼 엉뚱한 구상을 논의하기를 즐겼다. 제라드는 그레이엄을 통해 워런 버핏을 만나 버핏이 세운 투자기구 가운데 하나인 버핏 파트너십(Buffett Partnership)의 초기 투자자가 되었다.

제라드의 가족은 어린 시절 일찌감치 투자를 시작했고 연평균 24%의 수익을 안겨준 38세의 버핏을 떠나 투자경력이 고작 몇 년에 불과하고 과거 성과를 기준으로 연평균 20% 수익이 기대되는 36세의 소프에게 투자금을 맡겼다. 어째서일까?

1967년 주식시장 강세로 대형주가 2년간 연평균 38%, 중소형주는 150% 폭등한 이후 버핏은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그 후 2년 동안 버핏은 자신의 투자조합을 청산했다.

버핏은 조합원들에게 전액 현금화, 버크셔 주식 출자 등을 제안했는데, 제라드는 전액 현금화를 선택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었다. [시장을 이겨라]를 비롯한 나의 저서에 소개된 분서적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 제라드는 직접 만나 나에 대해 알아보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버핏에게서도 의견을 구하고 싶어 했다.

1968년 여름, 제라드 가족이 우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버핏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버핏은 제라드 가족의 투자금을 운용할 잠재적 후임자로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심사하고 있었다. 259~262

 

-> 랄프 제라드의 일화를 보면서 워런 버핏이 만든 펀드의 초기 투자자였던 데이비드(?)박사가 생각났습니다. 버핏은 데이비드 부부에게 펀드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데이비드는 무관심하게 듣고 있습니다. 버핏은 투자금을 받기는 글렀구나, 지레짐작했으나 설명이 끝난 다음, 데이비드는 투자를 하겠다고 해서 버핏을 놀라게 하는데요. 데이비드가 버핏이 운용하는 펀드에 투자한 이유는 버핏을 보면 찰리 멍거가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말했죠. 몇 년 후 멍거가 오마하에 들렀을 때 데이비드는 버핏과 멍거를 집으로 초대해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합니다.

 

 

버핏은 언젠가 오후에 에메랄드 베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제라드 가족과 나를 초대했다. 캘리포니아 라구나 비치 북쪽 끝에 위치한 그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부유층을 위한 고급 주택단지로 아름다운 전용 해변과 바다전망을 갖추고 있었다.

->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얘기지만 1969년에 버핏이 캘리포니아에 화려한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내인 수지가 버핏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게 1977년이라고 했는데......

 

버핏과 대화하면서 투자에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 우리와 같은 점과 다른 점이 명확해졌다. 버핏이 기업을 평가하는 목적은 일정한 지분이나 기업전체를 저렴한 가격에 사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과 예상하지 못한 요소를 감안해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했다. 그의 목표는 장기적으로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내는 것이었고 따라서 대개 시장 대비 상대적인 성과로 자신을 평가했다.

 

반면 나는 다양한 기업을 대상으로 가치를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 특정 회사의 다양한 증권을 비교했다.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에 괴리가 발생한 증권을 찾아 헤지 포지션을 구축했다 즉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증권에 대해 매수포지션을 취하고 고평가된 증권에 대해 공매도포지션을 취해 주식시장의 등락과 무관하게 수익을 추구했다.

나는 수학을 이용해 흥미로운 퍼즐들을 푸는 것을 즐겼다. 그 퍼즐을 처음 발견한 곳은 도박의 세계였고 다음은 투자의 세계였다. 돈을 번다는 것은 내 이론이 현실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 264~265

 

 

1969 11 3 10세 연하의 주식중개인인 제리 리건과 함께 투자금 140만 달러로 헤지펀드(PNP: Princeton Newport Partners)를 설립합니다.

-> 이 펀드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투자자들에게 큰 편차 없이 놀랄 만큼 고르게 연평균 20퍼센트의 놀라운 수익을 안겨주었다고 합니다.

 

신주인수권, 옵션, 전환사채, 전환가능우선주 및 다양한 유형의 파생증권이 시장에 도입되면서 우리는 전환가능증권 헤지를 전문으로 했다. 우리는 수학 공식과 경제 모형, 컴퓨터를 이용해 펀드를 운용했다. 거의 전적으로 계량적 기법에 의존하는 유일무이한 펀드였던 우리는 훗날 월스트리트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계량분석가>라는 새로운 투자자 유형의 시초가 되었다. 275

 

펀드를 운용한지 6년째인, 1975년 소프와 그의 파트너 리건은 백만장자가 됩니다. 그리고 아직 대학교수였던 소프는 부자가 됨으로써 삶의 변화와 주위 동료교수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돈은 우리 가족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비비안과 나는 집을 넓히고 개량했다. 비비안의 검소하고 실용적인 옷차림은 유행하는 세련된 가방과 신발을 갖춘 명품 의상으로 발전했다. 과거에는 일과 관련된 회의차 떠나는 저예산 여행이었던 우리의 휴가는 크루즈 여행과 해외 고급호텔로 대체되었다.

