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아줌마의 투자 다시 배우기 #5

주식사던 날

필자는 모 통신장비업체에 근무하고 있으며 간접투자의 아픔을 딛고 가치투자에 입문하려는 우리나라의 아줌마이다. 이 코너에서 필자는 여성의 입장에서 본 투자아이디어와 느낌을 솔직하게 얘기해 줄 것이다. Itooza.com에서 rica라는 필명을 쓰는 그녀를 만나볼 수 있다.

투자공부를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의 생일선물이라면서 남편은 백화점 상품권을 슬며시 내밀며 입고 싶은 옷이나 하나 사라고 했다. 회사를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의상에 신경을 쓰기 마련인데 결혼한 후 옷 한 벌 변변히 사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여자들이라면 다 공감하겠지만 옷장 열면 걸려있는 옷은 많아 보여도 지난 계절엔 뭐 입고 살았는지 막상 입을 만한 건 없는 법이다. 하지만 살림하는 주부가 선뜻 옷 한 벌 사기가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래서 남편이 건네준 상품권이 눈물 나게 감사했지만 그 상품권을 손에 쥐고 꽤 오랫동안 갈등을 했다. 선물해 준 성의가 있으니 눈 딱 감고 옷을 살 것이냐, 아니면 이걸 종자돈 삼아 주식을 살 것이냐.

아직 투자초보자인지라 선뜻 주식에 큰 돈을 넣기엔 위험이 클 거 같았다. 그래서 약간의 자금을 마련하여 공부하는 차원으로 투자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가계의 돈 관리를 하는 입장에서 매달 넣어야 하는 저축과 나가는 생활비도 빠듯한데 거기서 주식을 위한 돈을 만들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혼자 벌어 혼자 쓰는 독신도 아니고 같이 버는 돈이기에 검증되지도 않은 나의 투자를 위해 돈을 빼내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아무튼 투자를 위한 자금마련은 조금은 복잡미묘한 문제였다. -물론 돈 관리를 각자 따로 하는 부부들도 있다. 하지만 부부라면 금전적인 부분을 공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쨌든 남편의 선물은 종자돈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고민 끝에 옷 대신 주식을 선택한 나는 백화점에 가신다는 엄마께 선물 받은 상품권을 드리고 그 금액에  해당하는 현금을 받았다. 전문용어로 상품권깡(?)을 한 셈이다.

전에 뮤추얼펀드는 한번 가입해 본적이 있었으나 직접투자는 해 본적이 없었다. 우선 ‘우미와 함께하는 가치투자 따라 하기’ 에서 배운대로 증권계좌를 만들기로 했다. 회사건물 1층에 있는 은행으로 가서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온라인증권사를 하나 골라 계좌를 만들고 은행통장을 만들어 종자돈을 입금했다. 그 다음 PC에다 HTS를 다운 받아 설치하고 아까 은행계좌에 입금한 돈을 증권계좌로 이체하니 준비 끝. 생각보다 무척 간단했다. 이제 주식만 사면 만사 오케이였다. 평소 관심 있었던 종목 리스트를 관심종목에 올려놓고 매일 주가를 확인했다. 원하는 가격으로만 떨어지면 얼른 사야지 하면서… 그런데 지수가 어느 정도 빠지는 날에도 나의 관심리스트들은 꿈쩍도 안하고 몇 종목은 오히려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무슨 사건이 생겨 지수가 확 떨어지지 않는 이상 주가가 떨어지길 기대하는 건 힘들 거 같아 일단 매일 체크하는 건 관뒀다.

그러던 10월의 어느 날, 뉴스에서 600선이 붕괴되었다며 썰렁한 증권거래소를 비춰주더니 경제신문에서는 푸른색으로 물들여진 전광판 배경에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투자자의 사진이 실렸다. 바로 내가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었다. 지금껏 읽었던 책과 가치투자자들이 얘기하던 바겐세일기간이 온 거라 느꼈다. 나는 다음날 HTS의 관심종목을 열어보았다. 떨어지지 않을 거 같았던 관심종목의 절반 정도는 이미 주가가 떨어져 있었다. 근무시간에는 절대로 주식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매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점심 먹고 들어와보니 관심종목이 몽땅 파란색으로 바뀌고 화면을 바라보는 몇 초사이에도 주가가 계속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그래 더 떨어져라. 신난다’ 라며 바라보다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주가를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안 떨어지던 주식들이 웬일이지?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라크전쟁이 정말 시작되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이론들인 ‘부화뇌동파가 되면 안 된다’, ‘코스톨라니의 달걀’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투자서적을 읽으며 나는 늘 궁금했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왜 쌀 때 주식을 사지 않지? 무얼 두려워하는 거지? 떨어진 주가는 언젠가 또다시 오를텐데 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지 않거나 심지어 가지고 있던 주식조차 내다 파는 거지?  하지만 막상 곤두박질 치고 있는 장에서 매수 버튼을 누르는 일은 이론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래, 용기를 내는 거야. 이론만 안다고 해서 좋은 투자자가 될 순 없어. 어차피 시작해야 하는 일이야.’라며 결심을 굳혔다. 관심종목 중에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네 종목을 골라 매수를 했는데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나 대학투자저널을 통해 배운 방법으로 가치주를 찾았다. 종목 선정이나 분석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내공이 깊은 분들이 많이 있으니 여기선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나는 내가 쉽게 접하고 판단할 수 있는 종목을 골라 그 후에 숫자로 검증하는 방법을 썼다. 나로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종목이라면 현재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통신관련주, 주부이기에 먹거리칩과 생활용품 관련주, 여성이기에 우먼칩 등을 들 수 있겠다.

독일의 유명한 머니코치인 보도섀퍼는 일을 해서 번 돈으로 투자를 하고 소비성 지출은 투자수익으로 하라고 했다. 모두들 사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겠지만 구입시기를 조금 뒤로 미루고 그 돈으로 투자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 돈은 반드시 부담 없는 금액의 여윳돈이어야 할 것이다. 내가 매수한 종목도 언젠가 제 가치를 찾아 갈 것이다. 예상수익을 달성하고 매도하는 날, 입고 싶었던 멋진 옷을 사러 가야겠다.