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740]영풍제지-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영풍제지(006740) 부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필자, 매년 연례행사처럼 하는 나름의 취미생활을 갖고 있다.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증권사에서 발간하는 투자편람으로 전 상장종목의 순운전자본을 계산하는 일. 뒷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노라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좋은 기회도 찾을 수 있다. 순운전자본(유동자산-유동부채)의 약 60%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이 회사의 영업보고서를 봤을 때 딱 든 생각.. “이게 뭐야~!!”.. 단 2개 년도의 보고서를 읽었을 뿐이었지만 나머지 읽지 않은 연도의 연차보고서 내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이유인 즉 슨 2003~2008년까지 모든 사업내용이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어김없이 똑같았다. 그래.. 사실 골판지 재료 만드는 회사에서 무슨 할말이 많겠냐 만은.. 아무튼 회사에 대한 경영진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해본 회사의 홈페이지는 역시나.. 라는 대답을 망설임 없이 되돌려 보내주었고, 지식검색도중에 인상 깊은 문장 하나 발견 “이렇게 주주정책에 무관심하고 지루한 종목은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정말이지 경영자의 무관심 속에 거의 방목되다시피 자란 기업..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어느 시의 시구가 정확하게도 어울리는 그런 기업이다. 지금까지 욕만 해놓은 게 미안하기도하니 이젠 좋은 면을 한번 살펴보자. 우선 이 기업의 재무상태를 봤을 때, 상당히 탄탄하다. 무차입에 가까운 재무수준에, 나름 꾸준히 수익도 내고 있다. 한마디로 뜻밖의 장초였다. 자~ 그렇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뭐 하는 회사인가??

이 회사는 라이너지와, 지관용 원지를 만들어 파는 회사다. 아~ 어렵다!! 라이너지.. 지관용 원지.. 이게 뭘까?? 쉽게 말하면 라이너지는.. 골판지의 표면부분이다. 골판지를 잘라 단면을 보면 안쪽을 구성하는 구불구불한 부분과 그것들을 감싸는 표면부분을 볼 수 있는데, 그 표면을 이루는 종이를 라이너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관용 원지는 뭘까?? 지관.. 잠깐 생각나는 한자를 떠올려보자.. 지는 종이를 말하고.. 관은.. 그래 그냥 관이다. 종이 관이란 얘기다. 실을 감아놓거나.. 화장지가 돌돌 말려있는 그런 것들.. 원재료는 고지와 펄프.. 펄프(종이를 만들 때 사용되는 나무섬유)는 많이들 들어봤을 것 같고.. 그렇다면 고지는 뭘까?? 그렇다..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우리에게 낯익은 용어로 바꾸자면.. 결국 폐지다. 쓰레기란 말이다.

플러스(+)요인

1. 안정적인 수요

주변에서 골판지를 찾아보자. 골판지는 어디에 쓰일까??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아마 상자일 것이다. 과자상자나 당신의 call에 대한 지름신의 응답인 인터넷쇼핑 택배상자.. 그런 것들.. 자~ 그렇다면~ 과자공장이나 택배업체들이 박스에 들어가는 원재료 가격 아껴보겠다고 신소재를 개발한다거나 그걸 수입해다가 쓸까?? 그래, 그거 몇 푼 아껴보겠다고 그런 일을 벌인다는 건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기 힘들다. 그래서 난 굉장히 지루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수요를 가진 사업이라고 본다.

2. 간단한 원재료

앞서 말했듯이 이 회사의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료는 폐지와 펄프다. 생산하는 상품자체가 폐지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재생용지이기 때문에 펄프가 얼마 필요하지 않다. 본사 영업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약 10%정도 펄프가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이다.) 그 외에는 폐지가 전부다. 그래서 변수가 얼마 없는 회사다. 물론 작년 같은 경우엔 유례없이 고지의 가격이 비쌌지만 그 한 해를 제외하면 가격변동이 그리 크지 않은 원료이다.

마이너스(-)요인

1. 무능한, 관심 없는 경영진

그렇다. 몇 해가 지나도록 사업보고서 인사말 한번 바꿔주지 않는, 이런 쪽으론 통 관심 없어 보이는 경영인을 두고 계신 회사다. 홈페이지관리도 형편없다. 고객센터카테고리엔 성인용품이나 그런 류의 광고들로 가득 찬 게시판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니.. 말 다했다.

2. 잘못된 방향의 사업확대

이 회사는 상장되지 않은 자회사를 몇 가지고 있다. 그 중 문제가 될법한 건 ㈜즐거운 나라, ㈜아이셋.. ㈜즐거운나라는 부동산관련업을 하는 회사이고, ㈜아이셋은 DMB라던가 IDTV에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이다. 종이 만드는 회사가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걸까?? 거기다가 더 문제가 되는 건 동사에서 ㈜즐거운나라에 빌려준 돈 80억 원과 ㈜아이셋에 대한 40억 채무보증이다. 사내에 현금이 남아돌아서 잠깐 동안 이자수익을 목표로 투자한 것이라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으나, (80억 원에 대한 대여금 이자율은 무려20%나 된다. 거의 사채놀이를 하고 있는 거다.) 문제는 ㈜즐거운나라라는 자회사가 그닥 우량 하거나 미래가 밝은 회사가 아니라는 것. 이자수익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나, 원금 상환 받기 전에 그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게다가 2008년 4월 15일에 올라온 공시내용을 보면 대여금 이자율이 20%에서 12%로 바뀐걸 알 수 있다. 회사의 상황이 안 좋아져서 80억에 대한 이자비용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 거라 추측해볼 수 있다. 아이셋이라는 자회사 또한 마찬가지다. 우량.. 성장.. 이런 단어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회사이다. 이런 재무/투자결정들이 경영진의 역량을 다시 한번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회사에 애정이 없는, 무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경영진(내 추측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까봐 살짝 걱정된다..), 어이없는 자회사와 그에 대한 적지 않은 자금대여.. 이런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요인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찾아볼 수 있는 이런 류의,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하고 있는 주식은 거의 모든 위험요인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말 그대로 당장 망해도 남는 게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사업내용, 바보라도 경영할 수 있는 기업.. 이런 말들이 잘 어울리는 회사가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내 의견은 ‘사도 괜찮다’이다.

워렌버핏님 말씀하시길 기업을 소유한다라는 생각으로 주식을 매입하라 하셨다. 그래서 정말 난 주식을 매입할 때마다 ‘난 이 회사의 주주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 회사의 주주의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회사의 경우엔.. 원재료(고지)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것이 주주로써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나나우유 사먹는 일 외에 신경 써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