우리의 재력은 이제 동료 교수들 대부분을 넘어섰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 느꼈던 똑똑하고, 재미있고, 교양 있는 사람들과 거리를 벌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297

1982년 마침내 UC어바인의 전임교수직을 사임했다. 300

 

1988년 우연찮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펀드를 해산하게 됩니다.

 

1987 12 17, 국세청, 연방수사국, 우체국에서 나온 50여 명의 사람들이 제리 리건이 관리하던 뉴저지 프린스턴의 사무실을 급습했다. 줄리아니 뉴욕남부지구 연방검사가 월스트리트의 범죄자들을 기소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331

1988년이 끝나갈 무렵 운용의 한 축인 프린스턴이 소송에 대응하느라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통에 실적이 악화되었고 PNP 투자조합은 해산했다. 336

 

 

존 보글의 책, [부자 지침서, Enough]에서 보았던, 유명한 일화를 통해 저자는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조셉 헬러와 커트 보네거트는 한 억만장자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다. 보네거트는 헬러가 소설 [캐치-22]로 번 돈 전부보다 이 파티 주최자가 단 하루에 버는 돈이 더 많다며, 헬러에게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헬러는 자신에게 부자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보네거트는 어리둥절해하며 무엇인지 물었고 헬러가 답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인식이죠.” 345

- 소프 왈, 월스트리트에서 성공은 최대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에게 성공은 멋지게 사는 것이다.

 

 

1989년 펀드를 해산하고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자금으로도 투자를 하고 싶어 1994 8월 투자조합(리지라인)을 설립합니다. 이렇게 만든 투자조합은 8년 후 청산합니다. 이유는 개인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이처럼,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소프는 끈기 그리고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1994년 리지라인 파트너스(Ridgeline Partners)를 설립해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계좌와 함께 운용했다. 리지라인이 운영된 8 3개월 동안 투자자들은 연평균 18% 수익을 누렸다. 388

 

2002년 가을, 우리는 리지라인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과 2002, 아직 꽤 훌륭한 수준이었지만 수익률이 하락했다. 나는 헤지펀드 자산의 엄청난 성장과 그에 따른 통계적 차익거래 프로그램 확대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리지라인 운용을 마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게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여분의 돈이 아닌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비비안과 나는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꾸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좀더 여행하며 읽고 배우고 싶었다. 인생의 경로를 다시 한 번 전환할 시점이었다. 392

 

 

1983, 버핏과 만난 지 14년 만에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매수합니다.

 

나는 PNP에 집중하느라 1969년 이후로는 버핏을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3년에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회사의 놀라운 성장세에 관해 들었다. 지난 14년 동안 이미 주가가 23배 이상 뛰었지만 나는 주당 982.5 달러에 최초로 매수를 실행했고 계속해서 버크셔 주식을 사들였다. 404

 

2003 5월 버크셔 연례주총에 참석했던 소프는 식당에서 만난 찰리 멍거와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소프가 주위 사람들에게 버크셔 주식 매수를 권유하면서 벌어졌던 일화 몇 토막도 재미 있었습니다.

 

버핏이 좋아하는 식당, 고랏에서 티본스테이크를 먹던 중 머쓱한 표정의 찰리 멍거가 식당을 돌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젊은 시절에 관해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찰리는 하버드법학대학원에 다녔는데 그가 졸업하고 몇 년 뒤 학위를 받은 내 친구 폴 막스는 찰리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버드 출신 중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찰리를 꼽았다. 1학년 때는 교수들이 찰리 때문에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고 한다. 자신이 맡은 사건자료를 미처 검토하지 못한 어느 교수가 찰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찰리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교수님, 제게 <사실>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찰리는 내 메뉴판에 사인을 해주며 안타깝게 말했다. 옛날 일입니다. 옛날……”

408

 

 

2008년 소프는 이미 17년 전에 펀드에 투자하라는 제의를 받고 그 펀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던 1) 메이도프 폰지 사기 사건이 터집니다. 또한 천재들이 모여 만든 헤지펀드로 유명세를 떨쳤던 2) LTCM의 몰락과 LTCM을 만들었던 메리워드의 뻔뻔한 행보, 그리고 금융위기를 몰고 온 3) 은행법 개악과 관련자의 뻔뻔함 등 지난 경험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3가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힙니다.

 

1) 2008 12 11, 버니 메이도프의 폰지사기가 발각됐다. 모든 폰지사기가 끝이 그렇듯 투자자들에게 더 이상 지급할 돈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메이도프는 자수했다. 351

 

도박게임을 이기는 방법을 찾는 데서 주식시장 분석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나는 순진하게 생각했다. 카드게임에서 속임수를 쓰는, 문제 있는 세계를 벗어나 법과 규정이 투자자들에게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는 경기장에 들어서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판돈은 더욱 대담한 도둑을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버니 메니도프의 폰지사기는 2008년과 2009년에 시장이 급락한 결과 더 이상 새로운 돈을 사취하지 못하면서 드러난 수많은 사기행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이었을 뿐이다. 365

 

2) 헤지펀드인 LTCM 1994년에 설립되었다. 살로몬 브라더스 출신의 전설적인 트레이더 존 메리워드와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될 로버트 머튼, 마이런 숄즈가 이끄는 16명의 드림팀을 구성했다.

