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위의 가치투자자 - 우주류 다케미아

서론 : 바둑의 대중성

바둑이 대중적인가?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주변에서 바둑을 두는 친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바둑을 두는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바둑인들은 자신이 바둑을 둔다는 사실을 별로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리서치에 의하면 우리나라 바둑 인구는 1600만 명이라고 한다. 전국민의 30%에 해당하는 놀랄만한 수치이다.

본론1 - 바둑 역사 속의 다케미야

[또 다른 세상]

바둑은 삼국시대부터 시작해 1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19*19의 줄을 그은 조그마한 판에서의 세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터넷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실리파의 득세]

바둑은 자신의 돌로 둘러쌓인 집의 크기로서 승부를 겨룬다. 간단히 말해 집이 많으면 이기는 스포츠가 바둑이다. 그래서 바둑의 역사에 획을 그은 대부분의 기사들은 바둑판 전체가 엷어지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선(先)실리를 선택했다. 일본의 기성 오청원 9단으로부터 일본에서 가장 많은 타이틀을 따냈던 사카다 에이오 9단, 그리고 국내의 조훈현 9단, 조치훈 9단, 서봉수 9단 등 초일류 기사들이 실리파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세력파는 일부기사들을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1930년대에 우칭위안과 기타니는 중앙으로 향하는 신포석을 연구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승부바둑에서는 실리바둑으로 일관했고 미답의 처녀지인 중앙에 대한 꿈은 실패로 끝났다.

[우주류의 등장]

1951년생인 고집불통 다케미야는 세력을 통해 중앙 전체를 경영한다는 ‘우주류’를 창시하고 바둑계에 혁명적인 파동을 일으켰다. 그는 다른 기사들이 집짓기에 집중할 때 허공이요 공배라 여겨지던 중앙을 개척해 현대바둑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갔다. 수많은 바둑인들은 그의 호탕하고 장쾌한 바둑기풍에 열광하였다. 그는 1982년 혼인보 타이틀전에서 조치훈 9단의 철저한 실리바둑에 완패했으나, 1985년 이후에 혼인보 타이틀전에서 3연패를 하면서 우주류의 기세를 만방에 알렸다.  

본론2 : 우주류 다케미야

그러면 왜 다른 기사들은 실리에 집착을 하면서 중앙을 멀리했으며 다케미야를 고집불통이라 불렀을까?

[승부는 집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과 오해]

바둑은 경기가 끝난 후 집이 많은 사람이 이기기 때문에 승부는 오로지 집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바둑인들은 순간 순간의 실리(집)에 집착한다. 이것이 실리파의 기본 논리이다. 그들은 집이 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집요하게 파고 든다. 또한 바둑판의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순간 순간의 실리를 쫓고 이를 통해 궁극적인 실리의 우세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다케미야는 초반에 상대방에게 실리를 과감하게 양보한다. 대신 중앙에 엄청난 세력을 서서히 만들어 나간다. 중반 이후 상대방은 중대한 기로에 놓인다. 이미 커버린 중앙에 홀홀단신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인가? 또는 중앙을 포기하고 남은 곳에서 실리를 늘릴 것인가? 그러나 대부분 실리를 지속적으로 포기하면서 판 전체를 운영한 다케미야에게 유리한 결말로 끝이 난다. 바둑의 승부는 집이지만 눈 앞의 집은 아닌 것이다.

[중앙은 귀, 변에 비해 집을 짓기가 어렵다]

바둑의 주요 격언 중에 ‘사(四)귀생은 필승’ 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판의 네 귀퉁이(모서리)를 모두 차지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뜻이다. 그만큼 바둑에서 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귀가 집을 만들기에는 가장 쉽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하던 땅따먹기 게임을 떠올리면 모서리에서 시작해서 변으로 나가면서 점차 중앙으로 나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둑도 귀, 변, 중앙의 순으로 관심을 받았고 자연스레 중앙은 관심 밖에 있었다. 이러한 통념을 깬 자가 다케미야이다. 그는 상대방이 집착하는 귀와 변 대신에 판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중앙에 큰 집을 짓는 방식을 택했다. 순간의 몇 집을 쫓다 큰 집을 잃게 된 상대방은 무리수를 두게 되고 다케미야는 이를 냉정하게 응징하였다. 그러나 다케미야의 우주류는 익히기에 매우 어렵다. 자칫 어설픈 우주류는 실리도 잃고 바둑 전체까지도 그르치게 된다. 하지만 우주류는 완벽히 익히게 되면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호탕하고 대국적인 경기를 보여준다.

본론3 - 반상 위의 가치투자자 다케미야

그렇다면 다케미야를 왜 반상 위의 가치투자자로 부르는가? 가치투자의 논리와 비교해 보자.

[주식에서의 수익은 시세차익이라는 사실에 대한 집착과 오해]

주식 시장에서 수익은 시세차익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순간순간의 시세 차익의 변화에 민감하고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주식은 하루 이틀에 결판이 나는 단발성 게임이 아니다. 단발성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단발성 게임을 수없이 계속하며 오랜 기간 머무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우리가 순간의 작은 시세차익을 쫓아 하루종일 머리를 싸매며 고민할 때 다케미야와 같은 누군가는 우리에게 작은 차익을 넘기며 훨씬 큰 차익을 만들어 가고 있지는 않을까? 바둑의 실리파들의 패전을 분석하면 초반에 실리 확보에 주력하다가 판 전체의 흐름을 놓치고 중, 후반에 무리수를 두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단기의 수익을 쫓다 지쳐 무리수(몰빵)를 두어 만회하려다 크게 무너진 경험이 없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자.

[장기적인 수익은 단기적인 수익을 앞설 수 없다(?)]

HTS가 등장하면서 단기매매는 나날이 활성화되었고, 심지어는 1분에도 몇번씩 사고파는 초단타 매매까지 등장하였다. 데이트레이더 중 일부는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이를 본 일반투자자들은 단기매매에 열광하게 되었다. 열광의 이유는 간단하다. 단기매매는 처음 듣는 순간 이해하기 쉽고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많은 전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수익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반대로 가치에 입각한 장기투자는 처음에는 선뜻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주식투자의 본질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종국에 가서는 대부분 수익으로 연결된다. 우주류에서 바둑판의 귀에서 쉽게 집이 지어진다라는 사실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주식시장에서도 단기적으로 아주 적은 노력으로도 쉽게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는 가정에 집착하지 말자. 주식시장에서의 더 큰 수익은 단기투자자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 - 가치투자와 우주류

바둑인들이 다케미야의 기풍에 열광하듯이 주식시장에서도 워렌버펫의 투자방식에 열광해보는 것이 어떨까? 가치투자와 우주류는 고요한 듯 하지만 열광적인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

김두용 lamb20lamb@iToo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