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잊지 말자 #1

가치투자자라면 ‘시장의 오해’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실제 시장의 오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은 가치투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투자 원칙 가운데 하나다.

시장에 오가는 얘기들은 대부분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지나친 비관으로 인한 저평가는 가치투자자에게 절호의 매수 기회가 된다.

반대로 가치투자자는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 아무로 좋게 보이는 주식이라도 항상 ‘내가 너무 좋은 평가만 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을 해야 한다.

올해부터 새롭게 ‘과거를 잊지말자’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 시리즈는 비록 지금은 각광받는 가치주지만 과거에는 뜻밖에 반(反)주주적인 행동을 한 기업의 행동을 다시 되새겨 보자는 취지의 글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치주의 열풍이 불었던 2001년. 그 해의 황제주는 누가 뭐래도 태평양이다. 태평양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태평양은 2001년초 주가 3만원 선에서 연말에는 13만원까지 치솟았다. 태평양의 주가는 기업의 가치가 반영되는 과정에서 오른 것이므로 이후 주가 폭락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에도 태평양 주가는 계속 10만원선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태평양은 화장품 업계 구조조정의 최대 수혜주로 각광받으며,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삼미 슈퍼스타즈’로 시작한 프로야구단이 ‘청보 핀토스’를 거쳐 태평양에 인수된 사실을 기억하시는지. 그 야구단의 이름은 ‘태평양 돌핀스’였다.

태평양 돌핀스는 재벌기업의 비효율적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물론 지금의 태평양은 오랜 구조조정 끝에 본업에 충실하는 훌륭한 기업이다. 그러나 91년만해도 태평양은 잇따른 사업 다각화 시도로 계열사 수가 무려 24개를 넘어섰다. 몸집이 커지면서 태평양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고 90년대 이후 화장품 시장 개방으로 P&G, 로레알 등 거대 다국적 기업의 공격도 거세졌다.

2000년에 동양생명에 매각된 태평양생명은 또 어떤가. 당시 부실생보사의 대표적 기업이었던 태평양생명은 결국 정부의 자금지원과 감자 등의 절차를 통해 동양에 흡수합병된다.

태평양증권, 야구단, 농구단, 금고, 나중에는 큰 골칫거리가 된 생명보험에 이르기까지 태평양은 재벌이라면 한번쯤 해보는 사업에 빠짐없이 뛰어들었다. 이런 계열사들을 보면서 누가 지금의 ‘아모레 퍼시픽’을 떠올릴 수 있을까.

물론 태평양은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대표기업이다. 97년 이후로 서경배 사장의 2세 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본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과감한 사업부분 철수와 매각을 통해 살빼기에 성공했고 그 덕에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최고의 수익성와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게 됐다. 이제 태평양은 국내 1위 기업에서 만족하지 않고 ‘아모레 퍼시픽’이라는 월드브랜드를 앞세워 세계시장으로 진출을 시작했다. 필자는 앞으로도 태평양이 가치 중심 경영을 지속해 서경배 사장의 메시지처럼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과거의 경험이 월드클래스 기업으로 가는 좋은 밑바탕이 됐으면 한다.

주주들도 태평양이 과거의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잘 지켜보도록 하자.

박민우 minuz@keb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