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을 보고

오늘 IFC 몰에 가서 요즘 잘 나가고 있는 명량을 봤습니다.

예전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여러번 읽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왜장을 이순신이 직접 베는 헐리우드 액션 빼고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7년전쟁..

한국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3년 동안 일어난 전쟁이고

병자호란도 큰 치욕으로 기록된 전쟁이지만 짧았던 전쟁인데 반해

임진왜란은 장장 연수로 7년동안 지속된 전쟁이었습니다.

전란동안 백성들은 총, 칼에 맞아죽고 굶어죽은 끔찍한 우리 민족 최악의 전쟁이었습니다.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전쟁에 완전한 준비가 되어 있었던

일본에 비해 선조 치하의 조선은 전쟁에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15만 대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겠죠.

신립의 충주전투 패배로 그나마 조금 있던 조선의 정규 육군은 몰살되었고,

해군도 수비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일본의 해군을 주도적으로 공격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숫적으로나 물량으로나 열세였던 조선의 해군이 연전연승을 한 것은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개인기"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유리한 잇점은 일본이 화포가 없었다는 것.

일본은 조총만 쏠 뿐.일정 거리를 띄어두고 진행하는 조선 해군의 포격전에는 약했지요.

조선 수군의 전략은 거북선을 앞세운 돌격 전략과 

일정 거리를 두고 판옥선에서 포격전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충무공의 가장 강점은 절대 승산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전투에 임하기 전에 충분히 전략을 세우고 원하는 장소와 원하는 시간에 해전을 치렀습니다.

임진왜란 기록에 보면 충무공은 연전연승을 하면서도 진영을 남해에서 서해 쪽으로

계속 후퇴를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강한 육군과 해군이 결합되면 포위당할 수 있고

해전에서 승리를 했다지만 배후의 일본 육군의 협공을 당하면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피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간 전승에도 섣불리 나서서 출병을 하지 않은 것인데

육전에서 연전연패 이후 해전에서 승리 소식에 목말라 있던 조정(정확히는 선조와 그 참모들)의

눈에는 "남쪽의 장수"가  전투를 하지 않고 꾀만 부리는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원균이나 권율도 이를 모르지 않았지만 이 분들은 승전에 목말라 있는 임금의 명을 "충실히" 받들어서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해군이 괴멸당하는 패배를 당하지요. 숫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일본 해군의 본거지인 부산으로 진격하다가 오히려 거제도 근처에서 급습을 당해 몰살당한 겁니다.

충무공의 전술이 포와 지형을 잘 이용한 유격전 후에 후퇴하는 전술이라면

원균은 숫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정면공격을 하려다가 오히려 기습을 당한 것이죠.

예전에 학교에서 배울 때는 간신 원균이 "착한 충무공"을 모함했다고 하지만

연공서열상 충무공 보다 위인 원균 입장에서는 충무공의 지휘감독을 받는 상황이

선배로서 참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충무공을 시기하기 보다는 큰 재주는 없으나

군인 선배로서 나름대로 공을 세워보려고 한 것이 망한 것이죠.

기록에 보면 임진왜란 이후에 충무공, 권율과 함께 패장 원균도 같은 급인 선무공신 1등에

책봉된 것을 보면 간신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패장이긴 하지만 조정입장에서는 자기 

지시를 잘 따른 장수를 벌할 수는 없었겠죠 - "멍청한 조정과 우직한 장수?")

임진왜란은 전체적으로 보면 전란 초기인 충주전투 패배 이후에 선조가 의주에 피난가서

명나라를 끌어드린 이후, "일본육군 - 명나라 육군", "일본 해군 - 이순신"과의 전투였습니다.

명나라는 개전 초기 부터 줄곳 일본과 적절히 휴전해서 발을 빼려고 했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싸운 '명량해전'은 충무공의 "개인기"를 뚜렷히 보여준 전투였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정말 '자살'하는 심정으로 싸웠을 것 같습니다. 

"명량해전"은 신기와 같은 전투였지만, 전과 측면에서는 한산도 해전이나 노량해전에 비해 미약했지요.

명량에서 왜선이 30척 격파당했지만 노량은 100척 이상이 침몰한 큰 승리였습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군이 철군하려는 상황에서  충무공은 지금까지의 전술을 바꿔서

도망가려는 일본 해군을 쫓아가며 침몰시켰습니다. 

아마 명나라 해군이 일본 해군에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면 조명 연합 해군에 몰살 당했을 겁니다.

하지만 명나라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에서 애써 피흘려가며 전투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고

일본군이 후퇴를 한다는 데 굳이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없었지요. 명나라의 태도는 전쟁 초기부터

일본군의 중국 진출을 막는 것이지 조선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명나라 해군의 입장에서는 일본군이 드디어 물러난다고 하는데 이를 죽음으로써 막으려는

충무공이 얼마나 미워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노량해전의 형국은 지도자를 잃고 전쟁이 명분이 없어진 상태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과

남의 나라 전쟁을 드디어 끝내고 일본 해군의 귀국길을 터주는 명나라 해군과

우리 국토와 동포들을 7년동안 유린한 철천지 원수를 죽음으로 막으려는 충무공의 '열정'이

어울어진 드라마였을 것 같습니다.

노량에 나서는 충무공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제 도망가는 철천지 원수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겠지요.

그전과 달리 이제는 전면 공격으로 나서면서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을 겁니다.

명나라 해군은 협공은 커녕 전쟁이 끝나는 마당에

"조선 해군이 왜 이렇게 죽기살기로 싸우나?" 하면서 뒷짐만 지고 있고...

요즘 메이저리그 류현진 선수가 13승을 거둔것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지요.

하지만 류현진 선수는 5패를 했습니다. 하지만 충무공은 한번도 진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숫적으로나 정치, 제도적으로 엄청 불리한 상황에서요..

영화 "명량"을 보면서 제 머리에서 떠나지않은 생각은

충무공의 화려한 개인기와 백성을 생각하는 충정보다는

"왜 우리는 일본과 같이 막강한 군대와 제도를 갖추지 못하고

1명의 개인기에 의존해서 전투에 임해야 했나?"

"지금도 전쟁이 나면 우리가 과거의 명나라 처럼 다른 나라에 손을 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늦은 밤 한편의 영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하지만 충무공은 우리 민족의 진정한 영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