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에서의 기억 한조각

나는 2000년대 중반에 인도양 섬나라에서 2년정도 지낸 적이 있다.

그 나라는 참 무료했다.

일년 중 몇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맑은 날씨에 햇볕 쨍쨍.

기온은 항상 30도.

사계절이 없고 항상 여름이니 기억나는 일이 많지 않다.

한국에 살 때는 몰랐는데 우리 경험의 많은 부분은 그당시 날씨를 통해 선명히 기억된다.

예를들어 그녀와 만났을 때 눈이 많이 내렸다던지, 엄청 추웠다던지, 낙옆 길을 걸었다던지 등이다.

그런데 날씨가 항상 똑같으면 언제 특정한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와 만났을 때도 햇볕 쨍쨍에 더웠고,

헤어졌을 때도 햇볕 쨍쨍 더우면 언제 어떤일이 생겼는지 햇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섬나라에서 지냈던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사건만은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도 봄이었는지, 여름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더운나라 인지라 애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8시쯤에 출근해서

사무실 방에 모기를 좀 쫓고, 에어콘 켜고 업무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국제전화가 울렸다.

통상적으로 아침 일찍 또는 저녁 늦게 오는 전화는 조짐이 좋질 않다.

왜냐하면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고, 급한만큼 좋지 않은 소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몰디브 경찰청 차장이었다.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중 스노쿨링을 하다가

신랑이 물에 빠져 사망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가족들이

리조트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가 나서 해변가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조트측은 1시간내에 시신을 찾아가지 않으면

유가족들이 아직 시신 확인도 안 했는데도

시신을 비행기에 싣어 이 섬으로 보내버린다는 것이다.

 

잠시 멍 했다. 뭘 먼저 해야 하는가?

교민 보호를 위해 빨리 그리로 달려가야 하나?

아니면 리조트에 먼저 항의를?

그도 아니면 시신부터 그 섬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치를?

시간은 별로 없는데.

여기저기 상황 파악하고 보고하고 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다시 경찰에 전화를 했더니 시신이 벌써 안치소를 떠나

이리로 오는 비행기에 이미 실려있고 조만간 이륙한단다.

비상사태다.

아들 잃은 슬픔도 모자라 시신확인도 못한다면 유족들의 슬픔과 화를 달랠 방도가 없다.

직급이나 앞 뒤 따질 것도 없이 급하게 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빨리 공항에 연락해서 당장 비행기 세우라고”.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영어로 말도 더듬고, 좀 거친 말도 섞였지만 진심이 통한 것일까?
20분쯤 지나서 경찰청 차장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비행기 출발시간을 20분쯤 늦춰서 시신을 다시 비행기에서 내려 시신안치소로 돌아가고 있단다.

 

‘휴 ~’ 일단 한 숨을 돌렸다.

이제는 리조트를 찾아가서 상황 파악도 하고,

유가족들을 달래서 시신을 수습해서 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 만해도 30대 중반의 혈기 넘치는 나이라 도저히 혼자서는 유가족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사무실에 연세가 좀 되시고 경험이 많은 영사님과 같이 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 영사님이 두 가지 말씀을 하셨다.

첫째 시신이 훼손되지 않고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니 안치소에 연락해서 조치를 취할 것.

둘째, 시신 확인을 할 때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반드시 눈을 똑바로 바라볼 것.

“고개를 돌리거나 피하려하면 트라우마가 오래가며 꿈에도 나온다”.

 

마침 그날 비행기는 없어서 그 다음날 일찍 첫 비행기를 타고 옆 섬으로 갔다.

하늘에서 산호초로 푸르고 눈부시게 몰디브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경찰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협박이라도 해야하나?”

“막가파 유가족들이면 어떻게 하지?”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픈 상태에서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 내리자 60대쯤으로 보이는 노신사가 다가와 물었다.

“혹시 공관에서 오셨습니까?”

다시 보니 60대 어른 2분,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

20대 여자 두 분이 같이 서 있었다. 유가족들이었다.

다행히 유가족들이 생각보다 의연하고 점잖아 보였고,

신부는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세 분은 고인의 아버지, 친구 분, 그리고 목사님이었다.

 

먼저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몰디브 경찰들로부터 파악한 상황을 알려드렸다.

그 전날 워낙 고생을 하신 탓인지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죄송스럽게 반가워하셨고

공관에서 몰디브 경찰과 함께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점에 안도하시는 것 같았다.

 

사고로 인한 사망이지만 유가족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한 리조트측에는

한국인들이 당분간 안 가도록 관광공사를 통해 조치를 하기로 하고

유가족들이 아직 시신 확인도 못한 상태라 먼저 시신안치소로 가기로 했다.

 

몰디브 경찰이 우리를 에스코트 해서 전용 선박으로 안내를 했고

몰디브 점 끝쪽에 있는 시신안치소는 참 초라했다.

마치 수산시장에 있는 냉동창고 같은 분위기?

