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과 침체를 판별하는 가치투자자의 렌즈

이채원 부사장의 붐버스톨로지 추천사

과거의 교훈은 쉽게 잊혀진다

투자자에게 있어서 버블은 마치 여름마다 찾아오는 장마나 태풍과도 같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떤 형태로 우리 앞에 버블이라는 것이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지만, 마치 인간의 속성이 그러하기라도 한듯이, 버블은 반드시 금융시장에 찾아온다.


금융시장의 버블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 먼저 행복감을 안겨준다. 모든 자산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유례없는 강세장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하지만 행복감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버블은 갑작스레 붕괴되고 거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앗아간다. 10여 년 남짓한 사이 자본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 금융 버블을 두 번이나 경험한 우리 세대라면 붕괴되는 금융 버블의 후유증이어떤 것인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은 ‘세계경영’을 외치는 기업들의 빠른 확장 속에 호황을 즐겼다. 하지만 단기 핫머니에 기댄 호황은 외환 위기로 연결됐고, 최악의 위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부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외환위기 당시 시장이 붕괴될 때의 상황은 지금도 생생하다. 젊은 펀드매니저로서 이때 받은 충격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기 가치투자에 대한 나의 투자 신념을 굳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자비한 외환위기 이후 또 다른 대형 버블을 경험하는 데에는 고작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천 년을 시작하는 첫 해에 세상을 바꿀 것이라 일컬어지던 전도유망한 기업의 주식이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되는 사상 최대의 버블을 경험했다.

IT버블이 한창일 무렵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돌이켜 보면 참으로 비현실적이었다. 당시 버블에 동참하지 않는 투자자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은 대단했다. 시장이 극단으로 치달아 갈 때 오히려 전통적인 가치주에 투자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하루에도 수차례 IT기술주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라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이익의 수백 수천 배에 거래되던 기술주 버블에 끝까지 동참하지 않았지만, 버블이 붕괴되기 직전까지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만신창이가 되었다.

IT버블 붕괴 후 우리는 6년 만에 또다시 글로벌 부동산 버블과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한 신용경색을 경험했고, 버블 붕괴 후 3년만에 다시 중국 경기 부양의 영향을 받은 산업재 버블이 지나갔다.

경제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전 세계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금융시장의 버블과 뒤이은 붕괴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지난 20년간 4차례나 발생한 폭발적인 버블은 앞으로도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경제와 시장의 속성으로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아무리 큰 폭우가 쏟아지더라도 단단히 준비하면 큰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것처럼, 금융시장의 버블도 그 본질을 이해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피할 수 있다.

금융 버블이 만들어지고 붕괴될 때마다 뒤늦게 버블의 원인과 진행에 대한 수많은 담론과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일의 교훈을 쉽게 잊고 또 다른 거품에 휩쓸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버블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역사 속의 교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기록을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그 속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 책은 전달하는 메시지가 간결하고, 현실 적용에 대한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어서 버블에 대한 다른 어떤 책보다도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버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더 큰 시기다. 이런 시기를 지내다 보면, 또다시 과거의 경험과 교훈을 망각하고 다가오는 폭우에 무방비가 될지도 모른다. 가끔은 지나간 일을 회상해 보면서 시장과 경제의 본질에 대해서 곱씹어 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시간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겸 CIO
이 채 원

  책 내용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