LTCM 투자자들의 연간 수익률은 30~40%에 달했지만 이것은 자기자본의 30배에서 최대 100배에 이르는 막대한 레버리지 덕분에 가능했다. 레버리지 효과가 아니었다면 수익은 자본비용의 몇 펴센트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1998 LTCM은 완전히 붕괴되기 직전이었지만 <대마불사> 논리가 등장하면서 연방준비제도의 구제노력이 이어졌다. 펀드는 질서 있게 청산되었고 투자자들은 결국 지분의 일부만을 회수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워드는 16명의 GP(무한책임파트너) 4명과 함께 LTCM과 유사하지만 레버리지 활용은 축소한 새로운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LTCM에서 손실을 입은 사람들을 포함한 투자자들에게서 곧 3 5천만 달러가 모였다. 펀드가 성장하고 신규자본이 유입되면서 펀드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 대표 펀드는 2008년에 42%, 3억 달러 이상의 손실로 그 해를 마무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펀드는 2009년에 청산됐다. 메리워드는 2010년 또 다른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LTCM 몰락에서 마땅히 배웠어야 할 과도한 레버리지의 교훈은 무시되었다. 10년 후 역사는 반복되었다. 2008년 전 세계금융시스템은 느슨한 규제와 높은 레버리지로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425~426

 

3) 대공황 당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분리하기 위해 제정한 1차 글래스-시티걸 법은 1999년에 폐지되었다. 그 결과 대형 금융기관들은 규제대상에서 벗어난 파생증권을 대규모로 거래하며 더욱 큰 위험을 떠안았지만 규제의 영향에서는 더욱 자유로웠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의장(1996~1999) 브룩슬리 본은 파생상품이 훗날 재앙의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보고 규제를 가하려고 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연준의장 앨런 그린스펀, 재무부장관 로버트 루빈, 재무부차관 로렌스 서머스가 이끄는 삼두체제에 의해 저지되었다.

– 3명 모두 2008~2009년 구제금융과 관련해 훗날 정부 자문역할을 했다.

 

나심 탈레브는 학교 버스를 운전하다 사고를 내 승객들을 죽거나 다치게 한 운전기사를 또 다른 버스의 운전석에 앉히는 것도 모자라 그에게 새로운 안전규칙 수립까지 맡기는 이유는 무엇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515

 

 

이제 개인투자자에 대해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줍니다. 주식시장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열악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도 일찌감치 투자를 시작한다면 백만장자로 은퇴할 수 있다는 말씀인데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상황을 얘기하지만 원리/요점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축도 없고 미래전망도 불투명한 18살의 육체노동자가 있다. 어떻게든 매일 6달러씩 돈을 모아서 매월 말 인덱스펀드인, 뱅가드 S&P500지수펀드를 조금씩 매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금이 이연되는 퇴직상품에 투자해 대형주 기준으로 장기 평균 10% 수익률을 거둔다면 47년 뒤 65세에 은퇴할 때 투자금은 240만 달러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431

-> 엑셀로 무식하게 끌어내린 결과 저자의 말씀대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장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덱스펀드가 최선의 투자법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 당연히 저는 가치투자법을 실행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은 인덱스펀드를 매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매수 후 보유>전략에 위협이 되는 것은 투자자 자신이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을 관찰하고 이야기와 조언을 듣다 보면 적극적인 매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대체로 수익률이 부진할 수 있다. 지수를 사는 것(지수 추종 전략)은 이런 함정을 피하는 전략이다. 462

 

 

가치투자자를 지향하는 저로서는 투자를 배운다는 점에서는 얻을 게 많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성공한 투자자가 성장/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일독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프는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자신의 생각을 들려줍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말씀과 저의 생각을 비교하며 다듬어 보았습니다.

 

나는 극히 높은 수익을 낼 것이 거의 분명했던 여러 사업적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였고 인생의 더 많은 부분을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고 더 많은 시간을 아이디어를 탐구하며 즐기기 위해서였다. 544

인생은 소설을 읽거나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과 같다. 인생은 목표에 도달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이고 그 과정에서의 경험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듯 시간은 삶을 만드는 재료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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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댓글 2개)

  1. 연어1215
    연어1215 | 19.05/14 16:25
    흥미진진하며 많은 삶의 교훈을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경제지식이 많다고 해서 꼭 주식투자를 잘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식투자는 어려우면서 재미있습니다. 독후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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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연금고객
    연금고객 | 19.05/30 10:47
    늦게서야 보게 됩니다. 책소개는 어디선가 본적있었는데 자세한 내용 보게 되었네요. 5월은 가치투자자들도 대부분 고생하는 달이네요. 언젠가 다시 좋아질 것을 믿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지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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