유족들에게 시신을 보여주기 전에

몰디브 경찰이 나를 부르더니 먼저 시신을 확인해 달란다.

 

사람이 죽은 것을 그전에 본 적이 없었기에

약간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신안치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차가워 보이는 은빛 쇠 침대위에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미리 시신을 좀 닦아놓아서일까?

시신은 참 평안해 보였다.

가지런한 머리에 마치 깊은 잠을 자는 것 같았다.

“oo야 일어나” 라고 부르면 벌떡 일어나 앉을 것만 같았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아름다운 몰디브로 여행떠나 보낸 아들을

며칠 만에 깊은 잠을 자는 모습의 시신으로 마주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목사님의 간단한 입관 예배,

아들에게 이야기하듯 이별을 고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참 의연했다.

신부는 차마 남편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바깥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고.

 

몰디브는 이슬람교이기 때문에 화장이 허용되지 않아

시신을 비행기에 싣어 스리랑카로 날아왔다.

공항에서 시신을 화장장으로 운구하는 동안

인근 한식당에서 처음으로 같이 식사를 했다.

 

두 사람은 분당에 있는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신랑측은 집안도 좋고 학벌이나 직업 측면에서 월등히 나았지만

신부측은 그렇지 못했는지 결혼하기 전에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는가?

아들의 고집으로 신랑집에서 결혼을 허락했고

오랜 연애 끝에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짧은 행복도 잠시.

다시는 못 만날 먼 길을 신랑이 먼저 가버렸으니

게다가 먼저 빠진 신부를 구하려다.

신부의 마음이 어떠할까?

 

예전에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 중계를 보다가

한 선수가 코너를 돌다가 꽈당 넘어진 것을 봤다.

그때 아나운서가 해설위원에게 넘어진 선수의 심정이 어떻까 물어봤었다.

해설위원 왈, “4년을 땀 흘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일 겁니다”

 

그때 신부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이게 꿈이었으면 좋았을’
‘차라리 내가 죽을 걸’ 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먹는둥 마는둥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유가족 일행과 같이 장례식장을 향했다.

몰디브에서 싣고 온 시신은 그래도 제법 잘 갖춰진 관에 누워 있었고

이미 입관예배는 마친 후라 목사님의 예배와 기도로 장례식을 치른 후

관을 들고 장례차량에 싣으려고 할 때였다.

 

“으어엉 엉엉” 힘없이 장례식장에 앉아 있던 신부가 달려 쫓아와

관에 매달려 한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이 과연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신부는 가슴에서 솟구치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규를 터트리며 혼절했다.

 

한자 4자 숙어중 ‘단장지애(斷腸之哀)’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

진나라의 장수 환온이 양쯔강을 따라가다가 병사가 강변에서 놀고 있던 새끼 원숭이를 잡았다.
그런데 강 건너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태운 배를 따라 100리를 쫓아왔단다.
강폭이 좁은곳에서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태운 배로 점프를 했으나 배에 이르기도 전에 빠져 죽었다.
한 병사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았더니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때 신부의 울음은 사람이 아니라 짝을 잃은 원초적 동물을 울음이었다.

“가지마 가지마” 하는.

 

나는 유족들과 장례차를 타고

다른 영사님은 쓰러진 신부를 다른 차에 태워 진정시키고 해서

골프장 옆에 있는 초라한 화장장으로 갔다.

신부는 차마 재로 사라지는 신랑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몇 시간 전에 내가 봤던 잠을 자는 듯한 건장한 청년은

한줌의 재가 되어 무더운 열대의 하늘로 사라져갔다.

 

나는 유가족들에게 거듭 위로의 말을 전하고

몰디브 경찰청장에게 사과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시신 운구에 힘쓴 직원들에게 얼마되지 않는 돈을 건넨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는 것이 참 허무한 것일까?

매일매일 주식시장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씨름하고 아웅다웅 하지만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영혼을 보면 작은일에 일희일비하며 사는 것이

한 없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오늘도 내가 숨을 쉬며 여름과 같은 봄날을 맞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10년전 인도양에서 꽃다운 나이에 영면한 한 젊은이의 명복을 빈다.

함께 - 김건모, 박광현

우리 기억속엔 늘 아픔이 묻어 있었지
무엇이 너와 나에게 상처를 주는지

주는 그대로 받아야만 했던 날들
그럴수록 사랑을 내 세웠지

* 우리 힘들지만 함께 걷고 있었다는 걸
그 어떤 기쁨과도 바꿀수는 없지

복잡한 세상을 해결할 수 없다 해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다가 올거야

살아 간다는건 이런게 아니겠니
함께 숨 쉬는 마음이 있다는것

그것만큼 든든한 벽은 없을것 같아
그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


울고 싶었던 적 얼마나 많았었니
너를 보면서 참아야 했었을 때

난 비로소 강해진 나를 볼 수 있었어
함께 하는 사랑이 그렇게 만든거야

살아 간다는건 이런게 아니겠니
함께 숨 쉬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한 벽은 없을것 같아
그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